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도 못 먹는 세상"
[르포] 식당들 가격 인상이 구제역 때문이라고?
2011.03.02 07:24:00
"5000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도 못 먹는 세상"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돼지고기 값이 들썩이고 있다. 3월 3일 '삼삼데이'(삼겹살 먹는 날)를 앞두고 삼겹살 값이 뛰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프레시안>은 서울의 대표적인 돼지고기 골목을 찾았다. 남산 '왕돈까스' 타운, 장충동 '왕족발' 골목, 마장동 먹자 골목이다. 예상대로 이 곳의 식당들 메뉴 가격이 대부분 올랐다. 그런데 현장에서 들리는 각각 인상 이유는 취재 의도와 다른 것이었다. 다음은 현장의 목소리다.<편집자>

서울 남산의 왕돈까스집. KBS <해피선데이-1박2일>에도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지라 식사시간 때는 늘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웬만한 어른 얼굴보다 큰 돈까스가 이 집의 유명세 이유다. 얼마 전부터는 '가격대비 푸짐하다'는 자랑이 머쓱하게 됐다. 최근 돈까스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왕돈까스집을 찾은 40대의 남성 손님은 "단골이라 자주 오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7000원이었던 돈까스 가격이 8000원으로 올랐다"며 "오랫동안 이 집을 다녔지만 이렇게 비싼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집의 주 메뉴인 왕돈까스는 8000원, 치즈돈까스는 9500원으로, 이전에 비해 각각 1000원과 1500원이 올랐다. 왕돈까스집 점원은 "불과 2주 전에 가격을 올렸다"며 "그간 몇 차례 가격을 올리는 걸 생각했지만 여러 차례 보류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가격을 올리자 손님들이 왜 가격을 올렸냐고 항의를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구제역 때문에 가격을 올리게 됐다고 하면 대부분은 잘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 씨는 "손님 중에는 우리가 이윤을 더 많이 남기려고 가격을 올렸다고 질타하는 분도 있다"며 "그렇지만 이러다가는 가게 문을 닫겠구나 싶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말하기가 편해 구제역 때문에 가격을 올렸다고 하지만 실제 가격을 올린 이유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제역도 구제역이지만 돼지고기 외의 식자재 값이 너무 오른 것이 가격을 올린 실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돈까스에 들어가는 마요네즈, 케찹, 채소 등이 상상 이상으로 올랐다"며 "구제역으로 돼지고기 값이 오르긴 했지만 가격을 올릴 정도로 심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마장동에 위치한 고기 골목. 사람들 발걸음이 뜸하다. ⓒ프레시안(허환주)

"구제역 여파로 족발 가격은 올랐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족발집도 마찬가지였다. 30년 가까이 이 곳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영옥(55) 씨는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구제역 여파로 족발 가격이 오른 건 사실"이라면서도 "워낙 단골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족발 가격이 그렇다고 가격을 올려야만 하는 만큼 오른 것은 아니다"라며 "배추나 마늘 등 식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같은 장충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숙(가명) 씨는 한 달 전부터 족발 가격을 5000원 올렸다. 보쌈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도저히 마진이 남지 않아 그렇게 했다"며 "식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돼지 값까지 오르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라고 한 숨을 내쉬었다.

서울 종로에서 굴 보쌈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기영(가명) 씨 역시 "보쌈 가격을 며칠 전부터 5000원 인상했다"며 "손님들에게 구제역 때문에 올렸다고 하면 이해를 해준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하지만 말하기가 편해서 구제역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식자재 값이 껑충 뛰어올라 가격을 올린 게 맞다"고 말했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숙자(56) 씨는 "구제역 여파로 사람들이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러 오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오지 않는 상황이라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을 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박 씨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돼지고기 값도 올랐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상추, 마늘 등 갈비집에 필수 항목들도 대폭 올랐다는 점"이라며 "불행은 겹겹이로 온다고 하던데 그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구제역, 진정세 국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돼지 사육두수는 작년 기준으로 약 990만 마리였지만 구제역 사태로 인해 전체의 30%인 324만 마리가 매몰됐다. 3개월 사이에 이 땅의 돼지 1/3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11' 보고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 영향으로 올해 돼지고기 값과 우유, 계란 값 등이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최근 시내 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삼겹살 가격이 2000~3000원 껑충 뛰었다. 영등포, 마포 등 서울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삼겹살 1인분에 1만 원을 돌파하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25일 기준으로 전국 도매시장의 돼지고기 가격이 1㎏당 7387원으로 구제역 발생 전(3928원)보다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은 구제역 확산에 따른 살처분과 이동제한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구제역이 진정세를 보이고 이동제한 해제지역이 확대되면서 출하량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할당관세(물가안정 등을 위해 수입품의 일정한 수량에 대해 일시적으로 관세율을 낮추거나 높이는 관세제도)로 도입한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경우 공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 1월 3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국내산 구이용 목심이 100g당 2570원에, 미국산 구이용 척아이롤이 100g당 1850원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은 국내산 목심(왼쪽)과 미국산 척아이롤 600g을 저울에 달아놓은 모습. ⓒ뉴시스

감자, 마늘 등 식자재 가격 상승세

공급 확대로 소나 돼지고기 가격은 점차 진정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 채소류와 같은 식자재 가격은 상승세가 가파르고 진정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한국물가협회가 발표한 생활물가 70개 품목 시세표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돼지고기, 감자, 마늘, 대파, 사과 등 11개 품목이 오름세로 거래됐다. 오이, 감자, 양파 등 채소류도 마찬가지다.

실제 가격도 그렇다. 17일 인천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에 따르면 10∼15일 동안 무 도매가격은 10㎏당 전주(3∼8일)보다 9.6% 오른 5130원, 대파는 10㎏당 6.7% 오른 2만1170원에 거래됐다. 이는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무려 116%, 90%가 상승한 가격이다.

감자(20㎏)와 시금치(1㎏), 양파(20㎏)도 단위당 각 5%, 1.9%, 0.4% 올라 2만7820원, 1895원, 1만8800원에 팔렸다. 배추는 20㎏의 가격이 전주보다 7.9% 하락한 1만6100원에 거래됐지만 작년 동기의 7660원과 비교하면 110%나 급등했다.

양배추는 작년 동기 대비 무려 181%나 치솟은 7890원에 거래됐다.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이 정도면 소매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채소를 살 수밖에 없다. 족발집 등 식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결국 구제역 피해보다는 전반적인 식자재 물가 인상이 식당들의 가격 인상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마포의 한 소금구이집 주인은 "돈가가 요동을 칠 때도 1~2개월 버티면 될 때는 다른 식자재를 줄이고, 채소 값이 뛰면 기본으로 내놓는 채소를 줄이거나 찬 종류를 줄이는 식으로 가격 인상 요인을 흡수할 수 있다"며 "요즘은 전부 다 올라서 가격 인상 요인을 흡수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종로의 한 중국음식점 사장은 "단골 손님 장사를 하기 때문에 가격을 안 올리려 했으나, 주변 중국집들의 압력이 너무 심해서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격을 올리면 매출 감소라는 부담이 따른다.

이런 가격 인상 추세는 대학가나 사무실 주변 식당들로 퍼져 나가고 있다. 신촌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근처 식당이 다 가격을 1000원 씩 올렸고, 중국집 짬뽕도 5500원"이라며 "요즘은 답답해서 며칠 동안 맥도널드 런치세트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마다 구내 식당에서 싸게 밥을 먹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푸념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편의점의 도시락 판매량이 2배 가량 뛰었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북아프리카 정세 불안으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해 생산지 가격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000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없는 세상. 서민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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