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27>] 자전거 왕국, 덴마크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덴마크는 유럽에서도 가장 오랜 왕조를 자랑하는 왕국이다. 예전처럼 직접 나라를 통치하는 실권은 없지만, 현 마가렛 여왕은 아직도 국민들의 지극한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다.
  
  덴마크는 또한 '자전거 왕국'이기도 하다. 출퇴근 시간에 구름처럼 떼 지어 몰려가는 자전거의 행렬, 그리고 국회나 주요 관공서·학교·상가·기차역 앞에 세워진 자전거의 바다를 보면 덴마크가 자전거 왕국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차도와 보도 사이에 잘 정비되어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안전을 위해서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는 자전거의 위치를 볼 때 더욱 그렇다.
  
  이처럼 덴마크가 자전거 왕국, 혹은 자전거 천국이 된 데에는 그들의 오랜 습관과 아울러 자전거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환경을 꾸준히 개선해 온 데 힘입은 바 크다. 특히 지난 1990년대 이후 자전거가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교통수단이라는 점에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자전거 통행을 장려하는 교통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1996년 코펜하겐시에서는 15년 계획으로 자전거도로 우선 정책을 수립했고, 이어 1999년부터 시내 간선도로에 자전거 선을 표시하기 시작하여 현재 코펜하겐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350㎞에 달하고 있다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데 차와 같은 방향으로, 즉 한쪽 방향으로만 달리도록 되어있다.
  
  또 2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이(2.2m)여서 빨리 달리는 자전거는 뒤에서 벨을 울리고 왼쪽으로 앞질러 갈 수 있다. 코펜하겐시가 수립한 '2002~2012 자전거 정책'에 의하면 자전거 통행이 혼잡한 지역에서는 장차 3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도록 3.5m로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시 중심지에는 자전거 전용도로에도 선이 그어져 있어, 좌회전 선은 왼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자전거용 신호등도 따로 있는데 자동차 신호등보다 먼저 파란등이 켜져서 자전거가 우선적으로 건너도록 되어있다.
  
  자전거 도로에 보행자가 서 있거나 걸어가서는 안 되는데, 이를 어겼다가 달려오는 자전거에 방해가 되면 거센 항의를 받는다. 나도 처음에는 깜빡 잊고 자전거 도로에 서 있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주위의 덴마크인들이 주의를 주었다. 차가 자전거 도로를 침입해서도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차가 네거리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할 때, 길을 건너는 자전거가 있으면 반드시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번은 차가 잘못해서 자전거가 위험하게 된 경우를 봤는데, 자전거 탄 사람이 내려서 욕설을 퍼붓고 차체를 두드리고 심지어 차에 발길질을 해도 차 운전자는 당하고만 있었다.
  
  한편 자전거 역시 좌회전할 때는 왼손을 들어서, 우회전할 때는 오른손을 들어서 수신호를 해야 한다.
  
  겨울철 눈이 올 때면 차도는 미처 눈을 치우지 못해도 자전거도로는 우선적으로 눈을 치우고 소금을 뿌려 아침 일찍 자전거로 출근하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는다. 이를 위해서 자전거도로 전용 제설차가 있음은 물론이다.
  
▲ 국회 의사당 앞에 세워진 자전거들. ⓒ김영희

  통계에 의하면 코펜하겐에서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한다. 장관이나 시장이 자전거로 출근한다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실제 내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던 몇몇 고위직 공직자들은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니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는데다, 출근시간에는 교통체증이 심해서 차나 자전거나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 통학도 90%는 이상이 자전거로 한다. 학교 마당 혹은 대학교 강의실 앞은 빽빽하게 세워놓은 자전거로 홍수를 이룬다.
  
  퇴근시간 후나 주말이면 기차역 앞도 자전거 바다가 되는데, 직장인들이 기차로 시내까지 와서 역 앞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다시 역 앞에 묶어두고 기차로 돌아가는 까닭이다. 아예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기차에는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칸이 있어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 기차역 앞에 세워진 자전거들. ⓒ김영희

  덴마크 사람들은 출퇴근과 통학뿐 아니라 시장을 볼 때나 외출할 때나 놀 때도 자전거를 즐겨 탄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전거 앞에 매달린 바구니에 집 근처의 수퍼마켓이나 빵집·꽃집·책방 등에서 산 물건을 넣은 채 유유히 페달을 밟고 가는 모습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게들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가게 앞에 자전거 대를 설치해 놓기가 예사다.
  
  점심이나 저녁에 초대받은 자리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차를 운전하고 가서 주차에 애를 먹느니 자전거로 가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신사 숙녀가 자전거로 파티에 가는 장면이 덴마크에서는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음악회나 오페라 공연에도 자전거로 가는 사람이 많다. 한 번은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겨울 저녁이었는데, 오페라하우스의 바깥에 자전거가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 오페라하우스 앞에 세워진 자전거. ⓒ김영희

  이렇게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들이니 주말이나 휴가 때도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이나 바닷가에 자전거로 산책을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고 내가 아는 이 곳 사람은 외국에 여행가서도 자전거를 빌려서 그 고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고 했다. 또 아예 '자전거 투어'라는 것이 있어서 여행사에서 숙박이며 자전거 준비, 매일의 자전거 일정, 짐 나르기 등을 맡아서 해결해주고 본인들은 아침에 떠나서 저녁 무렵 다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자전거로 이동하며 즐긴다고 했다.
  
▲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덴마크 사람들. ⓒ김영희

  덴마크인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가 대개 출근길에 어린 자녀를 탁아소나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이 때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거나 손수레에 아이를 태워서 자전거로 밀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가 대여섯 살만 되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 학생 시절 내내 자전거가 발이나 다름없이 된다. 저절로 자전거 타기의 명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둘이서 나란히 이야기하며 가는 사람, 친구 둘이서 한 사람은 걷고 한 사람은 자전거 타고 함께 가는 사람, 자전거가 당나귀라도 되는 양 무거운 짐을 앞에 옆에 뒤에 잔뜩 싣고 가는 우편배달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는 연신 핸드폰 번호를 눌러대며 가는 젊은이, 주머니에 손 넣고 자전거 타는 사람, 아예 뒷짐 지고 자전거 타는 사람 등 가지가지 재미있는 광경도 여기서는 일상사일 뿐이다.
  
▲ ⓒ김영희

  
▲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덴마크 사람들. ⓒ김영희

  자전거 패션 또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 목에 두 겹 세 겹으로 머플러를 두르고, 겨울에는 모자·장갑·방한 신발이 필수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아무렇게나 두른 머플러 하나하나가 옷 색과 조화를 이루어 멋스럽고 개성적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긴 털 코트를 입고 점잖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머니, 짧은 치마에 부츠를 신은 직장 여성, 청바지에 하이힐을 신고 페달을 밟는 여자 등 다른 데서는 잘 볼 수 없는 자전거 패션도 많다.
  
  덴마크 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소개할 때면 '팬케이크처럼 평평한 나라'라고 말한다. 전 국토가 평지이고 제일 높은 곳이 173m라니 그럴 만도 하다. 덴마크가 자전거 왕국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춥고 긴 겨울과 오후 3시면 어두워지는 긴 밤, 끊임없이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를 생각하면 자전거 타기에 꼭 유리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인 합의 하에 적극적인 자전거 장려 교통정책에 힘입은 바가 훨씬 크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늘리고 자전거에 우선권을 주어 안전하고 빠르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정책과 아울러 자동차에 대한 중과세, 비싼 주차료 등의 자동차 억지책이 자전거 인구를 크게 늘리는 데 주효했다고 본다.
  
  자전거가 개인이나 사회에 기여하는 점은 특별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코펜하겐의 그 많은 자전거 부대들이 만일 저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닌다면 그 비용이 어떨까. 개인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대기오염, 교통체증 증가, 주차시설과 도로확장으로 인한 환경파괴, 사고 위험 증가 등의 비용을 물어야 할 것이다.
  코펜하겐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별로 볼 수 없다. 최근에는 이곳에도 인스턴트 식품으로 인한 체중 증가를 우려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 비하면 과체중 인구가 훨씬 적은 셈이다. 이 곳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자전거에 둔다. 자전거가 덴마크 국민의 건강증진에 톡톡히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 우체부의 자전거. 덴마크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생활의 동반자다. ⓒ김영희

  나도 이제는 아주 원거리가 아닌 경우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휘발유의 힘이 아니라 내 두 다리로 바퀴를 움직여서 간다는 생각에 여간 뿌듯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어디나 선뜻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이곳의 도로 환경 덕분이리라.
  
  이제 봄이다. '우리도 자전거를 타보자'라고 말하기에는 황사며 심각한 대기오염이며 경사길이며…. 조건이 너무나 열악하다. 그러나 발상을 달리할 수도 있다.
  
  황사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탈수록 대기오염이 줄어들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탄다면 자전거 길도 늘어날 테고 자전거를 위한 우선제도가 생길 것이다. 경사 길을 우회하는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주도록, 겨울철 빙판 길은 자전거도로부터 먼저 녹여주도록 우리도 당국에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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