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 신문사를 습격"…<조선일보>가 아닙니다
"폭도, 신문사를 습격"…<조선일보>가 아닙니다
[기고] 위기에 직면한 일본의 리버럴 저널리즘
"폭도, 신문사를 습격"…<조선일보>가 아닙니다
'폭도, 신문사를 습격'.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은, 지난 6월 29일자 조간에서 한국의 '촛불 집회'를 놓고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에서 3대 신문의 하나로 꼽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리버럴한 논조로 알려져 있음에 틀림없는, <아사히신문>이 이번 '촛불 집회' 관련 기사 제목에 '폭도'란 표현을 쓴 것은, 일본 언론의 현황을 보여주는 명료한 징후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내 '촛불 집회' 보도를 둘러싼 상황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촛불 집회' 보도의 참상
  
  반드시 <아사히신문>만 아니라 일본 언론에 있어, 촛불 집회가 크게 확산된 한국의 이번 사태가 일단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로 비춰진 것은 아마도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발족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이명박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만이라면 그들도 어떻게든 조금은 이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고생을 비롯해 아이가 딸린 여성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는 점은 정치 보도에 종사해 온 기존 언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사태였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촛불 집회가 연일 거세게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일본 내 보도는 대개 소규모의 기사에 그쳤다.
  
▲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은 지난 6월 29일자 조간에서 '폭도, 신문사를 습격'라는 제목으로 촛불 집회를 보도했다.

   이렇듯 '촛불 집회'보도가 의외로 적다는 것은, 마침 같은 시기에 있었던 티베트나 몽골에서의 정치적 사태에 관한 보도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명확하게 두드러진다. 후자의 경우는 지방 도시에서 일어난 전해지는, 말로 밖에 확인할 수 없음직한 사태까지 보도한데 비해, 한국의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이웃 나라의 수도 한 가운데서 매일같이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하는 시위인데도, 그것을 다루는 기사는 횟수도 적었으며, 기술 자체도 경찰 발표 등에 기초한 비교적 짧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촛불 집회가 가장 고조된 6월 한 달 동안의 보도 양상을 보면, 눈에 띄게 많았던 <아사히신문>조차 횟수는 합계 10회. 그 중 해설 기사의 내용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을 빼면, 사실 보도는 그 규모가 최대였던 6월 10일 시위에 대해서조차 다음 날 조간 국제면에서 23줄 정도의 짧은 기술로 다뤘을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에서 말한 '폭도, 신문사를 습격'이라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것은 6월 29일 조간에 실린 것이었지만, 제휴 신문인 동아일보 본사가 '습격'당했다는 기사에 딸린 사진(동아일보 제공)의 날짜는 26일. 즉 그것은, 사실 을 알리는 속보라기보다는, '행동'의 '과격화'라는 줄거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아사히신문>과 <동아일보>가 합작한 기사라는 점이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사에는, 왜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 3개 신문이 그렇게 항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에 대한 분석 등은 일체 없이, '폭력 행위'에 대한 비난만 격앙된 목소리로 강조됐다.
  
  <아사히신문>에서는 인터넷을 활용해 조·중·동을 비난하기 시작한 시민의 행동을, 6월 19일에는 <조선일보>의 6월 18일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네티즌들이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본지를 비롯한 주요 신문사에 광고를 내지말도록 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거기에서는 처음부터 조·중·동이 피해자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논조는, 7월 1일이 되면서 드디어 '심각, 사이버 폭력'이라는 제목의 상당히 큰 해설기사로 확대되고 논조도 강해졌다. 여기서 <아사히신문>은 '도덕성 결여된 네티즌의 사이버 폭력 vs 냉정한 대응을 촉구하다가 공격을 받은 3대 신문(조·중·동)'이라는 대립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촛불 집회의 배경 설명으로 삼았다.
  
  일본 미디어가 안고 있는 문제
  
▲ 촛불 집회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7월 1일이 되면서 드디어 '심각, 사이버 폭력'이라는 제목의 상당히 큰 해설기사로 확대되고 논조도 강해졌다.

  일본 3대 신문 중 가장 우파인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촛불 집회의 '과격화'를 비난하면서 '과격한 행동으로 치달리게 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 미군 철수등 북한 당국과 같은 주장을 내걸고 있는 친북 단체의 멤버들로 여겨진다'(6월 30일 <요미우리신문> 조간)는 등으로 단정지어 보도한 것은, 이에 대한 찬반은 둘째치고 너무나도 반공보수주의다운 인식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버럴 좌파라고 여겨져 온 <아사히신문>이 촛불 집회를 이렇게 인식·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입장과 기사 내용에 충분히 격차가 있어 보이기에 일본 언론의 현황를 돌아보거나 한일 언론의 상호 이해나 상호관계를 재고하는데 있어서도, 제대로 유의해 두어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임에는 틀림없다.
  
  당연히 이렇게 말하면, 게다가 그것을 한국 쪽에서 들으면, 거대 신문사의 논조가 그런 것에 대해 뭘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놀라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사실 일본의 3대 신문 중 <아사히신문>은 <동아일보>와,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은 <조선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일보>와, 각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제휴 관계에 있는 일본의 기성 거대 신문사가 인터넷 신문이나 인터넷 방송국 등 새로운 미디어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의 조·중·동을 옹호하는 입장에 선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언론이 언론을 옹호하고, 위기의 시대에는 연계해 체제 옹호에도 나서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일이긴 했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아사히신문>을 축으로 하는 '리버럴'한 신문 보도가 그 내실에서는 비판적 기능을 잃어버리고 체제 옹호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태는, 한국 조·중·동보다 좀 더 심각한 위기의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경우 TV 각 채널마다 신문사와 계열사 관계에 있어 TV보도의 독립성이 낮다. 게다가 실제로는 신문사보다도 훨씬 대중 심리에 영합하여 비판성이 약해지고 있기에, 한국에서 TV가 해내고 있는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의 촛불 집회에서는 문화방송(MBC)의 <PD수첩>이 크게 비판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해 들었지만, 그런 것을 일본의 방송국에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과 한국이 다른 또 하나의 요소는, 인터넷이 가지는 비판적 기능의 차이다. 한국은 인터넷의 보급이나 이용률이 일본보다 앞서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언론이 실제로 많은 시민이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데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 힘이 아직 약하다. 비판 기능이 약한 것은 고사하고, 일본에서는 '인터넷 우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로 인터넷의 힘을 언설 보급에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익'쪽이다.
  
  게다가 그 이용 방법은, 인권을 무시한 개인 공격이나 근거없는 중상을 통해 타인의 행동을 꼼짝달싹 못 하게 하는 종류의 것들이라, 아사히 신문이 말하는 '사이버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뿌리 깊으며 인터넷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사회비판의 기능을 가지게 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아사히신문>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리버럴'한 매체가 체제옹호적으로 변질되고 비판적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일본의 언론 상황에 지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간의 '촛불 집회' 보도에서 그 징후가 명확하게 드러났고 굉장히 심각한 수준의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촛불 집회'의 고양을 실제로 체험하고 거기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 비판의 표현방식을 발견한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이 이웃나라인 일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나쁜 인상을 가질지도 모를 상황이 신문 보도를 통해 만들어 지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 주길 바란다.
  
  역사 문제와 위기에 직면한 일본의 리버럴 저널리즘
  
▲ "이 촛불 시위가 뒤흔들고 있는 이명박 보수정권에 대한 그들의 굴절된 기대가 섞여 있다는 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연합뉴스

  사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의 뿌리는 훨씬 깊어, 일본의 리버럴리즘 그 자체의 균열,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일 사상연계의 질적 변화에까지 연관돼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애초 분명 리버럴 좌파였던 <아사히신문>은 도대체 왜, 민중운동의 새로운 형식을 예감하게 하는 이번 촛불 집회를 옹호하지 않고, 반대로 '폭도'등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것일까?
  
  거기에는 단순히 제휴신문인 <동아일보> 등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이유로 이 촛불 시위가 뒤흔들고 있는 이명박 보수정권에 대한 그들의 굴절된 기대가 섞여 있다는 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사히신문>은, 6월 3일 조간에 게재한 다소 큰 해설기사에서, 촛불 집회가 새롭게 들어선 이명박정권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그 끝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 방일 당시 미래지향을 강조한 일본과의 관계도, 낮은 지지율이 계속되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사설에는 그들이 왜 촛불집회를 염려하는지 그 이유가 굉장히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도대체 여기에서 말하는 '미래지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사'에 대해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해서 특히 언급하는 것은, 전 정권인 노무현 정권과의 차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대를 받으며 출발한 노무현 전 정권의 실적 일반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적어도 그 이전과 달랐던 점으로 '과거사' 정리에 대한 상당히 원칙적인 자세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정권 아래서 진행된 '과거사' 관련 입법조치나 각종 위원회의 활동이 많은 논란과 타협의 산물이라 치더라도, 진실규명 등의 점에서 확실히 중요한 진전을 어느 정도 낳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무현 정권 아래 한국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의 일본의 고이즈미(小泉)·아베(安部) 양 정권하에서 진행된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참배나 역사수정주의의 움직임과 극히 대립했고, 그것이 한일관계에 민감한 긴장을 낳고 있었던 점은 틀림없다. 한국에 새롭게 탄생한 보수인 이명박 정권은 '미래지향'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대응 입장의 태도 변경을 표명했고, 일본의 리버럴인 <아사히신문>은 그것에 기대를 걸고 있던 참에 촛불시위가 다시 원점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발단이 되는 역사와 그 책임의 문제가 오늘날의 한일관계에도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사히신문>에도 그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어 특히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할 때에는, 이를 상당히 의식해 지면 편집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촛불 집회에 관한 기사의 경우도 사정은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봤을 때, 실제로 작성된 기사는, 전 정권에서부터 이어져 온 친일파의 철저한 청산이나 군사독재 정권하의 폭력의 진상규명을 제지하려는 한국 보수정권의 '미래지향'에 기대를 걸고, '미래지향'의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를 촛불시위의 전국적, 세계적 확대에 오히려 우려를 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실은,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운동을 해 온,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한일연대의 경험을 통해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품어 온, 한국인들을 어쩌면 낙담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에서 가장 리버럴하고 공정한 보도를 자랑해 온 대신문인 <아사히신문>의 현황, 적어도 그 현실의 한면이란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사히신문>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리버럴 저널리즘의 이런 위기는, 2001년 1월에 발생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NHK특집방송에 대한 여당 정치가의 개입과 이에 응한 NHK가 자기검열로 방송 내용을 고의적으로 바꾼 사건, 그리고 당시 그 정치개입을 폭로한 자사의 기자를 지키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선 아사히신문사의 자기 방어적인 태도에서 이미 그 전초가 보였다. 그리고 이는 좀더 넓은 문맥에서 말하자면 일본의 '전후 리버럴리즘' 그 자체의 훨씬 뿌리 깊은 위기와 연관된 것이다. 즉 일본의 리버럴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후의 시대에 있어 침략전쟁의 과거를 청산하고, 그 반성에서 나온 '전후 헌법'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강하게 견지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에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에 포함되어 있던 다양한 기만을 재고찰하게 됐으며, 그 자부의 근거 자체가 흔들리고 만 것이다.
  
  일본의 '전후'는, '평화주의'라고 말하면서 조선전쟁(역주-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조선전쟁이라 부른다)·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에 가담해 왔으며, 그 '경제 부흥'도 한국이나 오키나와 등의 미군의 점령을 전제로 한 것이고, 그 '민주주의'조차 여성이나 재일조선인·중국인등 소수자의 차별이나 배제를 구조화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현실에 크게 의존해 성립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란, 또 그것을 지지해 온 '리버럴'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전후 일본'에서 '리버럴'이고자 해 왔던 사람들은, 지금 새롭게 이러한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촛불 집회' 보도에서 흔들리고 있는 <아사히신문>이, 그 화살을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돌려 저널리즘의 비판성을 견지하는 진정한 탈피가 가능할까 하는 점은 아직은 그 예측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 물음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사히신문>만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일본은 하나의 사상적 기로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번역 : 이령경)
  
필자 소개
  
  나카노 토시오(中野敏男) 도쿄외국어대 교수. 저서 중 <大塚久雄と丸山眞男>(青土社, 2001)가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일본의 총력전 체제와 전후 민주주의 사상>(삼인 펴냄. 2005)으로 국내에 번역됐다.
sealove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