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단-조총련 화해' 백지화가 北 미사일 때문이라고?
'민단-조총련 화해' 백지화가 北 미사일 때문이라고?
'일본정부 압력' '민단 내부 갈등'으로 이미 백지화
2006.07.07 16:33:00
'민단-조총련 화해' 백지화가 北 미사일 때문이라고?
6일 오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과의 화해 선언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민단이 밝힌 직접적 이유는 '미사일' 때문이다.
  
  하지만 '민단과 조총련 화해 선언 백지화'는 지난 6월 24일 열린 민단의 임시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사실상 백지화된 상태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공식 발표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5월 17일 전격적인 '화해 선언' 이후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5월 17일 민단 하병옥 단장은 도쿄의 조총련 본부 건물을 전격 방문해 이른바 '5.17 선언'을 발표했다. 민단과 조총련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나간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발표가 나자마자 민단 내부의 반발이 거셌다. 사실상 '5.17 선언'은 민단의 기반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보수적 지방 단장들과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터져나온 갑작스런 조치였기 때문이다.
  
  민단-조총련 화해 선언은 6월 24일 이미 백지화
  
  일본 재일동포 사회의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화해 선언 자체가 하 단장이 지방 단장들과의 공감이나 합의 없이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지방 단장들은 '민단이 비굴하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강력하게 반발했었다"며 "이에 지난 6월 24일 임시중앙위원회에서 하 단장이 지방 단장들 앞에서 사과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민단 지도부가 조총련과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일본 정부의 압박, 민단 내부 갈등, 북일관계 급랭 등의 안팎 요인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사진은 폐쇄된 도쿄 강동지부 에다가와 분소. ⓒ프레시안

  6월 24일 중앙위원회에는 170여 명의 중앙위원이 모였는데, 일부 강경 보수파 위원들은 "하병옥 퇴진하라", "민단에 친북세력이 침투했다"며 집행부를 맹렬하게 공격했고, 하 단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중앙 대의원대회 소집을 요구했다.
  
  아직 하 단장의 퇴진을 골자로 한 대의원대회 소집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하 단장은 중앙위원회에서 "사실상 5.17 공동성명은 백지화됐다"며 조총련과의 화해를 추진한 5명의 부단장을 경질했다. 민단 내 보수세력에 굴복한 것이고, 5.17 선언은 이미 이 때 무효화됐다.
  
  또한, 조총련과의 화해에 대한 민단 내부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발은 일본 사회의 극우화 움직임과 反북한, 反조총련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북한과 일본이 '메구미 유골' 반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한 이후, 조총련은 공식적으로 '조총련'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 내에서 고립돼 있는 처지다. 대외 활동이 거의 중단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극우세력, 집요하게 민단 공격
  
  이런 분위기는 '5.17 선언' 이후 민단도 '반북'의 표적이 됐다. 5일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5.17 선언 이후 일본 우익들은 민단 중앙본부 건물 앞에서 "민단은 일본에서 나가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흘이 멀다 하고 시위와 가두방송을 실시하며 민단을 압박했다.
  
  <산케이>, <주간문춘> 등 일본 보수 언론들도 하 단장이 '친북인사'라는 색깔론을 펼치며 민단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들 언론은 하 단장이 조총련계 대학 출신이라고 보도했으나 사실 확인 결과, 하 단장은 도쿄 법정대학생 시절 조총련계 조선학교에서 3년간 영어교사로 활동한 게 전부였다. 하 단장은 지난 30여 년 간 민단 주요 인사로 활동하며 이 전력이 문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민단 소속 재일동포들도 한국어 교육 등을 위해 자녀들을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일본 정부가 민단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구체적 사례로는 요코하마 시가 5.17 선언 이후 민단 지부가 소유한 건물과 부지에 대해 취해 왔던 고정자산세 감면 조처를 취소하고 올해부터 270만 엔(약 2500만 원)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해 온 것을 들 수 있다. 그동안 민단의 건물은 마을회관처럼 '공익 시설'로 분류돼 면세 혜택을 받아 왔다. 일본 정부가 조총련 시설에 세금을 부과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압박 수단이다.
  
▲ 민단-조총련 화해 선언 이후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민단 상공인들이 많이 운영하는 빠친코 등에 대한 세무조사 압력을 가했다. ⓒ프레시안

  일본 국회에서도 대정부 질문 형식으로 민단에 대해 조총련과 같은 수준의 제재를 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일본 국세청과 경찰청 등도 민단계 상공인들에게 '세무조사' 등의 압박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일본 내 민단계 상공인 상당수가 빠친코를 운영하고 있는데, 관계 당국이 세무 조사가 들어가면 얼마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부의 압력은 치명적"이라고 전했다.
  
  조총련을 눈엣 가시처럼 여기던 일본 정부와 우익 등의 세력이 '5.17 선언' 이후 "민단도 조총련처럼 취급할 수 있다"며 압박을 가했고, 안 그래도 조총련과의 화해 선언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민단 내 보수층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메구미 유골 문제'로 일본 내 반북여론이 팽배해지던 시점에서 미사일까지 발사됐으니, 민단은 이 시점에 '미사일' 문제를 거론하며 조총련과의 화해 백지선언을 공식화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동포사회, 한반도 정세에 따라 좌지우지
  
  하지만 이러한 '화해 백지화'로 인해 60년 간 지속돼 온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이 해소되리라던 기대마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민단과 조총련은 '친남', '친북'의 정체성을 갖고 활동해 오며 갈등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남북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그만큼 신세대의 민족성도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민단이나 조총련이나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 단장이 추진한 '화해 선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내려진 결단이었다.
  
  하 단장은 5.17 선언 과정의 비민주성, 내부 반발 등으로 인해 조총련과의 화해를 백지화했지만, 다시 민주적 절차를 거쳐 조총련과의 화해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화해 재시도' 시점은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일, 북일 관계의 풍향에 따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재일동포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다닐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richkh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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