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회의, 역시 알맹이는 없었다
[상생이 헛구호가 아니려면(5,끝)] '대기업 불공정거래' 논의 안돼
2006.05.24 19:23:00
대·중소기업 상생회의, 역시 알맹이는 없었다
역시나 그랬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4일 오후에 열린 '제3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상생협력회의)'에서 다양한 방안은 제시됐지만, 정작 중요한 핵심과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날 '상생협력회의'에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가로막는 주요한 걸림돌인 남품단가 인하, 이면계약서 강요, 기술 빼앗기 등 대기업의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진지한 토론과 효과적인 대처방안이 나오길 바랐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약자'의 기대에 불과했음이 확인됐다.

·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 열렸지만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상생협력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지난해 두 차례 진행된 1, 2차 상생협력회의에서 나온 여러 가지 방안들 점검하고 발전방향을 논의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날 회의에서 30대 그룹은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사업에 올해 1조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상생협력 대상도 기존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1차 협력업체에서 2차 협력업체로, 제조업 위주에서 유통·에너지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발표한 '상생협력 정책 평가 및 향후과제'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재료를 생산하는 중소업체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과 정부가 함께 원천기술 개발에서 생산까지 중소기업을 일괄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또한 대·중소기업 합동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도록 지원하거나, 중소기업이 해외시장 개척을 할 경우 대기업이 이미 구축하고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 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중소기업 공동 마케팅 방안도 제시됐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역량 개발을 위한 교육훈련 지원과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중소기업의 직장보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안도 향후 과제로 제출됐다.

"결국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구본부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대기업 총수와 주요 경제단체장들이 다수 참석했다. 정부 측에서도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세균 산자부 장관, 이상수 노동부 장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함께 했다.

국내 정·재계의 최고 실력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셈이다. 그만큼 이날 회의에서 내놓을 '상생협력 방안'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그러나 회의 후 모습을 드러낸 '상생협력 방안'이 담고 있는 내용은 상생협력을 바라는 중소기업인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 온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대처방안은 이번 '상생협력 방안'에 담기지 않았다.

'상생협력 방안'에는 "(정부가)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 간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에 역점을 둔다"거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체제 구축을 위해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에 대한 서면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문구가 삽입되는 데 그쳤다.

송태경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 없는 상생협력 방안을 보고 과연 현 정부가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토로했다.

송 실장은 또한 이날 '상생협력 방안'에서 언급된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 간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 부분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행위도 줄어들기 마련"이라며 "더구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는 없이 '실태조사'만 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덧붙였다.

허울뿐인 대·중소기업 상생, 언제까지?

한편 업계 안팎에서는 이날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처 방안은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나와 있었다.

특히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 하락과 유가 및 원자재가의 급등 등으로 인한 경영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대기업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일부 언론들 앞에 정부가 불공정 거래 근절 방침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산업자원부는 이날 '상생협력회의'에 대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대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해,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근절을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중소기업인들의 생각과는 큰 인식차를 드러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일부 언론에서 대기업 총수를 모시고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보도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며, 상생협력은 정부가 강요해서 추진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정책의 핵심이 엄정한 법집행을 통한 공정거래 질서 확립에 있다기보다는 대기업을 다독이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한편 조성구 대·중소기업 상생협회 회장은 이번 상생협력 방안에 대해 "당초 우려보다 더 심각한 내용이 나왔다. 현 정부의 바닥을 본 심정"이라며 "정부는 언제까지 허울좋은 '상생'이란 구호만 외칠 건가"라고 허탈한 심정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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