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투표제, 위기의 민주주의 대안?"
"의무투표제, 위기의 민주주의 대안?"
[기고] 투표는 권리인가 의무인가
"의무투표제, 위기의 민주주의 대안?"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표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규정이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들이 직접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책 결정 사항이 복잡화, 세분화, 분업화,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국가와 시민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서 직접 참여에 의한 정책 결정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서 정책 결정 권한을 국민의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일반 국민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해야 하고 정책 결정과정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직업정치인들과 행정부의 직업관료들에게 정책 결정권을 위임하고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따라서 간접민주주의인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국민의 투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해 홍보 예산을 들여서 각종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국민들의 선거 참여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대통령선거의 경우 1987년 대선에서 89.2퍼센트였던 투표율이 2007년 대선에서 62.9퍼센트로 26.3퍼센트가 하락했고,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1988년 총선에서 75.8퍼센트였던 투표율이 2008년 총선에서 46.1퍼센트로 국가선거에서 처음으로 50퍼센트 미만으로 하락했다. 동시지방선거의 경우 더욱 심각한데 1995년 선거에서 68.4퍼센트였던 투표율이 2002년 선거에서 48.8퍼센트로 하락했으며, 2010년 선거에서는 40퍼센트 전후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의무투표제의 외국사례와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주장을 제시하고, 이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시사점에 대하여 논의하겠다.

의무투표제의 의의와 외국의 사례

의무투표제란 선거일에 투표를 하는 것이 법적인 의무이고 이 의무를 태만히 했을 때 각종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무투표제는 그 기원을 중세시대 스위스의 시민의회에 두고 있다. 중세 스위스의 시민의회에서 시민들은 칼을 차고 시민의회에 참석하도록 요구되었고, 시민의회에 참석하지 않거나 칼을 차고 오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무료 만찬을 먹을 수 없도록 했다.

이것은 17세기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플리머스 콜로니(Plymouth Colony)에서는 1636년에 선거 불참자에게 벌금을 부과했고, 버지니아(Virginia)는 1649년에 투표 불참자에게 100파운드의 담배로 납부하도록 벌금을 부과했다. 근대 민주주의 선거권의 체계가 잡힌 이후로는 네덜란드가 1917년부터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다가 1970년경에 폐지했고, 오스트레일리아가 1915년부터, 오스트리아가 1929년부터, 미국의 조지아(Georgia)주는 1977년부터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은 투표 불참자에게 소명 요구, 주의, 공표, 벌금, 참정권 제한, 공직취업 제한 등 다양한 제재 조치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 소명 요구는 다른 대부분의 제재 조치들과 병행하여 실시되고 있다. 제재 조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전에 투표 불참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둘째 주의는 소명 요구보다는 다소 강력한 제재 조치이다. 벨기에에서 처음 의무투표제를 도입했을 때 주의는 처음으로 투표에 불참한 사람에게 벌금 대신 널리 사용되었다. 셋째 공표는 유권자가 시민으로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공표 방법으로는 투표소나 시청, 구청 등의 청사에 투표 불참자의 성명과 인적사항을 게시하는 방법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넷째 벌금은 투표 불참자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제재 조치이다. 스위스는 1.3프랑, 벨기에는 25유로에서 125유로를 부과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는 재범자에게 가장 많은 1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다섯째 참정권 제한은 투표라는 시민의 의무를 게을리 한 사람에게 선거권, 피선거권 등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벨기에에서 유권자가 15년 이상 동안 4회 이상의 선거에 불참하면 10년 동안 투표권을 제한한다. 싱가포르는 불참자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벌금도 병과한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브라질, 싱가포르, 태국에서는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할 권리인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 연속적으로 투표에 불참한 자는 공직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투표 불참자는 3년 동안 공직에 취업할 자격이 없다.

의무투표제에 대한 찬반 논쟁

현대 민주적 선거에서 의무투표제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의무투표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면 대표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의무투표제는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도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참여와 선거를 더욱 공평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의무투표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투표를 강제하면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누가 적합한 후보자인지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여 민주주의에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의무투표제는 선거의 정당성과 대표성을 증가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의무투표제로 인하여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교육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반대론자들은 의무투표제가 정치적 선택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으며, 유권자의 기권할 권리를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에 의하면 기권은 법률로 제약될 수 없는 유권자의 권리이다. 이런 맥락에서 반대론자들은 의무투표제는 비민주적이라고 한다.

반면에 찬성론자들은 투표할 의무는 많은 다양한 의무들, 즉 납세의무, 국방의무, 근로의무 등과 비교해서 사소한 제약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일부 찬성론자들은 유권자는 선거와 같은 집합행위에서 무임승차자(Free-rider)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합리적 선택이론에 의하여 의무투표제를 주장한다. 선거와 같은 집합행위에 유권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는 공공재는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찬성론자들은 천문학적인 선거 자금을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선거에서 돈의 영향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참여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지출할 필요가 없으므로 국가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의무투표제는 투표율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다.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모든 나라에서 투표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이를 입증한다.

우리나라에 도입시 시사점

의무투표제는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투표율을 증가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를 도입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 있다. 2008년 7월 정치관계법제 선진화를 위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77.4퍼센트의 국민이 의무투표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자유선거 원칙은 우리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민주국가의 선거 원리에 내재하는 법원리로서 국민주권의 원리, 의회민주주의의 원리, 참정권 규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투표의 자유, 입후보의 자유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의무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에게 의무투표제를 도입했을 경우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서 의무투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시민사회는 투표율 저하가 대표성과 정통성을 저해하여 민주주의를 형해화 시킨다는 점과 투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의 전제라는 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민주시민 교육과 공청회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의무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치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무투표제의 자유선거원칙 침해 논란을 불식키기 위해 기권란을 병기하여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헌법개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무투표제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효성있는 제재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먼저 투표 불참자가 불참 이유를 소명하는 경우 제재 조치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 소명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투표 불참자의 유급휴무를 공제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공직에 대한 취업을 제한하며 일정기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방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의무투표제를 도입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유불리나 당리당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치의 정당성과 정통성, 대표성을 확보하고, 정치가 국민 전체의 이익과 공익을 반영하도록 할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sealove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SPONSO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