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총장이 마광수 교수에게서 배울 점
이필상 총장이 마광수 교수에게서 배울 점
[기자의 눈]진실은 '다수결'로 밝힐 수 없다
2007.02.09 19:52:00
공자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셋이 모인 자리에서 한 명이 이런 질문을 꺼냈다. 두 명이 '일본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나머지 한 명이 '중국 사람'이라고 정답을 이야기했지만, '다수결'원리에 따라 "공자는 '일본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어린 시절 읽은 우화의 한토막이다. '다수결'은 진실을 판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다.
  
  표절 의혹 해소되면 총장 퇴진 요구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초등학생 시절 배운 이런 교훈이 갑자기 떠올랐다. 9일 오전,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발언을 접한 직후였다. 논문 표절 의혹을 받아 온 이 총장은 이날 자신의 거취 문제를 전체 교수의 투표로 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이 총장은 "논문 문제와 관련해 고려대 구성원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사과 드린다"며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많은 반성을 했다. 10~20년 전 사안이 (지금) 문제가 돼서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장은 "하지만 반드시 이 문제를 매듭 짓고 앞으로 나가고 싶다"며 교수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논문을 표절한 교수가 대학 총장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총장이 할 일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정확히 해명하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통해 논문 표절 의혹이 해소된 뒤에는, 이 총장의 퇴진을 요구할 사람이 없다.
  
  논문 표절 여부를 '다수결'로 판정한다고?
  
  그런데 이 총장은 난데없이 전체 교수의 투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논문 표절 여부를 '투표'로 판가름하는 게, 그것도 이 총장의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교수까지 망라하는 '전체 교수의 투표'로 판정하는 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교수는 '전문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 한해서다.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교수 역시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여부가 비전문가들이 판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결론은 나왔을 것이다. 처음 의혹이 제기된 때로부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비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투표'를 제안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의아하다.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여부는 전문가들만이 판정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같은 내용을 다른 맥락 속에 위치 지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해당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꿰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논문 표절 여부를 판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전체 교수 투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 총장의 전공인 재무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논문 표절 여부의 판정을 의뢰하는 게 옳다.
  
  어떻게 가정하건 '전체 교수 투표'가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우화에서 잘 드러나듯 '다수결'이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 '사실'과 '논리'로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총장은 진실의 정확한 규명을 요구하기보다 계속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가려 하고 있다. 이날 전체 교수 투표 제안만이 아니다. 이에 앞서 이 총장은 학교 내의 다른 파벌에 속한 교수들이 자신을 협박했다며 쟁점을 흐리기도 했다. 하지만 논문은 학문의 영역이고, 학문은 정치가 아니다. 어느 편에 속하느냐에 따라 '참'과 '거짓'이 엇갈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를 대표하는 대학 총장이 '학문'의 기준이 아닌 '정치'의 논리에 의지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논문 표절이 사실이라면 무조건 총장 직을 사퇴해야 한다.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다면 설령 주위의 모든 이들이 이 총장을 외면하더라도 끝까지 의혹을 제기한 이들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사실'과 '논리'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총장이 보이는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필상 총장은 마광수 교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총장이 투표를 제안하기 하루 전, 일부 언론에 짧게 보도된 기사가 있었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의 모든 수업이 폐강됐다는 내용이다. 마 교수 역시 표절 시비에 연루됐다. 자신의 제자가 23년 전 대학 교지에 발표한 시를 최근 나온 자신의 시집에서 부분적으로 베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비는 논란으로 번지지 않았다.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마 교수가 표절 사실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마 교수의 표절 행위를 옹호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지탄받을 만한 일이고, 또 실제로도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사실을 시인한 태도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
  
  이 총장이 마 교수의 수업 폐강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mendram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