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한국에서 살아보니] '우리끼리만' 친한 사람들
2009.04.28 14:44:00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그동안 여기저기 떠도느라 하고 싶어도 못한 취미생활을 이제야 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 가까운 곳에 등록을 하고 배우러 나갔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면 되는 줄 알았더니 거기에는 취미반의 세계가 있었다. 그 반 학생들은 전원이 여자였고 그 중에 반장이 있었다. 첫 시간에 선생이 '그냥 계속 하시죠' 하는 바람에 한 명이 반장이 되었다. 아마 작년에도 반장이었던 모양이었다.

반장이 하는 일은 주로 돈을 걷는 일인 듯 했다. 그 돈은 수강료 이외의 것으로 이를테면 쉬는 시간에 마실 음료를 사는 데에 쓰는 돈이었다. 두 시간 수업 도중 쉬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면 다 같이 둘러앉아서 반장이 사온 음료를 마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음료를 싫어해서 안 마신다고 하자 반장과 다른 이들은 매우 이상한 모양이었다. 왜 안 마시느냐, 마셔라 하고 무척 친절하게, 매번 강권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거절을 하자 그들은 상당히 기분이 나쁜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음료를 억지로 마실 수는 없었다.

그들은 취미반도 단체나 마찬가지니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 같이 특정 음료마시기가 이에 해당하는데 그 음료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전연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듯 했다.

쉬는 시간의 단체행동이 음료 마시기로 그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무언가 간식거리를 싸와서 전체에게 권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정이 넘쳤다. 나는 자진해서 반을 위해 아침 일찍 간식을 장만해서 싸오는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어찌 그리 이타심이 많을까. 몹시 너그럽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도 한번은 무언가 싸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끼게 되었다.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암묵적인 상호 교환제도임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간식을 자주 싸가지고 오는 사람일수록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았다. 즉 반에서 인정을 받는 셈이었다.

반장은 음료비 외에도 여러 가지 명목의 돈을 걷었다. 그 중에는 취미반을 운영하는 주최 측에서 부담해야 할 것을 수강자에게 떠넘기는 비용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여유를 뽐내 듯 척척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그들은 돈 내기를 거부하는 나를 매우 불쾌하게 바라봤다.

사실 반 학생들은 매우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반장도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좋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단체행동을 무시하는 비 협조자였다. 그 반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는 틀린 일이었다.

이것은 취미반 정도니 상관이 없지만 만일 내가 꼭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단체행동에 나의 개인견해나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음료지만 같이 마시고 수긍이 안 되는 돈도 남들 따라서 내야 할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다음 반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반의 구성원은 10년 이상 같이 배운 사람들 여섯 명이었다. 원래는 열 명인데 현재는 사정상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기존의 학생들은 마치 친자매처럼 친밀해 보였다. 호칭도 나이에 따라 언니 동생 하는 식의 가족호칭이었다. 수업시간 전과 쉬는 시간이면 그들끼리 앉아서 소곤대고 깔깔거렸다.

서로의 사소한 걱정거리에 대해서도 그들은 다 같이 걱정하고 위로하고 충고를 하고 판단을 내렸다. 수업에 늦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해서 왜 안 오는지, 몸은 어떤지, 오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시시콜콜 챙기고 커피며 간식을 가져와서 쉬는 시간이면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나누어 먹었다.

그중 제일 나이가 적은 막내라고 불리는 이가 몸을 재빠르게 움직여 심부름을 했고 언니들의 비위 맞추는 시늉을 해보였다. 반면 언니들은 먹을 것을 넉넉히 가져오거나 무언가를 가져와서 인심을 쓰는 것 같았다. 시간이 끝나면 그들은 항상 함께 점심을 먹으러 몰려갔는데 '왕언니'라는 이가 차를 제공했다.

그들은 나에게 아주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도 있고 그마저 안하기도 했다. 새로 들어온 나는 그들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친밀한 관계망 바깥에 놓여있는 나는 저절로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나이가 어린 학창기라면 상당히 상처를 받을만한 상황이었다.

그들에 대해 점점 알게 되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계를 하고, 그 외에도 함께 놀러 다니고, 함께 쇼핑 다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안 것이 아니고 그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주워들은 결과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 그리고 입고 있는 옷들이 서로 비슷했다.

한번은 수업이 끝난 후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은 차로 가는 조금 먼 거리에 있었다. 차가 없는 나에게 그들은 차로 같이 되돌아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식사 후 그들이 즉흥적으로 누군가를 불러내어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먼 거리를 혼자 걸어와야 했다. 그들 중 아무도 나를 차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특별히 악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예의를 차리거나 배려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두 취미반을 나가면서 예외자의 위치에서 그룹이나 모임, 그리고 단체행동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인처럼 모임을 좋아하고 속해있는 모임이 많은 사람들도 드물 것 같다. 향우회를 비롯해서 각종 동창회는 물론이고 동호회니 무슨 모임이니 해서 여러 사람이 그룹이 되어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이 많다. 뿐만 아니라 무슨 계기만 있으면 새로운 모임을 곧잘 만든다. 한국인들이 모임을 좋아하는 것은 그만큼 모임이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특정 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 개인으로 있는 것보다 그룹에 속해 있는 것은 우선 심리적으로 든든하다. 개인보다 그룹이 더 확실한 실체감을 갖는 까닭이다. 또 그룹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자신의 위치가 확고하다는 느낌은 개인의 존재감을 한층 높여준다.

그룹은 그룹 자체의 목적도 있지만 한국인이 중요시 하는 '정 나누기'가 실현되는 장이기도 하다. 그룹의 구성원들끼리 서로 위하고 정을 나누는 것은 것은 정서적인 충족감을 준다. 그리고 같이 행동을 하면서, 가령 같이 점심을 먹고, 같이 쇼핑하고, 같이 놀러가고 등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있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고 일체감이나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모임에 속해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시스템보다 사적 인간관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병원예약을 할 때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 빨리 예약을 할 수가 있다. 안 되는 일도 사적인 인간관계에 의해서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폭넓은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인맥을 재산이라고까지 여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맥이 대개 모임이나 단체에서 형성이 된다.

그룹의 일원이 되려면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하거나 개성이 두드러지면 안 된다. 그룹 내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차림도 비슷한 것이 유리하다. 그룹은 다름을 인정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비슷해져야 하는 공간이다.

내가 보았던 첫 번째 반은 이제 그룹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단계고 두 번째 반의 인원은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그룹이었다. 첫 번째 반도 시간이 흐른다면 아마 두 번째 반처럼 끈끈한 관계의 그룹으로 발전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룹은 두 번째 반처럼 그들만의 울타리를 쌓아 점점 남을 배제하고 차별하게 된다.

이처럼 긴밀한 관계의 그룹에서 '우리' 바깥의 남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에 대한 배려나 공공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룹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있듯,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옳고 그름의 판단을 멈추고 우리 편이 무조건 옳은 것으로 된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사회문제나, 논쟁이 될 만한 화제는 되도록 피하는데 '그런 것으로 의가 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쟁 대신, 그룹 내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한마디 하면 대체로 그에 동조하고 따른다. 혹 속으로는 동조를 안 하더라도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게 마련이다.

나는 과천에서 일어나는 일로 시민단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민단체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생각이 같아서 모인 단체다.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단체다.

그런데 이 단체 역시 상당 기간 활동을 같이 한 기존 회원들이 형 아우와 같은 가족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공익적인 연대감을 넘어서 개인 간의 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개인 간의 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 속으로 공적인 연대감만 가진 새 회원이 들어서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새 회원에 대한 배려는 그리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형 아우 같은 가족호칭에서 보듯 단체가 유사 가족화하여 결국 가족의 권위주의적인 질서가 단체 내에서도 재현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동안 인정받은 권위로 발언권이 센 사람의 의견에 회원들은 대체로 따라가는 형편이었다.

2008년 일어난 촛불시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촛불집회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혁명과도 같은 사건"이라고 촛불집회를 평가했다. '배제와 차별 대신 우정과 환대와 평등의 문화'를 보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정과 환대와 평등의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커갈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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