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이 켄지의 기묘한 음악들
카와이 켄지의 기묘한 음악들
[한재권의 Mosic & Muvie]
카와이 켄지의 기묘한 음악들
최근 일본 영화음악가들의 한국 진출이 눈에 띄게 많이 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범아시아적인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카와이 켄지는 세계적으로도 류이치 사카모토와 더불어 상당한 인정을 받는 수준급 음악가이다. 나카다 히데오가 1998년에 발표해서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링>은 2002년에 할리우드에서도 고어 버번스키 감독이 리메이크를 했는데 원작이 갖고 있는 공포감과 비교했을 때는 아무래도 덜 무서웠다는게 중평이었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카와이 켄지가 만들었던 원작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없었던 것이 원인인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그 이듬해에 나카다 히데오를 전면에 내세워 직접 메가폰을 맡김으로써 일본 원작의 공포에 재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카와이 켄지가 빠진 미국판 <링 2>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1957년생인 카와이 켄지는 50을 바라보는 지긋한 연배지만,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원로 딴따라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단발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길이의 헤어 스타일과 연한 색깔의 금속테 선글라스 등 위화감이 드는 그의 예사롭지 않은 옷차림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랜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묵직한 울림을 남긴 것은 영화음악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매체 전반에 대한 그의 의견이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걸작 애니메이션 시리즈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완성도 높은 OST가 작품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파격적인 록 사운드에 매 회, 매 시리즈마다 새롭게 선보이는 테마음악들도 당시로써는 신선한 기획이었고 결국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훗날 오시이 마모루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공각 기동대>의 전주곡 역할을 한다. 1995년에 발표된 <공각기동대>는 2029년 홍콩을 배경으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출과 농도짙은 허무주의,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주요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전 세계 컬트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그중에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카와이 켄지가 만든 오리지널 음악들이다. 일본어 꽤나 한다는 사람들에게도 생경스러울 만큼 이질적인 일본의 전통연극인 가부키 중 한 대목을 차용해서 미래적인 분위기를 창출한 그의 음악적 기획력이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1995년이면 이제 막 유럽을 중심으로 테크노음악과 레이브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을 시기로, 그때 이미 카와이 켄지는 그러한 장르음악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좀 더 싸이버펑크 문화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원자력 공학을 전공했던 전력답게 그는 음악을 즐기는 입장이 아닌 연구하고 실험해나가는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는데, 2001년, 역시 오시이 마모루와 함께 선보였던 <아발론>에서는 동유럽의 각기 다른 민속음악들을 차용해서 그윽하면서 지성적인 오케스트라 음악들을 구사함으로써 또 한번의 획기적인 변신을 꾀한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많은 국내 영화계 인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가 임필성 감독의 <남극일기>를 맡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음악적으로 너무나 "쎈" 입장인 카와이 켄지의 음악이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영화에서 너무 튀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는데, 개봉을 한 후에는 그것이 그야말로 단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일본에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직접 몇 가지 사실을 전해 들었다. 먼저 "자기 자신은 쉰이라는 나이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을 통해 카와이 켄지를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어떤 작품이든 누구의 영화든간에 그 작품 자체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감독이 신인이든, 지명도 없는 배우가 등장하든 내 음악은 다만 그 영화내에서 음악으로서의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 어떻게 들으면 상당히 무책임하고 타성적으로 들릴 법 한 얘기들이지만 그가 이후에 들려주었던 김성수 감독의 <야수>나 서극 감독의 <칠검>의 음악을 접하면 오히려 끊임없이 진화하고 음악적 개발을 해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0년 이상 연하의 후배 음악가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쩐지 그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듯 싶은 생각도 들어 그가 부러운 한편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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