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이 '상생의 근본대책'
['상생'이 헛구호가 아니려면(1)] 허탈한 중소기업인들
2006.05.18 11:15:00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이 '상생의 근본대책'
'양극화 해소'는 오늘날 핵심 화두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핵심 정책목표로 제시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도 해소돼야 할 문제점 중 하나다.
  
  최근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고, 대기업들도 정부의 압박에 따라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방안을 여러가지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한데 구호만의 '상생협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마침 오는 24일 청와대에서 '제3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그에 앞서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은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은 왜 싸늘한 건지, 진정한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위한 향후 정책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쏟아지는 건 많은데 정작 알맹이는 없다." 요즘 정부와 대기업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에 대해 중소기업인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대기업이 발 벗고 중소기업과 '상생협력' 방안을 내놓는 듯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기대 이하란 것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상생 방안'의 핵심에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책이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불공정거래의 근절이 '상생'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오는 24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집중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쏟아지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
  
  최근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 등 정부 부처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지난 3일 산자부는 전력·전기 분야의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위해 한전 등 11개 공기업과 LS산전, 현대중공업, 효성 등 민간 대기업들과 협약을 맺었다. 정부가 150억 원을 내놓고 여기에 대기업들이 114억 원을 더 투자해 이 분야의 중소기업들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산자부는 올해 1000억 원 규모의 대·중소기업 협력자금을 융자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대기업의 휴면 특허를 중소기업에 이전시키는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청은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공동으로 다음달 7~8일 서울 코엑스에서 국내 대기업 및 해외 바이어, 우수 중소기업들을 초청해 납품 및 투자 상담을 벌이는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업들도 정부의 움직임에 맞춰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내놓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월 이건희 회장의 8000억 원 사회헌납 발표 이후 후속조치로 중소기업을 위한 '상생경영' 방안을 연구 중이다. 검토되는 방안 중에는 1조 원어치 이상의 유휴설비를 중소기업에 이전하고, 중소기업인을 대상으로 경영노하우를 전달하는 '혁신학교'를 설립하는 방안 등이 있다. 삼성은 이를 바탕으로 오는 24일 전후로 상생협력 방안을 발표한 예정이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최근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결제를 전액 현금으로 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협력업체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G나 SK 등 다른 대기업들도 중소기업과의 상생이라는 구호 아래 각종 방안을 검토하거나 내놓고 있다.
  
  "속빈 강정에 불과"…정작 중소기업인들은 불만
  
  정부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방안이라며 내놓는 정책에 대해 정작 중소기업인들은 밝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오랜만에 정부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처지를 살피겠다고 하는 것 자체야 반가운 일이지만,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상생협력'을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지원을 하기에 앞서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 관행을 중단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나 상품성이 검증된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빼가는 행위 등 상대적으로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길에 놓인 최대의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일을 했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에 무조건 희생만 강요하던 대기업과 이를 묵인하던 정부가 거꾸로 '상생협력'을 위한 방안을 내놓는다니 일단 환영한다"며 "하지만 그 내용은 기대 이하"라고 말했다.
  
  그는 "유휴설비나 휴면특허를 이전하는 것도 상생협력 방안으로 포장돼 있다"며 "중소기업인들은 정상적인 기업운영을 위한 여건의 조성을 바라고 있다. 중소기업은 거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대기업과 분쟁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 모두 강자의 편만 들고 있어 중소기업인들은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억울한 피해자가 방치되는 마당에 어떻게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말할 수 있냐"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횡포로 중소기업이 폐업되기도
  
  중소기업인들이 냉소적인 이유는 그만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H사에 차체를 납품해오던 D사는 H사의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원인이 돼 결국 지난해 초 문을 닫았다. H사는 매년 단가인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발주를 중단하겠다면서 D사를 압박했다. 결국 무리한 단가인하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D사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 H사는 대기업에게 핵심 기술을 빼앗겼다. 독보적인 폐기물 재생기술을 보유했던 H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있던 외국계 대기업 M사는 현장실사 등의 명분으로 H사의 주요 기술을 하나둘 빼갔다. 게다가 M사의 한 간부는 H사와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는 또다른 폐기물 재생업체에 그 기술을 넘겨주었다.
  
  이처럼 대기업의 무리한 단가인하 요구를 울며겨자먹기로 수용해서 경영난을 겪게 되거나, 간난신고 끝에 신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에 빼앗기는 중소기업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 중소기업인들의 주장이다. 더구나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에 관련 사실을 고소하더라도 진상조사가 늦어지기 일쑤이고, 조사가 이루어지더라도 대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5.24 청와대 상생협력회의'…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근절방안 논의해야"
  
  이처럼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오는 24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제3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5월과 12월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상생협력회의'에는 경제4단체장은 물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국내의 대표적인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무게감이 더하다.
  
  이 자리에서 논의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방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 관계자들이 함구하고 있다. 다만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7일 이번 회의와 관련해 "지난 1년 간의 상생협력 추진 현황에 대한 정리, 발전방안 논의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도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는 방안은 중점적인 논의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담당할 사안"이라며 "이번 상생협력회의에서는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근본적 방안을 찾는다는 취지로 지난달 출범한 '대·중소기업 상생협회'(회장 조성구)는 최근 '5.24 청와대 상생회의'에 대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의 본질적 원인인 기업 간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책과, 이 문제를 관리감독해야 할 관계부처가 대기업에 편향된 태도를 취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생협력 논의는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논평을 냈다.
  
  이 협회의 류철원 정책기획실장은 "정부도 대기업들의 불공정 거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충분히 알면서도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태도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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