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23>] "무리한 한국인 정체성 강요는 위험"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길을 가다보면 심심치 않게 동양적인 얼굴과 마주치게 된다. 몸짓이며 표정이며 행동은 영락없이 덴마크인인데 얼굴은 어딘지 동양인의 느낌이다. 백화점 점원 중에도 이런 동양적인 얼굴이 꽤 있다. 가끔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거의 한국이란 대답을 듣게 된다.
  
  덴마크에는 성인이 된 한국 입양인이 대략 8700 명가량 있다고 한다. 대략이라고 하는 까닭은 입양인 스스로 연락을 하지 않는 한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어서 통계 내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입양인들을 어림잡아 합치면 만 명은 되리라는 추산이다. 근래에 입양된 열다섯 살 미만의 아동들도 있으나 그 수는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덴마크에는 입양인 부모들의 친목단체인 정한협회, 그리고 입양인들의 모임인 코리아 클럽이 있다. 정한협회는 여러 작은 모임 외에 1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파티를 크게 개최해서 입양아들과 그 부모들이 참석을 하는데, 특히 장애아를 잘 키워서 결혼까지 시켜서 데리고 온 부모도 있다. 대여섯, 일곱 살의 작은 아이들은 얼굴모양도 피부 빛깔도 머리색갈도 다른 덴마크인 부모의 무릎을 기어올라 품에 파고들고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노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코리아 클럽에서는 매주 한글교실도 열고 있고 한국에서 열리는 입양인 대회에 참석을 주도하고 있다.
  
  길에서나 모임에서나 입양인들과 마주칠 때면 내 마음은 늘 무거웠다. 우리가 돌봐야 할 아이들을 이국의 땅에 내버렸다는 죄책감, 미안함 때문이었다. 한번은 집으로 입양인을 초대할 기회가 있었다. 정성껏 차려입고 기쁘게 들어서는 그들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예뻐보이는지 몰랐다. 갓난아기 시절 혹은 어린 시절에 이곳에 왔을 그들이 이제는 성인이었다. 의젓하고 아름답게, 참으로 잘 자란 그 모습들을 보자 나는 어쩐지 목이 메어왔다.
  
  덴마크의 입양 법은 상당히 엄해서 양부모가 되려면 일정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게다가 국가가 양육을 보조하고 학교교육은 대학까지 무상이기 때문에 입양아들은 대체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 집에 온 입양인들도 대학 강사, 미술관 큐레이터, 중고등 학교 교사, 회사원, 언론인 등의 직업에 종사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들이 한국의 아동시설이나 혹은 그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정도의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기는 어려우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첫 번째로 이렇게 잘 자라준 그들이 고맙기 짝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낯선 땅으로 보내져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생김새로 이만큼 살아내기까지 마음고생이 오죽 많았을텐데, 그런 것을 이겨내고 건강한 사회인이 된 그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또 그들의 양부모한테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 사회가 돌봤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고 이만큼 키워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여 일하는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는 입양인도 있고 내가 만나 본 입양인들처럼 잘 자라서 한몫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예도 적지 않다고 했다.
  
  갓난아기인 경우는 덜하나 기억을 할 만한 나이에 입양된 아이들은 입양가정에 적응하는 기간이 길고 학교나 동네 아이들과도 쉽게 섞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혼이나 불화, 경제적 곤란 등 입양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입양아는 한층 더 혼란을 겪게 된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생김새가 다르기도 하고 현재의 부모 외에 생부모라는 존재가 있는 입양아는 더욱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입양인 들은 대개 두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자신의 출생지인 한국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는 쪽과 전연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혐오감을 나타내는 쪽 이렇게 두 유형이다.
  
  버림받았다는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양아들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자칫 상처이기 쉽다. 한편 외모가 다르고 출생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자라나서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내면에 쌓인 정서적인 장애로 인해 원만한 성장과 사회생활이 어렵게 되는 예도 있다.
  
  성장한 입양인들은 계기가 주어지면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생부모를 찾으려 노력한다. 자신의 출생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을 하던 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는 시점에서 결국 자기의 뿌리를 찾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한국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외국인으로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잘 알고 지내던 한 입양인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자랄 때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 이웃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여느 덴마크 아이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아무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따라서 자신이 한국태생이라고 특별히 의식하지도 못했고 한국에 대한 어떤 관심도 없었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아시아 쪽에 관심이 생겨서 아주 우연히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돌아와서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에 관한 논문을 썼다. 한국에 체류할 당시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자신이 입양되기 전 맡겨졌던 아동시설을 찾아가 보았다. 거기에 보관되어 있는 자신의 기록을 보고 생모를 찾아보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몇 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생모를 찾으려 했지만 헛수고만 했다. 지금이라도 생모의 얼굴을 한번만 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생애 최초의 얼마동안이 공백이라는 느낌, 뿌리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찾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생모가 있고, 한국인의 얼굴을 한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는 무심코 그를 한국인으로 착각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가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 하고 말할 때면 잠시 어리둥절해지곤 했는데 나중에야 '우리 집'이 그가 자란 덴마크 양부모집이고 '우리 엄마, 아빠'가 그를 길러 준 양부모를 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마스는 반드시 시골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보내요. 엄마 아빠랑 같이 보내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생각할 수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분명히 덴마크인 이었다.
  
  덴마크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묻고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그는 덴마크인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갓난아기 때 와서 성장했으니 그는 자신을 덴마크인이라고 여기고 덴마크인 양부모를 친부모님처럼 생각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어를 단기간 배우기는 했으나 말은 못하는 그와 덴마크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사람들이 왜 한국어를 쓰지 않느냐, 왜 한국어를 배우지 않느냐고 물을 때가 제일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쓰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덴마크인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쓰도록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 '방과 후 교실' 활동을 하고 있는 덴마크 아이들.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 역시 '덴마크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이들에게 무리하게 한국인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영희

  흔히 선량한 동기에서 입양인에게 한국과 한국문화를 알게 해주고 자부심을 갖도록, 또 그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도록 해주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하면 입양인의 정체성을 혼란시켜 오히려 불행을 초래한 사례도 없지 않다.
  
  덴마크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입양인은 주위의 자극으로 점차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덴마크인으로 성장한 그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얼마간 체류하다가 덴마크에 다시 돌아갔으나 이번에는 덴마크 사회에 적응이 어려웠다. 결국 한국과 덴마크를 오고가며 뚜렷한 직업도 없이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어쩔 수없이 외국인으로 성장하게 된 입양인을 일단 외국인으로 인정하고 그 사회에서 잘 살아가도록 정신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지 생각한다. 생애 어느 순간 그들이 먼저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조심스레 도움을 주는 것이 올바르게 그들을 대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제 한국 아이는 한국 사회에서 품어야 한다.
  
  "주위의 한 덴마크인이 입양을 하려고 하면서 어느 나라 아기를 입양하면 좋을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이왕 입양을 하려면 아시아에서 보다는 덴마크인과 얼굴이 비슷한 동구의 아기를 입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했다."
  
  덴마크에서 살고 있는 한 입양인의 이런 이야기는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비교적 좋은 직업을 가진 그로서도 생김새가 다른 이국인의 땅에서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입양은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요즈음은 부쩍 인식이 높아져서 국내 입양에 대한 홍보가 활발해지고 입양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양육과 교육이 무거운 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를 입양해도 양육비, 교육비. 의료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덴마크나 북구같은 복지국가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우리도 소득에 따라 양육비나 교육비 보조 등 어느 정도의 제도적인 장치가 선행된 후 입양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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