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청타'와 '대자보'를 알까?
MB는 '청타'와 '대자보'를 알까?
[김종배의 it] '언론' 틀어쥐면 '언로'는 팽창된다
2008.07.18 10:31:00
MB는 '청타'와 '대자보'를 알까?
1.
  
  '청타'를 기억하시나요? 파랑 먹지를 타자기에 끼운 뒤 한 글자 한 글자 치면 글자 부분만 구멍이 뚫리죠. 그 청타 먹지를 등사기에 놓고 밀면 유인물이 나왔습니다. 누런 갱지에 여기저기 잉크 자국이 번진 유인물이었지요.
  
  '대자보'는 기억하실 겁니다. 커다란 전지에 검정 파랑 빨강 매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건물 벽이나 큰 나무판에 붙이곤 했죠.
  
  모두 전두환 시절의 얘기입니다. 언론이 죽어있던 5공 때의 얘기입니다.
  
  2.
  
  그 땐 진보 언론이니 보수 언론이니, 메이저 언론이니 마이너 언론이니 하는 구분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언론이 '어용' 또는 '관제'라는 이름으로 불렸죠.
  
  방송은 '땡전 뉴스'로 넘쳐났고 신문엔 '보도지침' 재갈이 물려 있었습니다. 방송은 9시 시보가 울리기가 무섭게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습니다. 신문은 사진 한 장 싣는 일, 기사 크기 정하는 일조차 맘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전두환 정부의 통제와 간섭에 따라야 했습니다.
  
  대체 미디어는 없었습니다. 인쇄소엔 형사가 수시로 들락거리며 '불온 문서'를 제작하는지를 사찰했고, 복사집엔 '불순한 전단' 복사가 맡겨지면 신고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 구본홍 YTN 신임사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17일 오전 서울 상암DMC 누리꿈스퀘어에서 다음 아고라 회원들이 "구본홍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청타'와 '대자보'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알권리를 보장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알권리'를 충족해야 했고, 어느 곳에서도 표현물을 맘대로 제작할 수 없었기에 후미진 곳에서 몰래 타자기를 두드리고 등사기를 밀어야 했습니다.
  
  3.
  
  왜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요즘 돌아가는 꼴이 옛날이야기를 반추하게 하네요.
  
  이러다간 '씨'가 마를 것 같습니다. 방송은 국정홍보방송으로 전락할 것 같고, 신문은 '보수지 카르텔' 체제로 회귀할 것 같고, 인터넷은 개점휴업 상태로 몰릴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사정이 그렇습니다. YTN엔 이미 '낙하산'이 투하됐습니다. 그 다음은 KBS겠죠. 인사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MBC엔 징계 칼끝이 겨눠져 있습니다.
  
  신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촛불'이 켜지기 전에 이미 문제가 됐죠? 정부 광고나 협찬이 차별적으로 집행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 공교롭게도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공방 유탄이 이른바 '진보 언론'에까지 튀고 있습니다. 광고주가 몸을 사리면서 광고 집행을 아예 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어수선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의 제재에 이어 이번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불법 복제물을 카페나 블로그에 올린 네티즌을 포털이 제재하지 않으면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고, 과태료를 세 번 받으면 포털 폐쇄까지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입니다. 이러면 네티즌의 '표현'은 위축됩니다. 정보 접근권이 취약한 네티즌이 기존 언론의 보도물 등에 근거해 입장을 밝히는 행위가 제한되고, 포털은 적극적 감시자로 변모하게 됩니다. 포털이 몸을 사리면 더불어 인터넷 언론도 위축될 겁니다.
  
  4.
  
  여기서 갈라야겠네요.
  
  과잉해석이 있고 과대망상이 있습니다.
  
  '씨'가 마를 것이란 전망은 사실 과잉해석입니다. 방송에 재갈이 물리고 신문이 한쪽으로 쏠리고 인터넷에 한파가 몰아닥쳐도 '씨'가 마르는 건 아닙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모바일이 있습니다. 복사수단은 널려있습니다. 전두환 시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체 표현수단은 넘쳐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씨'가 마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과대망상입니다. 언론을 '어용' 또는 '관제'로 일색화했던 전두환 정권조차 민심을 잡지 못했습니다. 유인물이나 대자보에 의존했던 '저항의 목소리'는 지금의 광랜에 비견될 만큼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본질은 언론이 아니라 언로입니다. 언론을 단단히 틀어쥔다고 해서 시중의 언로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을 틀어쥐면 틀어쥘수록 언로는 다변화되고 팽창됩니다. 지금은 그럴 여건이 충분히 조성돼 있습니다.
  
  역효과가 날 겁니다. 언론을 틀어쥘수록 언로를 통해 유포되고 확대되는 정보와 의견은 더욱 사나워질 겁니다. 언론이 '공정' '객관' '중립'의 룰에 묶여 최소한의 '사실보도' 준칙을 지켜야 하는 반면에 언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듬뿍 담아 '사실'과 '의견'을 혼합시키겠죠. 이러다 보면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는 '괴담'도 더욱 많이, 그리도 더 빠르게 전파될지 모릅니다.
  
  교훈도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전두환 시절의 '어용'·'관제' 언론이 반증합니다. 아무리 정보를 정권 입맛에 맞게 골라 퍼뜨려도, 아무리 정부 입장에 서서 국민을 '계도'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민심이 정치적 태도를 정하는 데에 언론이 전달하는 정보, 언론이 제시하는 의견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한 요인은 바로 생활입니다. 민심이 자기 삶을 꾸려나가면서 겪게 되는 정부 정책과 정부 태도를 보면서 정치적 태도를 정합니다.
  
  5.
  
  이명박 정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느 게 득이 될까요?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젠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실용' 즉 효율과 효용만 갖고 따지죠. 어느 게 실용적일까요?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입니다.
  
  진리는 아주 간명한 모습을 띠고 나타납니다. 풍선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약이 입에 쓰다고 내치면 합병증에 걸리는 것. 이것 또한 진리입니다.
  
  하나 더 말할까요? 소탐대실은 동서고금이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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