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미디어렙 입법? 현실성 없는 원칙론일 뿐"
[기고] "미디어렙 입법 논란에 따져봐야할 법적 쟁점"
2012.01.11 16:11:00
"총선 후 미디어렙 입법? 현실성 없는 원칙론일 뿐"
미디어렙 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핵심 가운데 제일 큰 것은 조·중·동 종편을 미디어렙에 묶는 시점에 대한 것이다. 현재 문방위를 통과한 법안은 조·중·동 종편을 미디어렙에 묶되 승인일로부터 3년의 적용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일단 묶기는 묶는 것이다.

'총선 후 입법' 주장은 '원칙론'에 불과하다

이것을 조·중·동 종편에 대한 특혜라면서 이 법안을 '야합'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원칙론자'들은 조·중·동 종편을 '즉각' 렙으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은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동의하지 않으니 오는 4월 총선에서 이겨서 원내 다수당이 된 뒤에 즉각 조·중·동을 묶는 법을 만들면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미디어렙에 대한 1인 지분을 낮추는 것 등도 포함해서다.

이 주장이 말로만 '원칙론'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 맥락이다. 우선 이 대단히 원칙에 충실해 보이는 주장은 실제로는 너무 많은 전제를 깔고 있다. 첫째, 현재의 야당이 총선에서 이겨서 다수당이 되어야 한다. 지금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지만 정치는 항상 유동적이다. 둘째, 현재의 야당이 1당이 되더라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그런 방안에 반대할 것이다. 거의 3분의 2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했던 한나라당도 언론악법 처리에 거의 1년이 훨씬 넘게 버벅거렸다. 4월 총선에서 야당이 1당이 된 뒤 국회 원 구성을 하면 곧바로 여름이다. 연말 대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새롭게 1당이 된 야당이 한나라당이 언론악법 처리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물리력 동원해서 처리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가? 결국 이 셈법을 따르면 올해는 사실상 렙법 처리가 불가능하다.

불과 몇 달 뒤에, 총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국회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조·중·동 종편을 렙에 묶고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미디어렙법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위에서 본 것처럼 대단히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 조·중·동 종편은 렙이라는 최소한의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회사 내의 광고 담당 부서를 통해 직접 영업을 하고 있다. SBS는 이미 미디어크리에이트를 지주회사 산하에 설립해 사실상 영업을 이미 시작했고 MBC도 자사 렙을 만들기로 하고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1일 개국 전부터 광고 영업을 하고 있는 종편과 함께 이제 방송사의 자체 혹은 자사렙을 통한 광고 영업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 보호, 법적 안정성의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영업이 최소한 올 대선 직후까지 계속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인 부분까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른바 기득권 보호, 법적 안정성이라는 일반 원칙이다. 우리는 과거 방송법에서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승인제를 도입하면서 이미 운영되고 있던 보도전문채널인 MBN을 새로운 법에 따른 보도전문채널로 인정해 주었다. 기득권 보호 원칙에 따른 예외 인정이다. 이러한 기득권 보호에는 시간의 경과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막 출범한 종편을 렙으로 묶는 것은 당사자의 저항은 물론 법적 안정성에 다른 기득권 보호 주장을 공익적 필요라는 무기로 그럭저럭 넘어설 수 있지만 해가 바뀌고 또 해가 바뀌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미 지금 법안보다도 더 높은 60%의 최대 지분을 가진 자사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영업을 일정 기간 하고 나면 이들도 할 말이 생긴다. 과거 자체적으로 광고 영업을 하던 방송사들로부터 KOBACO로 광고 영업권을 강제로 귀속시킨 것은 국보위 시절이다. 저항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KOBACO 독점 체제가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무너진 상황이다. 현재와 같이 특별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광고 영업이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뒤늦게 국회가 나서 이러이러한 회사를 만들어서 광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일종의 소급 입법을 하면 위헌 논란은 불 보듯 뻔하다. 2009년 말 헌재 결정도 공익적 측면에서 방송 광고 방법에 공적 규제를 가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한 것이지 광고를 직접 팔면 위헌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2009년 말 헌재 결정의 취지를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도 금물이다. 당시 헌재는 렙을 통한 간접 판매가 합헌이라고 한 것이지 그렇게 팔아야만 한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다.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종편을 미디어렙에 묶는 최소한의 근거라도 만들어놓지 않고 가면 상황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과거의 기득권 보호 원칙은 Grandfather Clause라는 이름으로 영미법계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조부조항이라는 말로 소개된다.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 나오는 교도소 내의 애완고양이도 교도소 내의 애완동물이 금지되기 전에 반입된 것으로 'grandfathered', 즉 예외를 인정받았다고 나온다. 그런 것이다.

'공익을 위한다'라고 해서 모든 입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법적 쟁점은 이른바 최소 침해의 원칙이다. 최소 침해의 원칙은 아무리 합헌적인 목적(이를테면 공익 목적)을 위한 조치라도 기본권을 덜 침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렙을 통한 판매가 공익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즉, 렙을 통한 판매의 강제가 광고가 편성과 제작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사(종편을 포함한)에게 적은 제약을 가하면서 같은 목적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 종편은 물론 기존 방송사들조차 렙으로 묶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이미 자체 영업을 하고 있는 조·중·동 종편이 향후 일정 기간 동안 렙을 통하지 않고도 광고 판매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지 않고, 보도나 방송에 광고로 인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렙에 묶자는 주장이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종편이 조금씩 마각을 드러내더라도 대응이 쉽지 않다.

'입법 공백' 자체가 가장 큰 특혜…이에 대한 해법은?

말로는 '원칙론'이 실제로는 이처럼 정치적 맥락에서나 법적 맥락에서나 허점이 너무 많다. 이미 종편은 입법의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즐기고 있다. 종편 출범 당시부터 6개월 치 광고를 미리 팔았다는 말도 돌았다. SBS 사측도 은근히 사실상 연내 입법이 물건너 가는 상황을 즐기고 있다. 자사렙을 지주회사 직할로 두고 지금까지는 SBS에서 콘텐츠 판매수익만 빼돌리던 것에서 나아가 훨씬 규모가 큰 광고 수익까지 빼돌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광고 매출 1위인 MBC도 자사렙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조·중·동 종편에 대한 더욱 큰 특혜이며 SBS의 사주와 MBC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특혜가 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도대체 '원칙론자'들이 내세우는 해법은 무엇일까?

그래도 지금의 미디어렙법안이 조·중·동 종편 특혜법이고 야합의 산물이라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것인가.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방송 광고를 둘러싼 모든 논의가 소모적인 정치적, 법적 논란 속으로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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