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친일행위가 애국이었나?
언제부터 친일행위가 애국이었나?
[기고] 보수논객 조갑제·류근일의 '친일옹호론'
언제부터 친일행위가 애국이었나?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수구진영의 대응이 사납다. 특히 주목할 것은 수구진영의 이념적 교사라 할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와 류근일(조선일보 논설위원)의 반응이다. 조갑제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親日派와 親北派 비교"라는 글에서, 류근일은 뉴데일리에 기고한 "친일사전 만든 이유"라는 글에서 각각 <친일인명사전>발간을 비판하고 있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자신들의 글에서 친일행위를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일제에 의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마당에 식민지의 대중과 지식인들이 생계를 위해서건, 출세를 위해서건 체제에 순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를 탓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는 것이 조갑제와 류근일의 주장이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과 식민통치를 불행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가혹함으로 묘사하면서, 그런 가혹한 운명에 내던져진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그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넌지시 설파하고 있다.

조갑제는 이를 "日帝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抗日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의 兩者擇一이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류근일 역시 "경술국치(國恥) 이후 조선은 망하고 없었다.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 조선왕조의 황제라는 작자도, 그 잘난 조선선비라는 작자들도 없었다. 이 황무지에서 조선 엘리트와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 엘리트는 일본제국의 근대적인 교육 과정에 들어가 세계의 문물을 배우면서, 동시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반면에 대중은 일제의 근대적인 제도를 통해 수리조합원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며 신분상승을 꾀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체념론의 한 극단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소극적으로 변호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일제하에서 친일행위를 통해 습득한 근대적 지식과 기술이 건국의 기초가 됐다는 적극적 친일옹호론을 펼친다. "朴正熙, 申鉉碻 같은 분들이 日帝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북한군의 남침에 대항하여 조국을 지켜낸 한국군 지휘관들은 거의가 일본-만주군 장교로서 전술을 배웠던 이들이다)"라는 조갑제의 주장과 "일제 때 동경대학, 경성대학에서 공부한 지식 엘리트를 빼면, 일제 때 경성전기, 발전소, 사법부, 행정부, 방직공장, 수리조합, 은행, 경찰, 세무서, 세관, 학교,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몽땅 빼면 신생 대한민국을 대체 누가 어떻게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류근일의 주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친일행위를 애국으로 둔갑시키는 논리적 비약을 서슴없이 시도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친일행위를 애국행위의 범주 안에 넣는다면 독립운동과 친일행위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조갑제와 류근일은 이처럼 인류가 누대로 쌓아온 보편적 상식과 양식을 무참히 파괴하는 가치의 전도를 감행하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 신현확 같은 자들이 일제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장차 건국될 조국을 위해) 실력을 길렀는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는지를 조갑제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조갑제나 류근일이 친일행위 자체(이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친일행위는 적극적인 친일에 한정되는 것이지만, 적극적인 친일행위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에 대해서 긍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이 그럴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갑제와 류근일은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로 인한 식민통치를 불행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전제한 후 친일행위를 한 자들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대한민국의 건국 및 경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친일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친일행위에 대한 조갑제와 류근일의 생각을 거칠게 요약하면 아무리 잘못되고 불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 체제와 질서가 성립된 이후에는 그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목적이나 과정이야 어쨌건 간에 결과만 좋으면 다 용서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자학(自虐)사관과 결과만능주의의 기묘한 결합인 셈이다.

조갑제와 류근일의 관점으로 보면 일제의 조선강점, 친일매국행위, 군사쿠데타, 불균형성장전략, 유신, 광주학살 등이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강자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는 언제나 정당하며 그와 같은 질서가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만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갑제와 류근일에게 세상은 우승열패의 원칙이 작동하는 정글이기에 강자의 논리가 항상 관철될 수밖에 없고,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목표는 물질적 풍요 밖에 없는 것이다. 정의(正義)나 공정함, 연대성, 박애, 평화 같은 가치들은 조갑제와 류근일에게는 이루지 못할 이상에 불과하거나 쓸모없는 가치에 불과하다.

조갑제와 류근일로 대표되는 한국의 수구진영이 왜 그토록 친일잔재 청산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가가 이제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친일'이야말로 이들이 사수해야 할 가치들-우승열패, 결과만능, 물질제일 등-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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