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무상의료'를 두려워하는 까닭
[오건호 칼럼] "10년 전 잘못을 반성합니다"
<조선일보>가 '무상의료'를 두려워하는 까닭
나는 2000년대 초반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의 보험료를 결정하는 교섭위원이었다. 나의 임금이나 우리 동료의 복지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가입한 건강보험의 보험료를 결정하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막중한 일을 맡았었다.

건강보험료는,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에 의해 정해지는 연금보험료와 달리, 최저임금처럼 사회적 교섭기구에 의해 결정된다. 매년 11월 가입자, 공급자, 공익위원 등 3자 대표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모여 다음해 보험료, 보장급여 범위, 의료수가 등 건강보험에 관한 모든 것을 투표로 정한다.

"나는 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 교섭위원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고 있었던 나는 직장가입자 몫으로 민주노총에게 부여된 교섭위원 역할을 수행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음식업중앙회 등 가입자대표 8명, 의사협회, 병원협회, 제약협회, 약사회 등 공급자 대표 8명, 정부가 임명한 공익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보건복지부차관), 이렇게 25명이 테이블에 앉아 공방을 벌인다. 노사가 교섭을 벌이듯이, 가끔 고성도 오가고 정회도 한다.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입자 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은 보험료 인상 반대였다. 서민가계 부담을 지우는 보험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월급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 공제액을 볼 때 마다 화가 치밀어 온다는 조합원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

매년 교섭은 엇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음해 건강보험 지출 증가분만큼 보험료를 올리려는 정부의 뜻대로 대략 5퍼센트 안팎에서 보험료율이 인상되었고, 나는 회의 직후 사무실로 돌아와 '서민 허리 휘게하는 보험료 인상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쓰는 것으로 한해 건강보험 사업을 마무리했다.

경총 위원은 왜 민주노총 위원을 전폭 지지했을까?

그런데 교섭을 마치고 난 뒤면 왠지 후련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직장가입자 대표로 참가한 사용자단체 교섭위원들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자본의 들러리기구라 판단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참여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노사가 한 몸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에게 경총 교섭위원이 다가와 따뜻한 연대의 말을 전한다. "어찌 그리 말씀을 잘 하십니까. 우리 꼭 보험료 인상 막읍시다…."

나는 서민과 조합원을 위해 열심히 교섭을 벌였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사용자대표로부터 칭찬을 듣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 미국식 의료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보건의료노조의 시위.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지키는 쪽이 서민에게는 이익이다. ⓒ프레시안

민노당, 무상의료 깃발은 들었으나…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옮겨 일했다. 당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주요 공신 중 하나가 무상의료 슬로건이었다. 그만큼 병원비에 대한 서민의 불안은 컸고 무상의료가 주는 기대가 막대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무상의료 의제를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 무기력이 서서히 당으로 밀려왔다. 마침내 2006년 지방선거 패배로 실의에 빠진 민주노동당은 다시 '무상의료'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기로 했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의제는 역시 무상의료라고 판단했다.

무상의료 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여의도역에 거리서명을 받으러 나갔다. 우리를 지지하는 한 시민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무상의료를 이룰 것인데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열석으론 부족합니다. 민주노동당을 키워주십시오."

과연 무상의료를 꿈꾸는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답이 고작 이것뿐이었을까? 시민들은 구체적 대답을 원하는 데 우린 하나마나한 정치적 답변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 건강보험료를 올리자

지난 9일, 나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국민 1인당 건강보험료를 평균 1만 1000원 (가구당 2만 8000원)을 더 내자는 운동이다. 민주노총 교섭위원으로 건강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던 내가 이제는 건강보험료를 올리자는 운동에 나선 것이다. 내 스스로 멋쩍은 일이지만, 지난 시기 활동을 되돌아보며 얻은, 나의 부끄러운 반성의 결과이다.

민주노총 교섭위원으로서 당시 내 판단의 가장 큰 근거는 조합원의 보험료 부담이었다. 가능한 월급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 공제액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건강보험의 재정은 가입자의 보험료와 정부의 지원금(보험료 총액의 20퍼센트)으로 구성된다. 만약 직장가입자가 5조 원을 내면 사용자 책임 몫 5조 원이 더해져 10조 원이 되고 여기에 정부 국고지원금 2조 원이 추가돼 12조 원이 마련된다.

이렇게 가입자 보험료, 사용자 책임 분, 국고지원액 모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해지는 보험료 결정과 직결되어 있다. 그 곳에서 난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노력의 성과(?)로 보험료는 고령화, 중증질환 확대 등에 따른 증가분을 쫓아갈 만큼씩만 올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계속 60퍼센트 수준에 머물러야 했고, 서민들은 무거운 본인부담금에 시달려야 했다.

사용자단체 교섭위원이 건강보험료 인상에 저항하는 건 쉽게 이해가 간다. 기업은 건강보험료를 올려도 혜택을 받는 건 없다.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뿐이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5조 원을 내면 12조 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방안을 요구하기 보다는,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본인부담금 몫을 키우고 있었다.

사실 건강보험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연대제도이다. 건강보험에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정율로 부과되지만('능력에 따라'), 급여는 가입자에게 아픈 만큼 동일하게 지급된다('필요에 따라'). 최근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최하위계층 5퍼센트의 보험료 대비 급여 혜택은 7배에 이르지만, 최상위계층 5퍼센트의 경우는 0.7배이다.

현재 우리들은 아프기 전에는 보험료로, 아픈 후에는 본인부담금으로 두 차례 병원비를 지출한다. 어차피 우리가 내야 할 돈이라면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는 늘리고 지급능력을 무시하고 부과되는 본인부담금은 최소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먼저 내야 하는 보험료에 그리 민감하면서도 퇴원할 때 부담하는 환자의 본인부담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까?

인정한다. 나는 교섭테이블 위에서 상대방이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췄던 셈이다. 나의 비타협적인 교섭의 가장 큰 수혜자는 보험료 인상에 따라 법정부담금을 내야하는 기업들, 병원비 공포를 활용해 사세를 확장하려는 민간보험회사들이었다. 그리고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병원 원무과 앞에서 퇴원수속을 밟으며 감당할 수 없는 본인부담금에 울고 있는 어려운 우리 서민들이었다.

'무상의료'가 두려운 <조선일보>

오는 7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우리가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도해 기업 책임 몫과 정부 지원금을 끌어내자는 운동이다. 1인당 1만 1000원만 더 내면 병원비 보장성을 90퍼센트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 진료 성격을 지닌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하고 어떠한 경우도 환자 1인당 본인부담금이 연 1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말했던 무상의료가 바로 이것 아닌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순탄치는 않을 듯 하다. 이미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상당한 지면과 사설을 통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예상했던 대응이다. 이 운동이 지향하듯이 풀뿌리운동으로 확산될 경우 정부, 기업, 민간보험회사들은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상급식에 이은 제 2의 보편 복지 의제로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열중하는 이유

오는 7월 14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출범하는 날이다. 가을에는 제주에서 "건강보험 올레!, 민간보험 갈래?" 회원 한마당도 열 예정이다. 시민회의가 기존에 사회단체 중심의 상층운동에서 벗어나 개인 풀뿌리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개념의 운동이어서 설렘과 걱정이 교차한다.

지난 부끄러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힘껏 이 운동에 참여하고 싶다. 솔직히 별다른 노후준비도 없는 내 처지에 '건강보험 하나로' 만큼 소중한 일도 흔치 않을 듯 하다. 내가 '건강보험 하나로'에 열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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