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과학자' 강성종, 그를 아십니까?
'좌파 과학자' 강성종, 그를 아십니까?
[화제의 책] 강성종의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
2009.04.11 13:06:00
'좌파 과학자' 강성종, 그를 아십니까?
▲ 강성종 박사.
강성종(Kang, Sungzong·71) 박사. 1969~70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뇌과학자(제1저자).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1970년대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도 지냈다.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국 발전에 공헌해 달라"며 권유했으나 거부하기도 했다.

황우석 씨가 두 차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것만으로도 전 국민이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을 염두에 두면, 그는 이미 어린이가 읽는 위인전집 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강성종'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국내에서 강성종 박사는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던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야인'이다. 현재 강 박사는 7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뇌과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책 한 권을 고국에 선물했다. <학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라이프사이언스 펴냄).

한국에 '좌파 과학자'는 있는가?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앞으로 한국의 과학기술자를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자리매김할 게 틀림없다. 강성종 박사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견해는 2009년이라는 시점에 한국의 '좌파 과학자'가 가질 수 있는 입장의 극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2~30대가 아니라 70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강성종 박사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필요조건'임을 강조한다.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전문가'로서 과학기술자가 다른 전문가와 비교했을 때 사회 진보를 위해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자들이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런 믿음은 직접 드러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강 박사가 말하는 좀 더 나은 미래가 통상적인 '과학기술' 예찬자들이 말하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굴신하는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를 놓고서 이렇게 독설을 내뿜는다. 실제로 그는 투기 자본 감시에 앞장서온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금융경제연구소의 고문이다.

"투자 타령 그만하고 정직하고 아껴서 쓰는 정신을 살려야 한다. 투자는 곧 빚이기 때문이다.""이명박은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나라 재산과 금융시장을 재벌과 외국시장에 내놓겠단다. 이명박이 당선되자마자 뉴욕 금융가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유가 뭔가?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구도, 특히 금융과 주식 시장에서 국가 경제를 높이겠다는 착상으로는 안 된다."

이런 강성종 박사의 견해는 20세기 초·중반의 영국의 좌파 과학자이자 과학사 연구자였던 존 데즈먼드 버널 등과 공명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버널은 과학의 중립성을 옹호하면서,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사회주의자)이 권력을 잡는다면 과학은 물론이고 세상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또 과학기술자에 대한 강성종 박사의 견해는 버널과 같은 시기 미국에서 활동했던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의 그것과 비슷하다. 머튼은 과학기술자 공동체를 다른 전문가와 달리 나름의 규범을 준수하는 특별한 집단으로 간주했다. 물론 이런 과학기술자의 상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학문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나는 맹목적 발전은 반대한다"

사실 지금까지 살펴본 면모만으로도 강성종 박사는 한국의 과학자 공동체에서 독보적이다. 안타깝게도 저 정도의 사회의식을 갖춘 과학자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기술자를 장기판의 '졸' 취급도 안 하는 이유는 좌우를 막론하고 저런 의식 있는 과학자가 한국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성종 박사는 앞에서 언급한 20세기 초·중반에 마련된 '진보적' 과학기술자의 전형을 넘어서는 사고의 단초를 책 곳곳에서 보인다. 당장 그는 과학기술자들이 흔히 빠지기 마련인 발전(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경계한다. 그의 견해는 책의 맨 앞머리에 인용한 미국의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좌우명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발전(진보)을 맹목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맹목적 발전은 반대한다. (Not blind opposition to progress, but opposition to blind progress.")

실제로 강성종 박사는 과학기술자라면 대개 찬성하기 마련인 '유전자 변형(GM)' 기술을 걱정한다. GM 기술을 이용한 먹을거리는 제대로 검증이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껏해야 초국적기업에게 우리의 식탁을 넘겨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 대신 그는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천적' 연구 등을 주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성종 박사는 서로 반목이 심한 과학기술과 사회과학, 인문과학 간의 반목을 놓고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책 전체에서 한 본보기로 제시하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과학자가 아닌)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나크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가 19년간 이 연구소를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강성종 지음, 라이프사이언스 펴냄). ⓒ프레시안
이처럼 강성종 박사는 타 분야는 물론이고 환경단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때 과학기술이 제 방향을 찾아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그가 말하는 '귀를 기울여할' 과학기술자는 현대 사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또 현대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육체가 아닌) '정신이 늙은' 양로원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다.

'진보 과학자'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사실 기자는 수년 전 강성종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짧은 시간에 그는 한국 사회, 한국 과학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이 책은 그 짧은 시간에 미처 털어놓지 못한 그의 거침없는 견해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강성종 박사의 말대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라면, 또 이 시대 '진보 과학자'의 참모습을 고민하는 이라면 꼭 이 책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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