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어떻게 할까?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어떻게 할까?
[박동천의 집중탐구]<59>'위안부 발언' 이영훈 사례
2009.07.02 10:39:00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어떻게 할까?
제5부 민족주의: 집단생존 프레임
제7장 원한의 부메랑
제3절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민족주의에 관해 내가 펼친 비판은 아주 세심하게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여러 면에서 자칭 "뉴라이트"라는 인종들이 강변하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릴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런 인종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지만, 혼란을 느낄 독자들을 위해 내가 저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좀 해명해야겠다.

나는 우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것과 같은 『친일인명사전』을 크게 환영한다. 그리고 자기 조상이 "친일파가 아닌데 친일파로 몰려서 억울하다"는 이유에서 저 사전의 발간을 막아보려고 은밀하게 획책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자기 조상의 "친일행각"이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한 셈과 같다고 본다. 그 일이 당시 상황에서 보통 사람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 공개적으로 변호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이상 소모적인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끔하게 정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일문제 말고도 광주학살이라든지 검찰에 대한 삼성재벌의 떡값 돌리기,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사장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하는 의혹 등등, 정치사회에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주요 의혹일수록 오직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서 파고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을 확보하는 데 진보정치의 초점이 모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때로는 사실이라는 것이 요물로 변신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의도에 배치되는 사실은 생략하거나 외면해버리고 그 의도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집중 부각할 때 그렇게 된다. 이것은 우리사회에서 우익을 자처하는 쓰레기 신문들이 늘 써먹는 수법인데, 그것을 요즘은 검찰에서도 다시 답습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예컨대 용산 참사에 관한 수사기록 중 일부를 피고 측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우긴다든지,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MBC <피디수첩> 김은희 작가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가 그렇다. 검찰이 중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서로 다투는 한쪽 당사자라는 견지에서 재판의 공정성을 바라봐야만 이런 문제는 핵심이 바로 보이리라고 나는 믿으며, 이에 관해서는 제6부에서 간략하게나마 다시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른바 일본군의 "종군위안부"에 관해 뉴라이트의 이영훈이 딴죽 거는 방식을 평가해 본다.

2004년 9월 2일 MBC <백분토론>에서 이영훈이 펼친 주장은 일본군이나 정부가 종군위안부를 강제로 납치하거나 위협해서 끌고 갔다는 증거는 없고, 한국인 포주들이 모집한 증거는 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이런 말을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구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여 여성을 강제 동원하고 감금하여 병사들에게 성적 위안을 강제한 행위는 국제사회가 협약으로 금지하고 있는 성노예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 일본군의 성노예제 범죄와 관리의 전쟁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 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 이들을 포함한 사회전체의 자발적이고 성찰적인 고백이 있어야만 진상이 규명될뿐더러 진정한 역사의 청산도 가능하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면서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역사의 청산은 결코 과거 소수 범죄자들을 들추어 모든 역사적 책임을 덮어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성찰의 반면 거울로 삼아 사회전체가 미래지향적으로 그 도덕성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바로가기: 「MBC 100분 토론에 대한 본인의 해명서」)
▲ 2004년 9월 오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질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영훈이 해명서에서 말하는 내용은 모두 자신의 TV 발언에 부합하고, 자체로도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영훈의 해명이 본심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자기 성찰"이라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문제제기를 통해서 이른바 "정신대 할머니"들의 아픔과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흐름에 딴죽을 걸려고 했다고 나는 의심한다. 이유는 주로 두 가지다.

우선, 그는 나름대로 실증주의에 입각해서 증거를 제법 수집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증거에 충실한 발언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예컨대 일제가 농산물을 광범위하게 강제로 수탈했다는 증거는 없고, 일제 때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증거는 많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증거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원칙을 지키는 것인데, 그렇다면 가령 용산참사에서 농성자들의 화염병 때문에 발화했다는 증거가 없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자행된 숱한 간첩조작 사건에서 피고들이 간첩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말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자기 전공은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라서, 전공이 아닌 때문이라고 둘러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선 스스로 해명서에서 밝혔듯이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면, 딱히 전공이 아니더라도 용산참사와 같은 첨예한 사회적 현안에 관해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입장을 밝혀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특히 <백분토론>처럼 주시를 받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적 성매매였다는 인상"을 일반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용감하고 대범한 소신을 가졌다면, "사회전체가 미래지향적으로 도덕성을 고양"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국가권력이 바로 지금 자행하고 가부장적 억압들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발언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다른 곳에서 국가권력의 "자기 성찰"을 현재형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경우가 숱하게 많은데 그것은 다 접어두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마지막으로 역사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에 대해 학자들 사이의 음풍농월 비슷한 수준의 트집을 거는 짓은, 전형적으로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지는 애써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항상 강변한다) 감추면서 남의 눈에 티를 찾아내는 것과 똑같다.

다음으로, "소수 범죄자들을 들추어 모든 역사적 책임을 덮어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성찰의 반면 거울로 삼아 사회전체가 미래지향적으로 그 도덕성을 고양하는 방향"을 원한다는 그의 말은 전형적으로 조선일보식 고무줄에 해당한다. 그는 박정희에 관해 한홍구와 대담하면서,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대해 자발적인 동의가 안 나올 때, 그 상황에서 박정희라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강인하게 실행했다. 민주주의를 지체시켜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화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토대인 중산층을 만들어놨다"고 평가했다 (☞ 바로가기: 「대한민국 건국 60년 대담」). 이 발언은 국가권력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성찰과는 정반대로서, 산업화를 위해서라면 가부장적 억압도 어쩔 수 없이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뜻이 된다.

위에 인용한 해명서에서 그는 "고백과 반성의 범위를 ……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기지의 성착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증거에 입각해서 말하자면, 미군기지의 성착취에 관해 대한민국 정부가 체계적으로 개입한 것은 박정희 시대인 1970년대초의 일이다 (Katharine H. S. Moon, 이정주 역, 『동맹 속의 섹스』, 삼인, 2002).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몽땅 무시해버리고, 그는 "산업화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실질적 토대인 중산층을 만들"었다 따위 상투적인 문구로 박정희 시대 평가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기가 공격하고 싶은 상대에 대해서는 거머리처럼 그악스럽게 달라붙어서 "증거"를 내놓으라고 다그치지만, 자기가 보호할 상대에 대해서는 덮어주고 묻어주는 전형적인 편파논법이다. 앞에서(제4부 제4장) 논의한 대로 가치중립이라는 문구가 전횡으로 이어지는 경우 그 자체에 해당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결코 홀로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하나이든 여럿이든 사실의 조각이란 어떤 특정한 배경 위에 비춰볼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이영훈과 같은 부류는 어떤 사실이라는 명목을 들고 나올 때 사람들의 시선을 거기에만 집중시키면서, 자기가 그것을 어떤 배경에 비추고 있는지는 눈속임으로 가리는 언어적 마술사에 속한다. 이로써 "사실"이란 공동체 내에 다양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치와 이익의 여러 갈래들을 관통하는 공통기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전횡과 압제와 원한과 증오를 양산하는 사악한 칼로 전락한다. "사실"이나 "증거"라는 용어가 이처럼 철저하게 편파적인 의도에 따라 악용되면, 서로 경쟁하는 이익 사이에서 남은 길은 오로지 무력 투쟁밖에는 없고, 사람들이 진실이라든지 정의라든지 공정성에 관해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좌파 민족주의"의 입장이 감정적이고 자기-폐쇄적이며 복수심에 휘둘린다는 점은 우리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진보를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파 사대주의"의 입장은 감정적이고 자기-폐쇄적이며 복수심에 휘둘릴 뿐만 아니라, 공포와 비겁과 절망과 물욕에 휩싸여 있다고 "좌파 민족주의"에서 응수하면 이영훈은 어떻게 대답할 생각일까? 일제가 강제로 수탈하지 않고 거래와 무역을 통해 수탈했다는 말을 "적개심"보다 "사실"을 존중하느라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산업화라는 명분으로 박정희 시대의 살인과 억압이 정당화될 "증거"도 전혀 없음을 지적해야 일관적이다. 그 숱한 간첩조작 사건들과, 의문사와, 고문과 감시가 없었다면 산업화가 불가능했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전태일은 청계천변 업주들에게 맥주 몇 명만 덜 마시고 선풍기 몇 대라도 놔달라고 하는 애원마저 묵살하는 현실 때문에 분신했다. 미싱사들과 시다들에게 선풍기를 사줬다면 경제성장이 안 되었으리라는 증거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박정희 치하에서라면 겁이 나서 그렇겠거니 봐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죽은 지 30년이다. 이영훈이 싫어하는 "좌파 민족주의"의 강력한 저항 덕택으로 얼치기 지식인들에게 "권위주의뿐만 아니라 권위까지 무너뜨렸다"고 비아냥을 들은 대통령까지 나올 수가 있었고, 노무현이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면서 대통령의 권위를 지워버린 덕분에 한국 민주주의에 생긴 버팀목으로 우리는 지금 권위주의로 돌아가려는 반동세력이 장악한 국가권력에 맞설 수가 있다. 이영훈 따위 실증주의 변사는 이런 말도 "사실"이 아니라 "판단"이라고 시비를 걸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시비를 걸기로 한다면, 모니카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정액이 빌 클린턴 것이라는 증거도 없었다고 주장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을 확률이 "2조분의 1"이라는 어림에 대해, 해당 사례가 바로 그 2조분의 1이 아니라는 증거는 또 어디 있느냐고 대들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어림에서 2조라는 수치가 어떤 사실적 증거에 근거해서 나왔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이 그렇게 따졌다면 아마도 탄핵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이란 언제나 사회 통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물적 증거를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 주어진 증거의 조각에 근거한 주장에 대해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 답변하는지, 이런 논쟁에 관해 일반적 공론이 어떤 판정을 내리는지 등이 무엇을 "사실"로 봐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중요한 사실"로 봐야 하는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통념이 사실을 결정하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사실이 통념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이 통념을 바꾼다"고 일컬을 수 있는 경우 가운데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이영훈 같은 피상적인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형사재판에서 종전에 몰랐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유죄로 간주되던 사람이 무죄로 바뀌거나, 무죄로 간주되던 사람이 유죄로 바뀌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나 다음이나 "사실"이라는 개념 자체의 형태 및 재판에서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사실의 개념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종전에 몰랐던 사실의 조각 하나가 더 발견됨으로써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에 관한 판결이 바뀌는 경우이다. 코뿔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지고 벌어지는 논쟁은 코뿔소 한 마리를 데려다 보여주면 끝난다는 이치다.

다른 하나는 지동설이나 진화론처럼 "사실"이라는 개념의 형태 자체가 바뀌는 경우다. 내가 지금 "형태"라고 일컬은 의미가 불분명하다면, 프레임, 패러다임, 사고방식 등의 용어로 바꿔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천동설의 패러다임에서는 "땅은 굳건히 서서 요동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사실"이 인정되려면 먼저 사실이라는 개념의 형태가 바뀌어야만 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느낌이 사실이 아니라, 천체의 위치에 대한 관찰기록들, 그리고 그 기록으로부터 계산된 운동공식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했다. 갈릴레오가 재판을 받은 것은 바로 그런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사실"에 치밀하게 주목함으로써 한국사회에 대해 자기성찰을 촉구한다는 취지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공감하고 동조할 의향이 내게는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사실에 입각한 공통분모가 마련되려면 사실의 조각들을 수집하기에 앞서, 사실의 개념적 형태에 관해서부터 관습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을 사실로 볼 것인가 뿐만 아니라 주어진 쟁점에 관해 어떤 사실이 상관이 있는지, 나아가 사실로 대두되는 각 조각들이 최종 판정에 얼마나 중요한지 등에 관한 사유의 형식이 사회적으로 틀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영훈이 "사실"을 들이대는 방식은 이런 과제의 껍데기만 핥으면서 마치 이 과제 전체를 자기가 추구하고 있다는 듯 가식하는 데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그리고 사실의 각 조각이 주어진 문제의 해결에 얼마나 중요하며 상관이 있는지에 관해서부터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철저하게 도외시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의 조각들을 가지고 상대를 핍박하는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는 용어를 무기로 쓰는 방식은 "자기성찰"을 다른 사람을 못 살게 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방식과 정확하게 동일한 유형이다.

이영훈이 언어의 표면 수준에서 주장하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자기성찰"이 사실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적인 자세를 통해서 이루어지려면, 사실을 중시하는 영역이 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서 선별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기가 보호하고 싶은 영역일수록 더욱 엄격한 사실의 잣대로 통념과 상투적 문구들을 파헤치고 부수지 않으면 위선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이영훈의 정치적 잣대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좌파에 속할 것이다. 자칭 좌파들로부터는 좌파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무엇으로 치부하든 개의치 않는다. 더 쉽게 말하면, 나는 이명박 정권 및 그 배후에 있는 부류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보며,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에게 반대하는 사람들부터 민족주의의 과잉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하고 있다. 만약 이영훈이 진정으로 "사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좌파 민족주의의 과장을 비판하려는 것이라면, 좌파 민족주의를 타박하기 전에 우파 사대주의의 억지와 탐욕부터 공격해야 위선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공격할 과녁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면, 일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 받으면 한미동맹이 무너진다고 노무현을 공격했던 우파의 무지만 해도 이영훈의 실증주의가 "미래지향적 자기성찰"을 통해서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주제다.
richkh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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