노대통령, 허청장 재신임하려고 기자회견 했나?
노대통령, 허청장 재신임하려고 기자회견 했나?
'폭력적 시위문화' 재차 강조…대통령 사과 빛 바래
2005.12.27 18:58:00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최근 농민시위 과정에서 두 농민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해명을 하는 방법을 선호해 왔다.

이번 기자회견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한 시위에서 농민이 두 명이나 숨졌다는 사안의 중요성과 더불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해임 요구와 관련해 대통령의 곤란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급박하게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 기자회견 농민들 위로했나**

한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농민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사안이 워낙 위중하기도 하지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이 좌초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관련해 깨달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연정 정국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나 정책적 방향이 맞다 해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설득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는 한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적 거부감은 국정운영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월 20일 국무회의에서 대연정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내가 배가 고픈데, 빵을 사게 돈 좀 주세요 해야 하는데, 돈 좀 주세요만 했다"며 전술적 실패를 시인한 바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청와대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로 결정하고 그 방식과 시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날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성난 '농심(農心)'을 다독거리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폭력적 시위 문화가 경찰의 과잉진압을 불러 왔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대통령, "시민사회단체 무책임하다"**

노 대통령은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런 불행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궁극적 책임이 농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폭력적 시위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다"며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시민사회의 책임을 물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이 반복된 것이라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민사망사건과 관련해 '유감표명'을 하면서도 폭력적 시위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해 농민단체뿐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44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연대회의)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대의 폭력이 경찰의 폭력을 불렀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변명"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폭력시위'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강도가 더 세졌다. 이같은 발언은 대통령의 '사과'를 정치적 제스쳐로 전락시켰다.

***허청장, 노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사퇴 고려 안한다"**

또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허준영 경찰청장의 거취 문제와 관련된 대통령의 곤란한 입장을 설명하고자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며 "대통령이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청장에게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물어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발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앞서 청와대에서는 허 청장에게 여러가지 루트를 통해 물러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오전 "내 임기는 내가 결정한다"며 사퇴 불가 입장을 밝혔던 허 청장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말씀은 말씀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사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 청장이 '임기 보장'과 관련된 대통령의 곤혹스런 위치를 십분 활용한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허 청장이 발 빠르게 '사퇴 불가' 입장을 밝히고 나섬에 따라 대통령의 발언은 결국 허 청장에 대한 '재신임'이 되고 만 것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오후 기자실을 찾아 허 청장 거취 문제와 관련한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이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게 아니냐'고 해석하자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결국 애초 의도했다던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기자회견이 "경찰청장 거취 문제를 대통령에게 묻지 말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기자회견으로 전락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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