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
[손호철 칼럼] '노가다 대통령'에서 '토목 자치'까지
2009.11.30 08:01:00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

역시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토목 대통령', '노가다 대통령'다운 '대통령과의 대화'였다. 그렇다. 1백 분간 진행된 토론의 많은 내용 중에서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라는 발언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고의 틀과 현 정부의 논리구조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4대 강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 대통령이 '토목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충분히 예상된 것이라는 점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작 주목할 것, 우려되는 것은 이 같은 토목제일주의, 신자유주의적 토목국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면, 전국의 지자체마다 토목공사가 줄을 잇고 있어 지방자치는 사실상 '토목 자치'로 변질되고 있다.

토목공사는 최근 국민적 지탄을 불러일으켜 급기야 정부가 칼을 빼어든 성남시 등 주요 지자체들의 초호화, 초대형 청사 공사로부터 뉴타운 같은 대규모 재개발 사업, 그리고 소위 시민편의시설이나 랜드마크 건설 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이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지방자치단체들의 토목공사 경쟁으로 인해 '토목자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아니 지방자치가 할 일이 어찌 토목공사뿐인가?

아마도 토목공사가 막대한 예산을 집행할 좋은 명분(따라서 떡고물을 주어 먹을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데다가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업적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재개발로 인기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 건설이란 토목공사로 온 서울을 뒤집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용산참사라는 비극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미 이 지면의 "'구리 이순신', '구리 광장', '구리 세종대왕'"이라는 글(☞관련 칼럼 보기)에서 지적했듯이 오세훈표 청계천 재개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광장 등 토건사업으로 대권을 꿈꾸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5년 청계천 완공 이후 서울의 자치구마마 너도 나도 수변공간 설치에 발 벗고 나서 금천구는 지난해 22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시흥대로에 폭포공원을 설치했고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를 관통하는 홍제천은 내년까지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인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폭포' 등 여려 분수들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들 시설들이 조성부지의 부적실성이나 비효율성 등으로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다고 한다.

내년 자치체 선거를 앞두고 광주에는 벌써부터 뜨거운 논쟁이 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두 번 임기를 마친 박광태 시장의 3선 여부를 둘러싼 것인데 박 시장 측은 최근 기아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따른 야구 붐과 관련해, 너무 낡아 오랫동안 원성을 들어온 광주야구장을 최신식의 돔구장으로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고 그 같은 공약이 주민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강연차 광주를 방문했다가 만난 시민운동관계자는 "낡은 구장이야 새로 지어야 하지만 엄청난 돈을 들여 세계에 몇 되지 않는 돔구장을 짓는 것이 광주의 시급한 일인지 의심스럽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대구시가 돔구장을 지어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뉴스에 보도됐다. 전국이 '토건자치'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가 4대강 사업 착공식에 참석해 낯 뜨거운 '이비어찬가'를 읊어 민주당이 난리가 난 것도, 그리고 이 대통령이 '지역개발'이라는 4대강 주변주민들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4대강 사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다 이 같은 토건주의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29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출사표는 참신하게 다가온다. 즉 영국 노동당이 복지국가 건설 초기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차용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울시민들의 생애 주기에 맞춰 서울의 일곱가지 행복한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며 △공공보육의 강화를 통한 출산율 2.0시대 달성 △평등선진화 혁신교육 △정보기본권 실현 △안정된 일자리 △주거 안정 △3°C 더 쾌적한 생태 서울 달성 △따뜻한 노후 등 토건사업과는 거리가 먼 민생문제들을 정면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노가다 대통령'으로부터 '토목 자치'까지 토목국가에 올인하고 있는 대한민국, 만만세다.
hilltop@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