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갑' 동대문에 대응할 '창신동 FTA' 만들자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6>경쟁력 확보 위한 플랫폼 구축돼야
'슈퍼 갑' 동대문에 대응할 '창신동 FTA' 만들자
지속 가능한 개발, 지속 가능한 사회가 근래 들어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환경을 해치지 않고 사회적 형평을 맞추며, 동시에 경제 성장을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보통 세 가지 요소가 주요 '전략'으로 거론된다. 환경적 지속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 사회적 형평(Social Equity), 그리고 경제적 지속가능성(Economic Sustainability)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추가 잘 잡혀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사회가 가능해진다고 본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캄보디아 메콩 강 주변 저소득층 주민의 '마실 물'과 관련한 일이다. 필자는 여름마다 학생들과 캄보디아를 방문해 지속가능 개발에 대한 워크숍을 열고 있다. 캄보디아의 열악한 상황과 일부 지역이 가진 문제점들을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이는 자연스레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구체적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메콩 강의 사례를 보자. 캄보디아의 '젖줄'과도 같은 이 강은 수질이 별로 좋지 않다. 정수 시스템이 그나마 갖춰진 수도 프놈펜 등 큰 도시는 정수된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메콩 강 주변 농촌 지역은 다르다. 정수 시설이 매우 열악한 이곳 주민들은 비위생적인 메콩 강 물을 그대로 마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메콩 강과 주변 지역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11> 창신숭의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12> 동대문에선 왜 자라·유니클로가 탄생 못하나
<13> 5000억 들어간 '오세훈 졸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14> 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5> 창신동, 패션과 관광산업 메카 가능성

'환경'과 '형평' 위해 결국 담보해야 하는 것은 '소득'

이에 대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세 가지 요소 가운데에서도 우선 환경적 지속가능성, 즉 수질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문제는 캄보디아처럼 저개발 국가에선 농촌에 쓰일 수많은 정수 시설을 지을 국가 재정이 충분치 않다는 점. 주민 건강을 위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오염된 물을 정수해야 했던 캄보디아에서 나온 대안은 '사회적 기업'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기업이 이동식 정수 시설을 갖춘 버스를 운영해, 소정의 정수 비용을 받고 저가에 물을 판매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주민은 더러운 메콩 강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국가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국가가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기업이 나서 해결한 것으로, 일면 박수받을 일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자본주의 메커니즘 안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이, 약간의 이윤을 붙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기업이 책정한 가격은 소득 수준이 낮은 메콩 강 주민이 부담하기에도 적당한 가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저소득층에게도 충분히 판매 가능할 거라 내다봤다. 그런데 이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전개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결국은 '소득 수준'이 문제였다.

캄보디아의 저소득층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물을 사는 데 써버리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저소득층 부모는 물을 살 돈을 아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깨끗한 물이 생겼지만, 이를 누릴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환경적 지속가능성(수질)을 담보하기 이전에 진짜 풀어야 했던 숙제는 '사회적 형평'을 맞추는 일이었다. 부자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며 동시에 자식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반면 저소득층은 정수를 거친 깨끗한 물이 있음에도 이를 이용할 수 없었다. 사회적 형평이 맞지 않은, 즉 불평등한 사회가 누군가에겐 정수된 물조차 사마실 수 없는 상황을 떠안긴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형평'을 맞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저소득층 주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콩 강 지역 주민의 소득이 높아진다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깨끗한 물도 마실 수 있게 된다. 캄보디아 메콩 강 주변 농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을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일이란 것이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 창신동의 오늘


▲ 저소득층 밀집 지역 창신동의 모습. 이곳에선 오토바이가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김경민
위에서 살펴본 캄보디아 사례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도 적용된다. 특히 서울 안에서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인 서민 동네, 창신동이 그렇다.

창신동에 있는 수많은 봉제 공장은 그 규모가 매우 작다. 1~2인이 운영하는 가내수공업 형태인 경우가 대다수다. 애초에 공장 용도로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아, 일을 하기에 불편한 구조가 대다수다. 층고가 낮고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도 많다. 옷감을 자르고 붙이는 일을 하는 봉제 공장은 먼지가 필연적으로 많이 나는데, 환기가 안 된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봉제 공장들은 주로 낙산공원 근처에 있다. 동대문과 창신동 사이 비좁은 골목길엔 원단과 의류를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가 물결을 이룬다. 좁은 골목에 빠르게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는 보행자에게 굉장히 위험한 존재다. 그러나 이를 오토바이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창신동 골목골목에 있는 봉제 공장에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신동은 언덕이 가파른 곳이 많다. 주민들에게도 최적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창신동에는 지금도 제대로 된 놀이터와 넓은 공원이 없어요. 그나마 골목길이 오밀조밀하게 엮여있는 재미있는 곳이어서, 제가 어렸을 때에는 창신동 전체 동네를 대상으로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었죠.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제가 어렸을 때 창신동에서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창신동 지역 주민 인터뷰, 2013. 06.10)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비좁은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열악한 작업 환경, 12시간 넘는 노동, 방치된 아이들

현재 창신동은 작업 환경뿐 아니라 주거 환경 역시 매우 열악하다. 환경적 지속가능성이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창신·숭의 뉴타운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이런 대안은 지역 커뮤니티를 해체시키고, 동대문 패션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형평'과 관련해서도 창신동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다. 창신동 봉제 공장은 완전 경쟁 상태에 가까워 순이익이 극도로 작다. 그러다 보니 노동 시간을 늘리는 데 급급하다. 10시간 이상 일하는 봉제 공장 노동자들이 절반을 넘고(53%), 12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아이가 있는 부모가 10시간 이상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가 9시까지 학교에 가려면 8시 30분엔 아이가 집을 나서야 하고, 방과 후 수업까지 학교에서 듣는다고 해도 오후 6시에는 학교 보호가 끝난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이라고 해야 간신히 10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부모는 늦은 저녁까지 공장에서 일을 한다. 주말에도 '대기' 상태로 있기 일쑤다. 아버지가 재단 일을 하는 경우라면,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을 할 테다. 부부가 이렇게 연이어 24시간 일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방치'된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보호와 좋은 가정 교육을 아이들이 받길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사회적 형편 차원에서도 창신동은 '열악함' 그 자체다.

봉제 공장의 환기 상태를 개선하고, 작업장을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려면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 (투자) 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놀이시설 투자) 자금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12시간 노동을 10시간 수준으로 줄이려면 실질 임금이 올라야 한다. 시간당 1만 원을 받아 하루 12만 원을 버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10시간만 일하려면 실질 임금임 시간당 1만2000원으로 올라야 한다. 이 역시 자금이 필요하다.

이처럼 환경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단 '소득'이 올라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단 것이다.

▲ 창신동. ⓒ김경민

대안은 '공정 거래', "FTA 위한 협동조합 키우자"

필자는 창신동 지역을 어떻게 하면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수년가 고민을 해왔다. 매학기 창신동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관련 논문도 발표해 왔다. 그리고 지금,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공정 거래 패션(FTA·Fair Trade Apparel)이다.

동대문과 창신동이 현재의 '착취' 구조를 유지한다면, 창신동 봉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동대문 상인들은 언제라도 다른 봉제 업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동대문 상인들은 창신동 봉제 노동자들에 대해 '슈퍼 갑'의 위치에 있다. '슈퍼 갑'인 동대문 상인들이 봉제 공장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올려줄 까닭이 없다. 이러한 착취 구조를 깨려면 창신동 봉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요구할 '거대 집합체'를 만들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그 집합체일 수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 결성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는 것은 노동자이자 동시에 봉제 공장 사업주인 당사자로서 매우 큰 위험일 수 있다. 사업주로서 동대문과 거래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에 참여하면 거래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만약 협동조합을 통해 예전만큼의 일거리를 얻지 못한다면, 외려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소득이 낮은 봉제 공장 사업주는 섣불리 협동조합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협동조합을 장기적 과제로 두고, 단기적으로는 협동조합 결성을 지원할 새로운 플랫폼(기관)이 필요하다. 새로운 플랫폼은 협동조합 설립을 도와주는 역할뿐 아니라, 동대문 이외의 새로운 유통 채널을 뚫어주는 마케팅, 기획, 경영 능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 패션 산업과 유통 산업에 관한 매우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집단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이 거대 유통 회사와 거래 관계를 맺고 유통망을 확보하거나, 대형 종교단체나 정부 기관 등 공공 조직에 정기적으로 납품할 안정적 거래 물량을 확보한다면, 협동조합 결성을 위한 자금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봉제 공장 사업주 겸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김경민

봉제 공장에 대한 이러한 인센티브에는 반드시 반대급부가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봉제 공장을 지원한다면 도덕적 해이에 빠질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안정적 유통망을 확보해 협동조합의 옷을 정기적으로 일정량 이상 팔아주는 상황이 된 끝에 실질 임금이 증가하였는데도, 여전히 12시간 이상 일을 하고 가정과 자녀를 돌보지 않고 작업 환경마저도 과거와 같이 유지해선 곤란하다. 이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사회적 형평과 환경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창신동 봉제 공장에 제공된다면, 창신동 봉제 공장 조합원들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조합원들은 최대 10시간 노동이라는 근무 시간을 준수하고 이를 통해 자녀와 가정을 돌보려 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작업장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공정 거래(Fair Trade) 개념에 근거한다. 공정 거래란 종속적이고 착취적이지 않은,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거래한다는 의미다. 다행히 '공정 거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우호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 거래' 제품을 위해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창신동의 '공정 거래' 프로젝트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봉제 공장 노동자들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 그룹의 지원이 필요하다. 장기적 지원이 가능해지려면 플랫폼 형식의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플랫폼 조직은 협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협동조합이 '공정 거래'의 요건을 따르는지를 관리·감독하여야 한다.

협동조합은 창신동의 미래를 위한 도약 발판이다. 올해 초엔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이 설립됐다. 긍정적인 변화 조짐은 이미 시작되었다. 물론 공정 거래만으로 창신동 봉제 공장의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강한 소규모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제3 이탈리아의 패션 클러스터' 사례처럼, 진정한 경쟁력은 결국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데에서 나온다. 현재의 저부가가치 의류 생산이 방식이 아닌 고부가가치 의류 생산으로 시스템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과 함께 공정 거래 플랫폼의 지속적 운영, 노동자들의 기술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창신동 봉제 공장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동정이 아닌 지역 자체의 경쟁력이다.

□ 필자 주석
① 출처:Hustvedt, Gwendolyn, and John C. Bernard, 《International Journal of Consumer Studies》 34(6), 2010, p. 619-626.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hycho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