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먹은 고기는? 소, 돼지 아닌 '개고기'!
[판다곰의 음식 여행·15] 고기 본능
2010.05.01 07:29:00
가장 많이 먹은 고기는? 소, 돼지 아닌 '개고기'!
인간이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직면한 문제는 먹을 것이었다. 나무 위의 과실은 늘 있는 게 아니고, 풀들은 먹기에 억세고 거칠다. 인간은 농사를 짓기 전 거의 4만 년의 시간 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해왔다. 농경 목축의 기간보다 거의 네 배가 넘는 시간 동안 동물의 고기가 주된 식량이었던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 표범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는 이 불쌍한 존재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고, 창과 활과 도끼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들고 집단을 이루어 협력하면서 이 난관을 극복하려 했지만, 수확물은 사자나 표범에 비해서 훨씬 비능률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커다란 동물을 잡아 며칠 동안 포식했을 수도 있지만 오랜 굶주림 속에 맛보는 작은 동물의 고기도 정말로 달콤한 기억이었으리라. 우리와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도 고기 맛을 안다. 평소에는 채식에 만족하지만 벌레도 잡아먹고 심지어는 동료를 죽여 고기 맛을 보기도 한다.

인류에게 육식은 본능

인간은 차츰 영역을 넓혀나가 전 대륙에 이주하게 되었으며, 이때 개발한 도구와 무기, 협력 방식 덕분에 빙하 시대의 혹독한 시련 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매머드 같은 동물은 눈 속을 헤매며 이끼들을 찾아 먹다가 인간의 손에 죽어가 든든한 식량이 되었다. 사냥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한번 사냥에 성공하면 많은 무리의 식량으로 긴 기간 넉넉했다.

빙하기의 시련이 끝나고 따뜻한 세상이 다시 찾아오자 인간은 다른 어느 동물보다 강인하고 똑똑해져 있었다. 순한 초식동물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키우고, 씨앗을 가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차츰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이 되었다.

농사를 짓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생활은 이전보다 안정되고 넉넉해졌을지 몰라도, 먹을 것은 곡식의 탄수화물 위주였기에 질이 오히려 떨어졌고 고기에 대한 그리움은 줄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고기를 접할 기회가 동물을 이끌며 유목 생활을 하는 유목민보다 적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가운데서도 야생동물을 잡기도 하고,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나를 때 이용하던 동물이 죽으면 고기 맛을 보았다. 수만 년의 세월 속에 자리 잡은 육식 본능이 몇 천 년 농경 생활로 수그러들 수는 없는 법이다. 기나긴 농경 생활이 끝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사도 대규모화되어 고기를 목적으로만 가축을 기르는 세상이 되었다. 삶이 조금만 윤택해지면 가장 먼저 찾는 게 고기 반찬인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공자를 좇아 개를 먹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여느 농경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불고기의 원류인 맥적은 압록강과 만주 벌판을 누비며 사냥하던 선조들이 잡은 짐승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다. 맥적이 존재했다는 것은 콩을 이용한 간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니 이미 농경과 수렵이 함께 이루어지던 때의 일이다. 미처 양념을 할 여유가 없는 하인들이라면 높은 사람들 잔치에서 흘러나온 고기에 소금만 뿌려 구워 먹는 방자구이도 맛이 있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수렵의 결과에 따라 달랐다. 멧돼지가 잡혔을 수도 있고 사슴이나 곰을 잡았을 수도 있다. 농경을 했으니 소와 돼지, 말과 같은 가축이었을 수도 있다. 소나 말이라면 부담이 되었을 테니 멧돼지를 길들여 사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돼지도 서민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고기였다. 한마을이라 해도 수십 호 남짓한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먹기 위해 따로 사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농사일도 바쁘고 사람 먹일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동물까지 먹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는 농사일에 긴요한 것이니 농사를 짓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길러야 하지만, 여름철에는 주위에서 쉽사리 먹이를 구할 수 있어도 겨울철에는 쇠죽도 쑤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기르던 소가 죽는다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는데 큰 소를 한꺼번에 다 먹어치울 수 없으니 장포와 건포로 만들어 저장했고, 연기를 쐬어 훈연을 시키면 보존 기간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에게 있던 납육도 훈연한 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농경 사회에서 서민들이 손쉽게 고기를 얻는 방법은 닭, 오리, 거위 같은 가금이나 개가 으뜸이다. 가금은 알까지 얻을 수 있기에 심심치 않게 단백질의 부족까지 해결해줄 수 있었다. 개도 사람과 친근하다는 뛰어난 장점이 있었고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기에 먹이의 양도 많지 않으며 번식률도 높기에 여러모로 요긴하게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러니 고기에서는 가장 오래전부터 식용하여 친근한 것이 무엇보다도 개와 닭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인 닭은 삼국시대 신화에 나타나고 계림(鷄林)이라는 지명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일찍부터 길렀다. 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하는데, 개는 원래 야생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기르던 개가 가출하여 야생 상태로 있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정약용이 흑산도에 가 있던 형에게 야생의 개를 잡아 보신하라고 권한 것을 보면 심심치 않게 야생의 개를 잡아 몸보신하던 풍습이 있었을 것이다. 성리학이 국가의 종지가 된 조선시대에는 개를 먹는 것이 더욱 환영받았다. 개고기는 공자가 먹던 음식이었기에 개를 먹는 것이 바로 성현의 길을 좇는 것이다.

활발하던 우리나라의 육식 습관이 점차 시들해진 것은 불교의 영향이었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고려 시대가 되면서 국교의 위치를 차지했고, 살생 금지의 계율은 육식에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 불교가 천황의 종교가 되고 그 탓으로 거의 수백 년 동안 육식을 멀리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도축 금지가 여러 번 되풀이되면서 육식의 풍토는 점차 희미해졌다. 하지만 인간의 고기 본능은 끈질겨, 권문세가에서는 따로 목장을 가지고 도축하여 먹는 등 그 풍토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육식의 풍토가 되살아난 것은 고려 말 몽골의 침략을 받으면서였다. 유목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풍습인 육식도 자연스럽게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에서 육식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몽골의 지배를 피해갔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를 배척함과 함께 육식 금기도 다시 깨졌다.

ⓒ프레시안(손문상)

나라마다 다른 육식 선호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기 선호도를 보면 쇠고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근래에는 삼겹살을 비롯한 돼지고기 선호도가 많이 올라가지는 했지만, 아직은 쇠고기의 지위를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우리 한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한우는 수천 년을 이어온 종자로 성질이 온순하여 일소로 부렸다. 지금은 이 한우를 육용종으로 개량한 것이다. 일본의 소인 화우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그 뿌리가 같다. 근래에는 외국에서 새로운 품종을 도입해서 기르기도 하지만 아직은 젖소를 빼놓으면 전래의 한우가 더 우세한 편이다.

반면에 돼지는 재래종이 외래종에 밀려 거의 괴멸하다시피 했다. 재래종의 돼지는 검은 털에 몸집이 작고 주둥이가 길며 단단했다. 동아시아와 중국의 멧돼지를 길들인 품종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튼튼하고 병에 강한 장점은 있었지만 몸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고기 생산 효율이 떨어져 외래종에 자리를 넘겨준 것이다.

과거에도 돼지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것 같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고기 요리에도 돼지고기 요리는 많지 않았고 오히려 멧돼지 요리 종류가 훨씬 더 다양하다. 물론 돼지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니고 많이 기르기도 했지만 의외로 돼지고기 음식의 빈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랍이나 중국에서 즐기는 양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자라지 않기에 궁중에서는 양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중국에서 수입해다 먹을 정도였다. 지금은 양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궁중과 상류층에서는 양고기가 대접받는 고기였다. 질로 따진다면 양고기를 돼지고기 위에 올려놓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양고기가 우선이다. 속담에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하여 '양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니, 좋은 것 판다고 하고 질 낮은 것을 내놓는 상술을 꼬집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양고기는 고기 가운데 으뜸으로 쳤던 것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바로 돼지고기였고, 쇠고기는 그다음 자리나 차지할 만큼 인기 없는 고기였다.

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에 쇠고기는 오히려 회교도들이 먹는 고기라고 특화되었을 정도다. 일본이야 가축의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메이지유신 이후니 아직은 고기의 선호도를 따지기 어렵다. 회교도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이를 더운 날씨와 부패하기 쉬운 돼지고기의 특성과 연결하는 해석도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쇠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과 같이 소를 방목하거나 사료를 많이 생산해서 소를 기르는 나라들이다. 유럽에서는 개고기를 제외하면 고기에 대한 금기가 별로 없다. 독일 같은 경우는 소보다는 돼지를 좀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기호이지 종교적 습성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인의 쇠고기 사랑이 각별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중국과는 달리 양과 돼지의 수요를 넘어서 쇠고기 기호를 발전시켜왔을까? 먼저 양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외해도 될 것 같다. 기르기 어려운 양의 대체재로는 이미 염소가 있다. 지금도 흑염소는 보양 식품으로 용도가 사라지지 않았다.

염소는 소나 돼지보다는 기르기도 쉽고 크기가 도축에도 알맞았지만, 그다지 많이 기른 것 같지는 않다. 그 원인은 아마도 염소고기가 제사상에 올려놓을 음식이 되지 못해서일 것이다. 가장 큰 고기 수요처인 제사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염소는 예상보다 수요가 적었던 것 같다.

말도 오래전부터 기르던 가축이었다. 특히 말의 기동성은 전투와 역참에서는 긴요했다. 하지만 말총을 가지고 탕건을 만들기는 했을지언정 말고기를 먹은 흔적은 희미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말고기를 먹은 지역은 제주도가 유일하다. 아마도 몽골의 점령 당시 말을 기를 목장으로 제주도가 선정되면서 몽골의 풍습이 전해졌을 터이다.

유럽과 인도, 그리고 중국에서는 말고기를 식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말고기를 먹지 않은 것은 제사의 희생물이 된 적이 없어서다. 소와 말을 순장하기는 했어도 말을 희생물로 제사에 올린 적은 없다. 제사에 올린 희생물은 육식을 전제로 한다. 소나 돼지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희생물이었고, 이 희생물을 나누어 먹던 것이 육식용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인내심 많고 순한 소는 농경에 쓰이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그렇기에 이집트, 인도, 중국 등의 농경 사회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여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인도는 힌두교로 소의 신성이 정착되어 소를 먹지 않는 지역에 속한다. 중국은 명문화된 것은 없지만 쇠고기가 돼지고기에 자리를 내어준 것은 소가 농경에 쓰이는 쓰임새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소를 농경에 쓰기도 하면서 먹기도 한다. 우리가 쇠고기를 으뜸으로 친다는 것은 고기의 부위를 나누는 명칭이 세밀하게 발달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쇠고기는 가장 귀한 고기로 대접받거니와 부위도 세분화하여 즐기고 가죽과 뿔과 뼈와 내장까지 알뜰하게 이용하니, 소는 아주 요긴함의 대명사라 하겠다.

우리가 소와 돼지를 먹는 것은 제천의 희생 의식과 관련이 깊다. 동이족에게는 부족국가 시절부터 소와 돼지가 희생으로 바치는 제물이었다. <삼국사기>를 보면 유리왕 때 제사에 희생으로 바칠 돼지가 도망가서 그것을 쫓아가다 집안에 이르고 나중에 거기를 도읍으로 삼게 된 일이 나온다. 이것을 봐도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제물로 바친 다음에는 그 고기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서로의 결속을 다짐한다. 이 희생으로 바친 제물의 넓적다리뼈에 구멍을 뚫고 불에 태워 그 갈라진 형상을 보고 점을 치기도 했다. 이 소와 돼지의 희생 제물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육식 습성이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제사가 끝나면 희생으로 바친 짐승을 먹게 되고, 의식에 따라 먹는 고기의 종류가 달라진다. 소는 주로 하늘을 향한 제사에서, 돼지는 주로 지신을 향한 제사에서 희생물로 쓰였다. 당연히 소를 희생으로 하는 제사의 규모가 크고, 돼지는 비교적 작은 제사였다. 동제 같은 마을 제사도 주로 돼지였다. 지금도 고사를 지낼 때에는 돼지머리를 올려놓는다. 이러한 점이 쇠고기를 돼지고기보다 더 쳐주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본능에서 절제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오래된 고기 본능은 때때로 종교에 의해 차단되곤 했다. 먹는 고기의 종류를 제한하기도 했고 불교는 아예 살생 금지로 한몫했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고기의 수요는 급격히 늘어갔다. 우리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산업혁명 이후에 고기 수요량이 급격히 늘었다.

농경 사회에서 지나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가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왔다면 고기 위주의 식사도 성인병을 비롯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이상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필수적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의 고기 본능 때문에라도 채식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과도한 육식 습관은 지방을 지나치게 섭취하게 되어 도리어 몸에 해롭다.

더군다나 현대에 와서는 입맛을 좇아 많은 곡물을 고기로 바꾸느라 지구의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경고도 위협적이다. 균형이 쉽지는 않겠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고기 본능을 조금은 억눌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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