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29>]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풍습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시에서는 해마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 시청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점등식을 한다. 올해는 11월 17일 오후 4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분위기를 돋우고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펜하겐 시장이 점등을 했다. 이는 크리스마스 시즌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이때부터 주요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 등이 설치되고 사람들은 집 앞과 창문에 색색의 작은 반짝이들로 수를 놓기 시작한다. 어둠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등은 음울한 겨울철, 사람들의 마음을 한결 밝고 가볍게 만들어준다.

이어 곳곳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사람들은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곳에선 11월 하순이 되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끼리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을 주고받는다. 우리처럼 그냥 알아서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령 아이들은 부모에게, 부모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선물 목록을 10개쯤 미리 알려주어 그 중에서 선물을 산다. 한 사람에게 적어도 2~3개, 많으면 10개 정도의 선물을 준다고 한다.

덴마크 어린이들은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매일 작은 선물을 받는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칸이 나뉜 '크리스마스 달력'이라는 것이 있어 초콜릿이나 작은 장난감 따위를 예쁘게 싸서 매 칸에 넣어둔 것을 아이들이 날마다 하나씩 열어보는 것이다.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날까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달래주고 남은 날을 세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 특별한 '크리스마스 초'를 켜는데 25칸으로 나뉘어져 매일 한 칸씩 태우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인 크리스마스까지 얼마나 남았나 매일 세는 셈이다.

'크리스마스 화환'도 빠져서는 안 되는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초록 솔가지를 빨강 리본으로 둥글게 엮어 초를 4개 세운 것으로 12월 매 일요일마다 초를 하나씩 켜서 크리스마스 전 일요일에 4번째의 초를 켜게 된다.
▲ 12월 매 일요일마다 초를 하나씩 켜도록 돼 있는 크리스마스 화환. ⓒ김영희

12월로 들어서면 진짜 크고 작은 전나무가 가득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시장이 곳곳에 선다. 술 회사들은 '올해의 크리스마스 맥주' '올해의 크리스마스 스냅스(덴마크 고유의 독한 술)'를 발표하고, 로열코펜하겐(덴마크의 대표적인 도자기회사)가게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테이블 세팅'을 전시하고, 제과점들은 크리스마스 과자와 케이크를 진열하며 생강, 계피 같은 진한 향신료 냄새를 거리로 풍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강이나 계피를 덴마크인들은 크리스마스 향신료로 알고 있는데 주로 크리스마스 때 쓰기 때문이다.

12월은 '크리스마스 점심'의 계절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철에 함께 하는 식사를 '크리스마스 점심'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파티를 말한다. 늦은 오후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계속되고 대부분 금요일에 열린다. 사무실 직원들끼리, 그리고 가족, 친지, 친구들끼리 같이하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점심'이 있다. 우리의 송년회와 흡사하다. 직장인들은 업무가 끝난 후 6시경부터 구내식당에서 파티를 연다. 식당들도 금요일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단체예약 손님들로 붐비기 일쑤다. 음주운전을 막기 위해서 시내에는 새벽에 특별 버스나 기차가 다니는데 파티가 끝나 집으로 가는 사람들로 만원이 된다.

12월 중순의 일요일에는 친지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크리스마스 음료 파티'를 한다. 크리스마스 특별 술인 '글뤽'과 함께 '애블르스키버'(동그란 모양의 도넛. 분말설탕, 잼과 함께 먹는다)를 대접한다. '글뤽'이란 데운 포도주에 클로버, 계피 같은 향신료 그리고 건포도며 아몬드 등을 넣은 것이다. 춥고 껌껌한 겨울날 덴마크인들은 따끈한 글뤽, 아늑하게 장식한 촛불, 그리고 모인 이들의 다정한 대화로 마음을 덥힌다.

그밖에 여기저기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음악회가 열려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대개 헨델의 메시아나 바하의 수난곡이 연주되는데 매우 인기가 있기 때문에 미리 표를 사두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백화점과 고급가게들은 선물장만에 열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음식 장만 또한 눈앞에 닥친 과제이다. 12월 24일부터 사흘 간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시장도 미리 봐야 하고 모여든 가족을 위해 크리스마스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인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상상할 수도 없다. 평소에는 잘 만나지 않는 부모 자식들도 이때는 꼭 모이게 되는데 아무리 멀리 있어도 크리스마스 때는 꼭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트리는 12월 23일이나 24일 날 비로소 장식을 한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미리 사면 이 날까지 바깥에 두었다가 방안으로 들여와서 크리스마스트리 카펫을 깔고 그 위에 나무를 세운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금박이나 종이 오린 것 혹은 빨간 사과 등을 매다는데 이 속에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보이지 않게 넣기도 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켜는 초는 반드시 진짜 초여야 한다. 장식이 끝나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그동안 장만한 선물들을 놓아둔다.

24일 저녁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명절분위기는 절정에 달하고 6시경 가족이 둘러앉아 '크리스마스 정찬'를 시작한다. 이 크리스마스 정찬은 덴마크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으로 미국의 추수감사절 저녁이나 한국의 설날 조반에 비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음식의 주메뉴는 오븐에 구운 돼지고기와 오리나 거위요리인데 반드시 빨간 양배추 절임과 고기국물에 담갔다 설탕에 조린 감자를 곁들여야 한다. 그 외에 절인 청어, 연어, 바삭바삭한 베이컨, 햄, 간 다짐과 각종 치즈를 먹는다.

후식으로는 크리스마스 특식인 '아몬드를 넣은 쌀 푸딩'이 나온다. 쌀을 끓인 것에 아몬드 다진 것과 크림, 바닐라를 섞은 것으로 체리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후식을 내기 전 부엌에서 통 아몬드 한 알을 후식그릇 하나에 슬쩍 넣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후식을 먹는 동안 '누구 그릇에 통 아몬드가 들어 있을까'가 총 관심거리가 되고, 통 아몬드를 찾아낸 사람은 그 해의 '아몬드 선물'을 받게 된다.

식사가 끝나면 가족들은 방 한가운데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주위에 둘러서서 손잡고 돌며 크리스마스 캐롤을 대 여섯 곡 부른다. 손잡고 돌 때 발을 구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몸짓을 하는데 이것을 '크리스마스 춤'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춤'이 끝나면 선물을 펴보는 차례이다. 응접실에 느긋하게 둘러앉아 트리 밑에 쌓인 선물을 하나씩 펴보노라면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기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날인 25일은 진짜 '크리스마스 점심'을 먹는데 이때는 친척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한다. 전날 남은 찬 음식을 먹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날인 26일에는 크리스마스이브나 크리스마스날 초대를 받은 쪽에서 반대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고 마신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높은 덴마크의 겨울은 해를 거의 나지 않는 찌푸린 날씨에 밤이 몹시 길다. 추분만 지나면 낮의 길이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짧아지다가 11월로 들어서면 오후 3, 4시부터 어두워져서 6시쯤이면 마치 한밤중처럼 깊은 어둠 속에 잠기게 된다. 자칫 움츠러들고 우울해지기 쉬운 깜깜한 겨울을 덴마크인들은 크리스마스에 기대어 훈훈하게 넘기는 것 같다. 긴 긴 밤의 계절, 북구의 겨울에 크리스마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덴마크어로 크리스마스를 '율'이라고 하는데 수레바퀴를 의미한다고 한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 바로 다음에 있다. 동지를 지나서 크리스마스에 다다르면 이제 해는 다시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수레바퀴의 가장 낮은 지점을 지나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시점이 크리스마스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은 북구의 긴긴 밤을 이겨낸 환희의 명절을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0년도 더 전, 덴마크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교회 관계자들은 크리스마스로 부르도록 고심했으나 덴마크인들은 끝내 '율' 이라는 단어를 고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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