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은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정태인은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화제의 책] 하종강의 <철들지 않는다는 것>
2007.05.29 09:28:00
"정태인은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하종강 선배님한테는 정신연령에 맞게 코코아로 드려라."

한 노동단체 실무자들이 모여 앉은 자리. 녹차, 커피, 홍차, 율무차, 코코아…. 일곱 가지나 됐던 그 차들을 앞에 놓고 "그 모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여성 활동가"가 재빨리 이렇게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좋게 말하면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일 테고, 사실대로 말하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디가 좀 모자라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다."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마흔을 훌쩍 뛰어 넘도록 '철들지 않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듣는" 사내,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 다시 책을 냈다. 이번에는 그의 "뒤통수를 잡아끄는,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1년에 300회 넘는 강연을 하면서 '혼자 밥 먹기'와 '혼자 오래 운전하기'라는 '고역'이 일상인 하종강의 '삶'의 얘기다.

<철들지 않는다는 것>(철수와 영희 펴냄)은 하종강의 홈페이지 '노동과 꿈'에 2001년부터 틈틈이 쓴 '중년일기'를 묶은 산문집이다. 이 책은 "연애를 하는 9년 동안, 그리고 결혼한 뒤에도 몇 년 세월 동안 내가 하는 일을 안해(아내의 옛말)에게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하는 한 중년 사내의 일상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평범한 중년 사내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비 오는 날 물에 잠긴 논을 앞에 두고 "농사일은 이래서 마음이 슬퍼…"라고 중얼거리는 흙투성이 농부를 보며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잊혀진 옛사랑을 추억할지라도, 한쪽 구석에서는, 논밭이 온통 물에 잠겨 몇 개월 흘린 땀이 물거품이 되는 걸 지켜봐야 하는 농사꾼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 <철들지 않는다는 것> (하종강 지음, 철수와 영희 펴냄)ⓒ프레시안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하종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몇 번 둘이 나란히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문제는 하종강의 강연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정태인 교수는 "이건 좀 억울하다. 우는 쪽 감정이 더 격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문제로 사람 웃기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의 말대로 두 사람의 강연을 비교하는 것은 좀 맞지 않는 면이 있지만, 하종강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강연이 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끝내 더 좋은 점수를 받는지는 이내 공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하종강은 '머리와 말, 그리고 행동과 삶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려운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머리만 왼편'인 수많은 현란한 학자들보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를 제일 먼저 찾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를 찾는 사람은 워낙 많다. 아들 아이의 여름 수영복 팬티를 한 번도 입혀보지도 못한 채 아이가 커 버려 옷장에서 빼내야 할 만큼 그는 바쁘다. 그 작아진 아들의 수영복을 정리하며 표정이 굳어지는 안해에게 '올해 휴가는 꼭 가족들과 보내겠다' 약속해 놓고선 전주의 한 노동조합의 '애원'에 또 '어쩔 수 없이' 전주로 휴가를 가고 만 사람.



"'여기, 꼭 오셔야 해요. 상황이 아주 나빠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얘기를 듣고서 이미 잡혀 버린 일정들을 모두 뒤로 하고 그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이니 가족과의 휴가 약속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러니 그의 안해가 "예나 이제나 '나는 하종강에게 있어 노동자들보다 한 순위 아래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충분히 그럴 법한 얘기다.

그렇게 마음 여린 하종강의 곁에는 온통 그런 사람들뿐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몇 년씩 매일같이 일해 온 멀쩡한 일터에서 강연회 장소 하나 구하지 못해 시청 앞 지하도 계단에 앉아 그의 강연을 듣는 롯데호텔 룸메이드 아줌마들,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받고도 온갖 병원의 파업 현장을 찾아다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

"올라가는 버스표를 끊어드리려고 했는데, 그 돈이 안 되는 거예요"라며 "다 큰 여자가 서울서 내려온 선배 버스표 한 장 사줄 돈도 없다는 게 너무 우스워서" 혼자 웃었다는 후배. 모두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항상 소수"인, "가끔 다수가 될 때가 있는데 그때가 오히려 어색한" 노동자들이다.

"그래, 너 표피적인 일을 떠나서 본질적인 문제에 많이 천착해라"

그런데도 그는 그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고 오히려 그 사람들의 두터운 손에서 강한 힘을 전해 받는다고 고백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거나 새벽까지 일해야만 옳은 줄 아는" 그를 보고 "사람들로부터 지나칠 정도로 똑똑하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어느 후배 뻘 되는 이가 "요즘은 그렇게 일하는 사람 없어요. 다 자기 앞가림은 해요. 하 선생님처럼 자기 몸을 혹사하는 사람은 없어요. 부채감으로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을 때.

괜스레 주눅이 든 그 앞에서 "요즘도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선배로부터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 사람이 말하니, 다들 "운동 안해도 좋으니까 의리나 지키고 살라고 그래", "그런 사람들이 더 문제야"라고들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똑똑한 후배가 한 말에 며칠 동안 주눅 들어 있던 나는 원군을 얻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되묻는다. 내로라하는 소설가들의 "여름의 시간과 가을의 시간", "참 조용히도 내리는 눈" 운운하는 작가 후기와 수상 소감을 읽다가, "왜들 이러나, 계절 이야기 말고는 할 말들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세기말' '새천년'을 운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오히려 다행인가.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라고.

"교양과 정서가 철철 넘치는 뭇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계절이 그렇게 바뀌면 배고픈 사람들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 땅의 고통 받는 이웃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진다는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영원한 구세대다."

조용조용하고 언제나 다정다감한 듯한 하종강이지만 예전에 "비슷한 일을 했던" 화가 친구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즘에는 그런 사회적 요구라든가 현실 속에서 미술의 역할이라든가 하는 '표피적'인 문제를 떠나서, 보다 인간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며 TV 속 친구를 향해 분노하기도 한다.

"너, 과거의 그 일을 꼭 '표피적'이라고 표현해야 되겠어? 현대자동차에서, 명동성당에서 사람들은 80년대와 똑같이 머리를 깎고,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데. 너한테는 그게 이미 '표피적'인 일이란 말이지…. (…) 세계관이 바뀐 것 가지고 내가 뭐라고 하지는 않겠어. 나는 그 세계관도 존중하니까. 그러나 어휘를 좀 신경 써서 선택해야 할 거 아냐. 그래, 너 표피적인 일을 떠나서 본질적인 문제에 많이 천착해라, 인마."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사람들은 "자연에 귀의하는 것, 많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농촌을 목가적 정서로 바라보는 것, 전원에 묻혀 도시를 돌아보지 않는 것, 보다 더 인간의 내밀한 고민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새로운 '혁명'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라고도 한다.

하지만 하종강은 "그런데 그 새로운 '혁명'이 왜 하나같이, 좀 더 살기 편해지는 쪽으로, 좀 더 유명해지는 쪽으로,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쪽으로, 부당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탄압 받지 않는 쪽으로만 향해지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고 했다.

오히려 하종강은 가족들로부터 눈흘김을 받고, 꽉 짜여진 일정들 속에서 어떻게든 틈을 내 찾아갈 사람들에 파묻혀서, 휴게소 밥을 일주일에 몇 차례씩 먹으며 사는 지금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를 며칠 동안이나 기다리게 만드셨지만, 소장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어요. 참 이상해요. 우리를 며칠 동안이나 기다리게 만든 사람이 왜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지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런 표현은 연애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예요. '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어요.' 누가 들으면 연애하는 줄 알겠어요."
나는 노동조합과 연애를 하는 것 같다. 그것도 짝사랑을…. 그래서 죽도록 사랑하는 연애를 하는 청춘남녀들이 별로 부럽지 않은가보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ddongg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