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준 위로, '한미FTA'가 던진 불안
'드라마'가 준 위로, '한미FTA'가 던진 불안
[한미FTA 뜯어보기 533 : 기고] 에이즈 감염인이 본 드라마 '고맙습니다'
'드라마'가 준 위로, '한미FTA'가 던진 불안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민기서(장혁 분)와 이영신(공효진 분), 이봄(서신애 분)의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며 지난 10일 종영했다. 방송이 시작하기 전 기대 시청률 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던 이 드라마는 지난 3월 21일 첫 전파를 탄 이후, 장안의 화제가 됐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면서 드라마의 진가를 인정받았다. 지난 3일에는 시청률 21.2%(TNS미디어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는 등 줄곧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단지 재미와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낯선 소재를 왜곡 없이 담담하게 담아낸 것도 한 이유였다.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통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깼다"고 이야기했다. 이 드라마가 실제 에이즈 감염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련기사 :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에이즈 감염인들은 "드라마 속 에이즈에 대한 묘사는 객관적이다. 그래서 고마웠다"라면서도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라고 덧붙이곤 한다. 드라마 속의 에이즈 감염인 '봄이'가 겪는 고통은 실제 에이즈 감염인들이 겪는 고통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에이즈 감염인 '봄이'는 초등학생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은 "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겪게 될 감시와 통제가 얼마나 큰 고통을 낳는지 시청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욱 큰 문제는 에이즈 감염인들이 겪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다. 한 에이즈 감염인의 경우, 한 달에 부담하는 약값이 약 30만 원 정도다. 대부분 실직자인 에이즈 감염인들에게는 큰 돈이다. (☞관련기사 :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에 놓인 HIV/AIDS 감염인들)

여기에 최근 타결된 한미FTA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뒷받침했던 건강보험 재정이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미FTA 협정문 속의 "특허 의약품의 적절한 가치 인정" 등의 조항이 힘을 발휘하게 되면, 국내 복제의약품(제네릭)의 출시가 지연되면서 약값이 오르게 되고 결국 건강보험과 환자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전망도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았던 에이즈 감염인들이 여전히 한숨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통해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실제 감염인들이 겪는 이런 불안과 고통을 보다 생생하게 접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다음은 에이즈 감염인 강석주 씨의 글이다. <편집자>

나는 봄이와 같은 편입니다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막을 내렸다. 잘 알려져 있듯 이 드라마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에이즈'다. 미혼모 영신의 딸 봄이는 에이즈 감염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봄이가 에이즈에 감염된 계기는 수혈. 의사(최강희 분)의 실수 때문이다. (☞관련기사 : '에이즈 감염혈액' 또 수혈 사고…적십자사 은폐, 제약사는 '오염원료 사용' 알면서도 유통 )

이 드라마가 에이즈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나는 관심을 뗄 수 없었다. 당연했다. 나 역시 에이즈 감염인이니까.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될 무렵에는 기존의 드라마나 다큐, 뉴스에서 보여줬던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표현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공포, 죽음, 천벌 등 에이즈와 어울릴 법한 단어들의 틈바구니에서 드라마 '고맙습니다'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질병에 대한 편견을 더 강화시키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런데 이런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영신(공효진 분), 기서(장혁 분), 봄(서신애 분)ⓒMBC

드라마 한 편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나는 봄이와 같은 편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고맙습니다'는 감염인들에게 큰 힘이 됐다. 이 드라마는 푸른도라는 작은 섬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봄이의 삶은 감염인들에게 자신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부터도 그랬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돌을 얻어맞고 동네주민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사람들이 감염될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봄이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찾곤 했다. (☞관련기사 :HIV/AIDS 감염인들…"아프지 않아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봄이와 봄이 엄마에게 에이즈는 단순한 질병에 불과하다. 그리고 풀어내야 하는 삶의 숙제일 뿐이다. 봄이 엄마가 동네주민에게 외쳤던 것처럼 "단지 좀 다를 뿐"이다.

푸른도를 한국사회로 그대로 옮겨와 보자.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만 잘하면 질병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래 살 수 있고 쉽게 전염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에이즈 감염인은 악마 취급을 당한다. (☞관련기사 : 에이즈가 '불치병'이라는 위험한 오해)

드라마에서 봄이 친구들이 봄이 몸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외쳤던 것처럼, 이 사회는 끈질기게 에이즈 감염인을 바깥으로 내친다.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는 감염인들에게 단순한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겨내야 하는 삶이 아니라 쉽게 포기하고 싶은 삶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차이'를 '차별'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견과 차별을 막아줄 요술코트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실제로 에이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드라마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의료인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정확한 사실은 모른 채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병이다", "문란한 성관계를 하면 걸린다"라는 식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질병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감염경로나 질병의 특성을 알기 위한 시간을 굳이 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극중 봄이에게는 에이즈 전염을 막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요술코트가 있다. 이 요술코트만 입고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고 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봄이는 요술코트가 찢어지고 더러워져도 절대 벗지 않는다.

요술코트가 없으면 사람들이 자기 몸을 만지는 것도 두려워하고 자고 있는 할아버지조차 손으로 깨우지 못한다. 에이즈는 공기나 물을 통해서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타인에게 전염될 우려가 없다.

또한 봄이 엄마처럼 동거인도 기본적인 안전지침만 지킨다면 에이즈에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에이즈 감염인을 감시하려 하고 에이즈를 공포와 죽음의 질병, 죄에 대한 대가로 여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봄이처럼 건강한 감염인보다 앙상한 뼈에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더 익숙하다. 봄이가 곧 죽을 것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봄이와 엄마를 죄인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는 이는 우스꽝스럽게도 한국정부다. 푸른도 주민들이 봄이를 쫓아내려고 한 것은 주민들이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에이즈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잘 못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

정부가 에이즈 예방을 위해 만들어놓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을 철저히 분리하고 감염인을 '에이즈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처럼 여기게 만드는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실상 감염인이 콘돔을 끼고 성관계를 하는지 감시하고 처벌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내용을 담은 조항이나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신고보고 의무' 규정은 기존의 편견과 차별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관련기사 : '군사작전식' 에이즈 대책이 한물 간 이유? )

봄이를 학교에도 못 가게 가고 감시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봄이에게 '요술코트가 없어도' 에이즈에 감염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직은 차별과 편견을 막아 줄 요술코트가 필요하다. 봄이의 친구들과 동네주민들이 봄이와 더불어 살아도 봄이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현실적인 족쇄가 있기 때문이다. 봄이가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섬밖으로 나가는 과정 내내 푸른도에서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에이즈에 대해 올바로 알고,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첫 번째로 필요한 요술코트는 에이즈예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에이즈예방은 성관계를 갖는 모든 이들, 수혈이나 헌혈 등 혈액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현재의 에이즈예방법처럼 성매매여성,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누구 누구만 에이즈에 걸릴 위험이 높다며 에이즈를 예방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식의 대책이 더 위험하다. 그리고 봄이를 감시할 필요가 없음에도 계속 감시를 받게 될 봄이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죄인이라는 주홍글씨가 가슴 깊이 새겨진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감염인들처럼 말이다.

감시에 기반한 에이즈예방법이 오히려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을 만들고 에이즈예방에 도움이 안된다. 감염인들과 함께 올바른 에이즈 예방대책과 교육, 감염인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치료가 필요한 봄이, 하지만

또 하나의 요술코트는 봄이가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봄이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봄이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병을 고쳐줄 거"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아직까지는 완치될 수는 없지만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치료제가 있어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에이즈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그럴싸해 보일 뿐이다. 보험 적용이 안되는 약이나 치료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2000년 이후에 세상에 나온 에이즈치료제 10가지 품목 중에 단 두 가지만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기존의 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은 약이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내 친구는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에이즈치료제를 구하기위해 1년에 3000만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내 친구는 면역력이 아주 낮은 상태라서 직장을 다닐 수 없기 때문에 3000만 원이란 돈은 꿈도 못 꾼다. 감염인이 아니어도 우리나라에서 1년에 약값만 3000만 원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봄이가 약을 먹어야 하는 에이즈 환자라면 성인 감염인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소아용 에이즈치료제는 종류도 많지 않고, 더 비싸기 때문이다. 소아용 에이즈치료제는 한국에는 거의 없다. 외국에서 어린이 약값은 성인 약값의 10배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원치 않아도 푸른도를 떠나야 할 것이다. 국내 들어와 있는 약들은 대개 3차 대형병원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병원에는 그나마 있는 약조차 구비해놓기 어렵다. 의료인들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심해서 1차, 2차 병원에서 진료를 해주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주로 에이즈치료제를 판매하는 곳은 초국적 제약회사인데 선진국 수준만큼의 약값을 요구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수많은 어린이 감염인이 있지만 돈벌이가 안 된다고 어린이용 약을 만들지 않는다.

초국적 제약회사는 약에 대한 특허권을 얻어서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팔지 말지, 약값을 얼마로 할지를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

로슈라는 제약회사는 복지부로부터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시판허가도 다 받았지만 약값이 낮다고 약을 팔지 않고 있다.

애보트라는 제약회사는 태국정부가 값싼 에이즈치료제를 공급하겠다고 하자 태국에서는 더 이상 약을 팔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관련기사 : "제약 특허권은 살인 면허인가"…태국의 '의약품 강제실시'에 맞선 美 제약업체 횡포)

한미FTA, 만성질환자에게는 재앙

그런데 한국정부는 태국정부처럼 값싸게 공급하기 위한 노력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미FTA가 타결됐다. 한미FTA 타결은 에이즈 감염인들에게 큰 재앙일 수밖에 없다.

의약품 특허권 강화와 독점연장을 요구한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손을 들어준 정부가 무슨 수로 새로운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할 수 있겠는가? (☞관련기사 : 가난한 환자에겐 '짠돌이', 미국 회사엔 '큰 손')

지금도 제약회사가 약값을 비싸게 요구하거나 약을 팔지 않는 경우에 환자에게 약을 공급할 수 있는 어떤 대책도 없으면서 말이다.

한미FTA는 에이즈환자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암처럼 계속 약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에게는 그야 말로 재앙이다. 그뿐만 아니라 복지부가 한미FTA 타결로 인해 의약품 분야에서 손해가 몇천억 원인지 계산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데, 손해가 몇천억 원이든 몇조 원이든 그 돈은 환자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약이 있어도 약을 못먹는 억울한 상황에서 초국적 제약회사 배불리는 데 환자들이 주머니까지 털어줘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감염인들이 생기고 더 고가의 치료제가 나오게 되면, 정부가 에이즈 치료비용 때문에 지금의 엉터리 무상공급마저 계속 보장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반쪽짜리 건강보험이 더 축소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지켜보고 있다.

지금도 에이즈치료제의 일 년간 비용은 약 1000만~1500만 원이나 된다. 약이 있음에도 공급하지 않고, 이윤을 위해 환자의 등골을 빼먹는 초국적 제약회사와 이를 묵인해주는 정부의 태도에 감염인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에이즈를 더욱 확산시킬 것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적절한 질병관리를 하기 어렵게 된다.

에이즈 감염인들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한국의 감염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싸웠는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감염인들의 노력과 주변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차이'가 '차별'로 둔갑되지 않는 세상, 감염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요술코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mendram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