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절망의 번민…"제 이름 지워주세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특별상
두려움과 절망의 번민…"제 이름 지워주세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당선된 작품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이름을 지워 달라는 이들

2010년 10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기, 제 이름 지워주시면 안될까요?" 그런 전화는 점점 늘어갔다.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가 246일간의 힘겨운 투쟁을 끝내고 복직 합의를 하게 됐다. 학내에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에 반대한다며 자신의 이름과 학과, 학번을 적은 연서가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되어 걸려 있었다. 그 현수막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전화였다.

현수막엔 대학노조 명지대지부장과 나의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난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임시로 꾸려진 기구인 <명지대학교 노동자 학생 협의회>의 학생 간사였다.

처음엔 학교당국이 그 학생들을 회유하고 협박했으리라 여겼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기에. 그러나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난 굳이 이유를 묻진 않았지만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엔 수백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대형 현수막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리고 더 이상 그 현수막을 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현수막을 보며 누군가가 힘을 받기는커녕 더욱 절망할 것이기에.

나와 몇몇 학생들은 투쟁을 막 끝내고 그간의 상처들을 치유해야 할 조합원들에게 그런 소식을 알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연락은 2011년까지도 종종 오고 있다. 그간 나의 연락처는 바뀌었고 이제는 "용석아 00과 00학번 000이 이름 좀 지워 달래"라고 하는 한숨 섞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2009년 봄, 난 명지대학교 교정에서 '노동자의 오늘은 학생의 미래'라고 외쳤다. '청년실업 600만 시대'에 '비정규직 900만 시대'라고들 한다. 이 구호는 오늘의 비정규직의 처지보다도 청년들의 미래를 대변하는 구호인지 모른다. 노동자의 오늘보다 더욱 끔찍한 것이 학생의 미래일지 모른다는 절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부당한 해고와 처우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안정적인 직장을 영원히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

2004년, 대학에 입학해 8년이란 세월동안 소위 '운동권'으로 살아온 나에게도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키워나가야 할 소중한 아이가 생겼다. 졸업하지 못하고 오래된 화석마냥 교정에 남겨져 있었기에 부모에게 빚지는 것 말고는 나와 그녀, 그리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빚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의 삶과 그런 나의 삶으로 인해 고통 받아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싫었다.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오마이 뉴스>에 '가출청년의 결혼·육아 수난기'란 제목으로 적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에게 이름을 지워달라던 이들에게 '이런 나'라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으니 "힘내라고, 쫄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은 어떤 이는 '불안함'이 읽힌다고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불안하니까. 그들이 이름을 지워달라고 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유효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며 적은 이름 하나가 굴레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집을 나온 나는 학업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의 벌이를 보장하는 아르바이트부터 구해야 했다. 주점과 편의점은 실제 업무의 강도에 비해 벌이가 너무 적어 제외했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죽어나갔다던 저온냉장창고와 심야택배물류창고 업무는 나의 몸이 버텨내 줄 것 같지 않았다. 척추기형이라는 선천적 장애마저 지닌 몹쓸 몸이었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뒤져보다 전공과도 들어맞는 대형 유통마트의 심야파트가 제격이라 여겼다.

야간 수당이 책정되어 최저 150만 원정도의 월급이 보장되고 근무일도 주 6일에 월 2회 추가 휴무도 지켰다. 하지만 이력서를 제출한 세군데 기업 중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은 채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는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게재되고 있었다.

'착하고 값싼' 노동력이 발에 채이도록 넘쳐나는 때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만 검색해도 전력이 드러나는 나 같은 걸 쓰는 정신 나간 기업은 없었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뽑히지 않은 것이다. 단지 아르바이트 일자리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이름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름을 찾고 싶은 이들

나는 어렵사리 대중목욕탕의 매점에서 저녁 9시 30분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월 130만 원을 버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 '찜질방'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이 사회 밑바닥의 얼굴들을 피해갈 방법 없이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을 제외하면 '찜질방'의 밤의 주 손님은 가난한 청춘이나마 하룻밤을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보내고자 온 소수의 젊은이들 말곤 대체로 그들뿐이다. 하루를 일하고 하루를 쉬어가며 삶을 이어나가는 그들은 이곳에서 그저 버텨내고 있다. 24시간에 7000원이란 돈으로 하루를 날 수 있고 씻을 수 있는 이곳은 집이 없는 자들의 최후의 보루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곳은 이름을 지우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찜질방'의 주 이용자인 그들은 노숙자와 일용직 노동자의 중간에 끼어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빈곤과 노숙인에 대한 통계자료에 종종 등장하여 그 자료에 단 몇 줄의 문장으로만 설명되어 있다. '현존하는 모든 노숙인에 대한 통계에는 이들의 존재가 누락되어 과소평가되어 있다'는 문장 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악밖에 남지 않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 언저리에 있는 이들이다. 자신의 처지가 절망의 나락 한 끗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재껴지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사소한 일에도 언제든 말도 안 되는 큰 다툼을 벌일 태세가 되어 있다.

밤이 되면 술에 취해 난폭하게 소리질러대고 시비를 걸기 일쑤다. 나를 포함한 점원들은 그런 그들의 시비를 일일이 받아주는 것이 피곤하다. 그저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지만 그 밑바닥 인생들은 같은 밑바닥 처지인 점원의 무시가 분해서 다시 악을 쓴다. "내가 000이야"라며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이 밖에선 아무도 그 이름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절망과 좌절

언제부턴가 우리는 절망과 좌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 가장 밑바닥의 인생에서부터 평범한 학생들까지. 이름을 지우거나 이름이 지워지는 삶 사이에서 점차 선택지가 사라지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속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밑바닥에 스스로 내팽개쳐진 후 그런 절망과 좌절을 나 역시 피해갈 방법이 없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 낸 것들에 대해 기업들은 조금씩 그 성과들을 무위로 돌려왔고 우리는 그것을 보아왔다. '정규직'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보다 빠르게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연이어 구조조정이나 인원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채워진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의 사람을 의미하는지 감조차 잘 오지 않는 숫자들의 놀음이 우리를 말 잘 듣는 순한 양으로 길들이고 있다.

우리는 이름에 조금 더 비싼 꼬리표를 달고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상품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런 무한 경쟁의 궤도를 이탈한 자들에게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리라는 걱정들이 상식이 됐다. 그래서 이름에 '나쁜 기록' 하나 남기지 않고 애지중지 하여 그 이름에 자기가 짓밟아온 이들의 이름값을 더해 가격을 높인다.

그래봤자 절망과 좌절의 명단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다. 더욱이 그런 20대의 삶은 행복이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오늘 지운 우리의 이름은 고스란히 누군가의 절망과 좌절이 되어 돌아온다.

언젠가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라며 투쟁사를 시작하던 노동 투사들의 외침이 조금씩 몸으로 이해되는 나였다. 당신들이 지운 이름들만큼 나의 아이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절망이 차오르고 있었다.

시지프스의 노동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비정규직법 폐기하라'를 외치며 연이어 분신하고 목을 매고,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노동자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독재자를 권자에서 몰아냈지만 그 잔당이 재집권해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조항들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기도 한다.

혹자는 이런 노동자들의 저항이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며 시지프스의 노동에 빗대어 혹평하고 한탄했다. 수많은 투쟁들의 힘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꿔 왔지만 돌은 몇 번씩이고 다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자 투쟁만으론 '찜질방'에서 본 밑바닥 인생들을 구제할 수도, 이름을 지워달라던 대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절망과 좌절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신화를 새롭게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지프스가 단지 돌을 굴려 산꼭대기로만 갈 게 아니라 산 자체를 허물어낸다던지. 돌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릴 것을 명한 명계의 왕 하데스에게 파업을 선언한다던지. 신들의 왕 제우스와 명계의 왕 하데스 같은 신들을 아예 내쫓아 버리고 인간의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신화에 대한 은유를 넘어 현실에서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 물음에 답을 찾아야 했다. 이름을 지우거나 잃은 이들은 물론 나를 위해서도 말이다.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그나마 싸워 볼 수 있는 작업장에 국한된 '초인적' 투쟁을 열심히 응원하거나, 그저 좌절하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간 영웅적으로 투쟁해 온 노동자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투쟁들이 내가 이런 '이상'을 꿈꿔 볼 기회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나에게 이름을 지워달라던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대답할 수 없다. 이름조차 잃은 그들의 이름을 되찾을 수 없다. 결연한 의지로 버텨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절망과 좌절을 넘어

다행히 그간 우리의 저항과 투쟁들이 단지 시지프스의 노동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몇 가지 감동적인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빼앗긴 이름만큼의 분노가 모여 서울시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서울시장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서울시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부 정규직화 한다는 정책이 발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은 그간 기업주와 정치인들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단 것을 증명했다.

단지 시장 하나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불가능하다 말한 시장을 자리에서 쫓아냈고 그것이 가능하다 말하는 시장으로 교체해 쟁취해낸 것이다. 이제 와서 뒤늦게 한나라당조차 공공부문 비정규직 9만70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우습기만 한 일이다.

희망버스와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의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또한 증명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투쟁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만 국한된 저항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런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들이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던 것을 뒤흔들어 놨다. 정리해고 철회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한 기업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지가 전국으로 퍼져 버스에 가득히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들을 태워 왔다. 승리하고 돌아간 이름과 얼굴들에는 희망의 싹이 피어오르고 있다.

희망은 있다

두 사례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거대 재벌기업의 총수들과 의회의 '금뺏지' 달고 있는 '꼰대'들과 푸른 기와집의 '눈 찢어진 아저씨'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감동적인 역사다. 단지 두 사례로 얘기를 풀어나가기엔 다소 비약적이지만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어떤 움직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 사례 외에도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는 더 많은 변화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가능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하려 한다. 언젠가 혹자가 시지프스의 노동이라 혹평했던 우리들의 저항으로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 과정에 담긴 우리의 이름들이 그것을 만들고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름을 지우거나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말이다. 그 힘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얼마나 나아갈지가 온전히 우리들의 선택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가능성일 뿐이지만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포기할 수 없다. 지금 나는 비록 대중목욕탕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가출 청년 신세지만, 나의 아이와 우리의 미래에 절망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당신들에게도 나처럼 그래야 할 이유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훨씬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이 글의 원제는 <왜 이름을 지워야 하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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