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조중동' 덕에 우리가 떴습니다"
[기고] 청소년들이, 청소년운동이 봉으로 보이나
"무식한 '조중동' 덕에 우리가 떴습니다"
좀 어안이벙벙하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고나 할까? 언젠가는 '아수나로'가 신문 1면을 장식할 날도 있겠지, 생각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는 메이저급의 덩치 큰 일간지들이 무려 사설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공격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7월 3일에는 <조선일보>가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선정적인 사설에서 아수나로 이름은 언급 않고서 "학생인권단체라는 곳"의 주장을 보니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러다가 <동아일보> 7월 5일자 신문에서는 1면 헤드라인과 2면 기사를 통해 아수나로를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소개했다. 7월 6일에는 <서울신문>에서 무려 사설 제목에 "아수나로"라는 말을 넣어 직접 아수나로를 까는 글을 작성해주었다. <세계일보>에서는 <조선일보>에 이어 "홍위병"이라는 제목을 달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모욕감을 느낄 법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이후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에서는 계속해서 아수나로 활동에 관해 부정적인 논조로 기사, 시론, 사설 등을 하루에 한 개씩 내보내고 있다.


▲ <동아일보>의 '아수나로' 보도 기사.

물론 아수나로가 청소년운동을 하는 단체들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축에 속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무실도 없고 상근자도 없고 전국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들도 100명이 채 안 되고 1년 총 결산을 내보면 오간 돈이 500만 원도 안 되는 이 코딱지만한 단체에 보이는 관심 치고는 너무 과해서 황송할 지경이다. 그 덕에 아수나로 온라인 가입자 수가 하루만에 50명이 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참여연대처럼 후원회원들이 막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정작 청소년을 이용하는 건 누구인가

이런 홍보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언론들의 음흉한 속내는 용서해드릴 수가 없다. 그들도 아수나로가 참 별 거 없는 단체라는 걸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이렇게 계속 보도를 하는 것은 노리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보인다. "진보교육감, 교육의원 (그리고 전교조) 때문에 순진한 아이들이 동요하여(동원돼서/선동돼서) 난리를 치고 있다."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논조도 그렇고,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준비하는 7월 9일 일제고사 반대 집회를 어떻게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거라고 말한 발언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문장들, 아수나로가 진보교육감 취임 이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05년부터 꾸준히 두발자유를 비롯하여 학생인권보장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왔고, 그 이전에도 학생들을 위한 게 아닌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었으며, 2008년 일제고사가 시행된 때부터 이미 일제고사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언론들이 아수나로에서 일제고사 반대 홍보를 하고 거리집회를 하는 걸 부각시키고 있지만, 아수나로가 같이 준비하여 일제고사 반대 등하교길 홍보를 하고 거리집회를 한 횟수는 이미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2008년 촛불집회 시즌에도 지방선거 당시에도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참여할 권리, 민주주의 등 정치적 권리를 외치며 지속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교육감이 누구든, 국회가 어떻든, 아수나로는 지난 5년 간 지역에서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활발하게 해왔다. 특정 교육감이 취임한 이후에 아수나로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지난 수년간 밑바닥에서부터 청소년인권에 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온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그저 진보교육감을 까기 위해서 아수나로를 이용해먹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런 건 관심거리도 못되겠지만 말이다.

맨날 전교조, 민주노총 들먹이는 게 약발이 잘 안 먹힌다 싶을 즘, 청소년단체인지 뭔지가 튀어 보이니까 그 떡밥에 달려드는 심정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청소년들을 봉으로 보고 함부로 대해서야 곤란하다. 어차피 언론이야 각각 자기의 관점과 논조가 있는 거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켜야 하는 선은 있다. 그동안 계속 활발하게 활동해온 단체를 갑자기 교육감과 연관지어서 교육감 까는 소재로 이용해먹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비트는 건 그런 선을 넘은 것이다. 아아, 조선일보가 촛불 2주년 기사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에게 저지른 짓을 보면, 이들에게 그런 선을 지켜주기를 기대하는 건 확실히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 보수언론들인 것이다.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그 언론들의 논조는 한결같이 청소년들을 가리켜 미성숙하다고 하며,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 되고 인권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식이다. 물론, 나는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비청소년들은 성숙하다고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나 경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불완전하고 합리적이지 않다. 청소년들이 미성숙해 보인다면, 그것은 청소년들에게서 사회적 경험의 기회를 박탈한 사회 제도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성숙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고 성숙할 기회에 비례하는 법이다.

설령 한 오백구십사보쯤 양보해서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고 하자. 그러나 미성숙하다고 해서 인권이 유보되거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식한 소리이다. 아동의 인권을 위한 세계의 약속인 '유엔어린이·청소년권리협약'(CRC)에서는 아동이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며, 자신들과 관련된 사안의 결정에 대해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정당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권은 나이와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이며, 인권으로서의 정치적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오히려 여러 나라들은 점점 심해지는 정치적 무관심에 대처하기 위하여 교육적 의미에서라도 청소년들의 정치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 10대 국회의원, 10대 정치인 등이 등장한 곳도 있다. 칠레에서는 청소년들이 시위를 통해 교육환경과 제도를 개혁했고, 스웨덴에서는 청소년들이 수업시수를 늘리려고 하는 정부의 시도에 반대하는 행동을 통해 이를 저지했다. 만약 한국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면 그것은 그처럼 자기 권리를 외치고 행동할 자치적 조직과 힘을 갖추지 못한 점일 테고, 그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들에게는 참으로 '성숙'하다고 박수를 쳐줘야 하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 언론들이 밑도 끝도 없이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나 정치 활동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이건 뭐 한국 청소년들은 선천적으로 미성숙하고 무식하다는 인종주의인가 싶다.

무개념과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 유수의 언론이라는 곳들이, 교수니 교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인권 기준이나 국제 협약 같은 것들에 대해 무지하면서 전문가랍시고 아는 척 기사를 쓰는 일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아수나로를 붙들고 어떻게든 교육감을 공격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청소년들을 대체 얼마나 얕보고 있으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나 하는 생각에 분노가 앞선다. 아수나로를 가리켜 "청소년들은 미성숙해서 안 된다.", "학생의 본분을 벗어났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선동된 거다, 우려스럽다."라고 함부로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으로 청소년들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진정으로 몰상식하고 무식한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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