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지금부터 제대로 놀아보자"
"진보신당, 지금부터 제대로 놀아보자"
[진중권 칼럼] 진보신당, 창당을 향한 진군
"진보신당, 지금부터 제대로 놀아보자"
선거 참여를 놓고 말이 많았지만 진보신당도 정당인 한 승산이 없어도 지나칠 수 없는 게 선거다. 적어도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의 현재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분패 했지만, 심상정, 노회찬 후보는 수도권에서 당선권에 근접했고, 그밖에도 울산의 노옥희, 거제의 백순환 후보는 친박연대나 통합민주당을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와 당당히 겨루었다.

0.1%가 모자라 의석을 못 얻은 것은 정말 아쉽다. 하지만 10년간 쌓아온 상징자본을 몽땅 민주노동당에 넘겨 준 채 빈 손으로 뛰쳐나온 정당이라는 점, 게다가 당을 알리는 데에 쓸 수 있었던 시간이 채 한 달이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3%에 근접한 득표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여기서 나는 외려 가능성을 본다. 4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출발할 테니까. 진보신당이 투표용지의 끄트머리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황당하던지.

자금과 조직의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진보신당 당원들은 명예롭고 훌륭하게 싸웠다. 이 글을 싣는 <프레시안>에조차 진보신당의 배너 광고는 결국 걸리지 못했다. 돈이 없어 광고를 못했단다. 그나마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있는 지역구는 형편이 나은 편이었고, 지방에서 뛴 동지들은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분투해야 했다. 달랑 한 두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선거전을 치러야 했던 서울과 지역의 후보들에게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진보 정치의 보편화

2000년 총선에서 의회진출이 좌절되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하지만 그 고투는 4년 후에 10석의 결실로 나타났다. 그때에 비하면 상황은 훨씬 유리하지 않은가. 4년 후에는 그보다 더 큰 기대를 가져도 될 것이다.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보수의 광풍 속에서 자신과 열정을 잃은 이들이 많다. 하지만 '2MB(이명박)' 정권의 극단적 시장주의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그럴수록 대중은 진보정치를 선택적 옵션이 아닌 생존의 전략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주요한 지역에서 진보신당의 후보가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과 경쟁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이제 수도권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진보정치가 그저 '좌파'라 불리는 소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정도로 보편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도는 범례적 성격을 갖고 있어, 서울에서 나타난 현상은 조만간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과거에는 '될 사람 뽑아주자'는 사표 심리가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곤 했다. 하지만 이제 최소한 '될 사람 뽑아주자'는 논리로 진보정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사라졌다.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에서는 거꾸로 민주당 후보가 자진해서 사퇴를 하겠다는 해프닝을 벌이지 않았던가. (이번 선거에서 사표론은 외려 민노당에서 편 것으로 안다.) 선거 패배라는 현상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진보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이 변화된 시각이다.

한나라당 승리의 비결

38%라는 낮은 국정 지지율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이 민주당을 한나라당을 견제할 세력으로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는 민주화가 사회의 주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민주정권 10년 동안 민주화의 과제는 어느 정도 성취되었고, 대중들은 다른 욕망을 갖게 되었다. 민주당이 여전히 민주화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한나라당은 그새 변화된 대중의 욕망을 시장주의의 자루 속에 집어넣는 데에 성공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것을 개혁과 진보의 수사로 치장했다. 그러다 보니 판단에 혼란이 생겨, 대중들은 자신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탓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표방하던 개혁과 진보의 가치 때문이라고 믿어버리게 됐다. 한나라당에는 이런 애매모호함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그들은 선명하고 화끈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걺으로써 혼란에 빠진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아 버렸다.

물론 민주당도 곧 충격을 회복하겠지만, 견제 세력으로서 과거만큼의 신뢰를 되찾지는 못할 것이다. 대중은 이른바 민주정부 하에서 자기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 체험이 대중으로 하여금 개혁과 진보의 가치를 불신하게 만들고, 그것이 보수에 대한 복고적 향수를 일으켜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그 승리의 비법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견제 세력으로서 진보정당
▲선거 결과를 놓고 서로 격려하는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후보.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의 수많은 실수에도 민주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외에는 한나라당과 뚜렷하게 차별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경제 정책의 경우, 외려 한나라당 것이 대중에게는 훨씬 더 선명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 같지는 않다. 인위적 경기 부양으로 고용을 약간 늘려 줄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대중의 삶을 질을 올려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 정권의 생각은 1%에게 부를 몰아주면 전 국민이 그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가. 1%에게 몰아주는 만큼 줄어드는 부분은 결국 세금으로 메우거나, 아니면 복지의 축소와 같은 형태로 국민이 그 값을 치러야 한다. 그 결과 사회는 더 극단적으로 양극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대중의 불만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몇 달이면 웬만큼 무딘 사람들도 이명박 정권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다는 것. 이번 수도권 지역에서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제1 야당의 후보를 제치고 놀라울 정도로 선전을 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중들이 진보정당을 제대로 된 견제 세력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신당은 대중의 이 변화된 욕망에 맞춰 자신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진보의 적은 보수의 광풍이 부는 바깥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면에 있다.

헤게모니, 그게 뭐니?

민노당에서는 선거 결과를 놓고 환호를 했다고 한다. 물론 축하할 만한 일이나, 지금 그렇게 만세나 부르고 잇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권영길 후보는 무엇보다 지난 대선의 후보였고, 강기갑 후보는 한나라당 분열의 도움,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박연대의 지원을 받았다. 정당 투표의 득표율은 배타적 지지를 선언한 단체와 세력의 고정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뽑힌 비례대표 의원도 창조한국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인물이란다.

진보세력의 '헤게모니'니 어쩌고 하는 헛소리가 들린다. 진보신당은 민노당과 한가하게 헤게모니 싸움이나 해서는 안 된다. 두 당은 애초에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가 다르다. 민노당이 낡은 이념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는 한, 외연의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 결국 한총련이나 전국연합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그 낡은 이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운동권에 속하는 세력을 누가 더 많이 끌어 모으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쟁일랑은 민노당 혼자 하게 내버려 둬라. 더 중요한 것은 현대적 의미의 진보정당으로 제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운동권 세력들 끌어 모으는 것은 당장 세를 확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나, 그래봤자 장기적으로는 동네 리그로 돌아갈 뿐이다. 그 좁은 테두리 밖에 폭넓게 존재하는 진보의 염원을 조직하는 것. 핵심은 그것이다.

유리잔 빚기

아울러, 10년에 걸친 진보정당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제대로 기능하는 당적 시스템을 갖추는 대신에 당내 커뮤니케이션을 정파들 간의 야합으로 대신해 왔기 때문이었다. 창당 과정은 정파 간의 밥그릇 조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이념들과 가치관을 당이라는 용광로 속에 녹여 맑고 선명한 색채를 유리잔을 빚어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필요성 내지 필연성에 대해서는 암묵적 합의가 폭넓게 존재한다. 때는 무르익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광풍을 한탄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진보주의자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정책의 개발도 충분하지 않고, 대안의 제시도 풍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열정이다. 한국의 정치를 한탄하는 것도 좋지만, 그 한탄을 좀 더 실천적으로 하는 건 어떨까? 제발 당이 하는 꼴을 보고 나중에 지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직접 참여하여 당에 지지할 만한 꼴을 갖추어 주면 안 되는가?

과거에 진보의 적은 '국가'였지만, 지금 그보다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국가마저 한 입에 집어 삼켜버린 '시장'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지 않던가. 민주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것도 결국 이 권력이동과 관련이 있을 게다. '독재냐, 민주냐'는 사실 진보정치의 본령이 아니다. 법 앞에서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시장 속에서 '실질적' 평등의 문제를 요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정치가 아닌가. 그 정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ps.

자금과 인력의 압도적 열세 속에서 진보신당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던 당원, 지지자, 자원봉사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 그리고 뜨거운 동지의 인사를 보낸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여유를 가지고, 진보의 내용을 새로 채우고, 진보의 형식을 새로 칠하고, 진보의 지형을 새로이 짜는 작업을 시작하자. 2년 후 지방선거, 그리고 4년 후 총선에서는 제대로 놀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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