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마을 프로젝트 성공사례 '동피랑 벽화마을'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9>경제적 지속성 위한 플랫폼 없으면 실패
벽화마을 프로젝트 성공사례 '동피랑 벽화마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 가지 요소, 즉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형평, 경제적 지속가능성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앞 연재에서 설명하였듯 경제적 지속가능성이라 본다.

그리고 이를 상기시키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2000년 들어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벽화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쇠퇴한 지역에 벽화 그림을 그려 환경을 예쁘게 단장하면 관광객들이 방문해 지역이 재생될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포착한 많은 시군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는 정책 입안자들의 눈에는 멋있어 보일지 모르나 일반인들에게는 감흥도 없는 벽화를 그리게 하고는, 이제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수입이 올라갈 것이라 장담하곤 했다.

하지만, 벽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 즉 벽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룬 케이스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메커니즘과 플랫폼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순히 예쁜 벽화를 그리면, 즉 도시 환경만 예쁘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은 단순한 생각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경적 지속가능성만 담보하면 지속가능한 개발이 달성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공하였다면 모르나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벽화마을 프로젝트들은 실로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시 정부에 가중시키고 있다. 벽화 하나를 그리는 데 드는 비용(일반적으로 200만 원 상당)이 첫해에 들어가고, 2년마다 보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 하나의 벽화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50~100여 점의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기에 사업 초기 시 예산은 1~2억여 원이 소요된다. 시각에 따라서는 적은 금액이라 볼 수도 있으나, 대개 재정 자립도가 형편없이 낮은 쇠퇴한 지역들에서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예산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나아가, 이런 시군구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점도 예사 문제가 아니다.

지역에 공헌하는 바가 크니 당신은 불편해도 참으시오?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 인근 동네에 집 두 채가 있다고 치자. A 건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고 그 밑으로 B 건물이 있다. A 건물은 가정집으로 이용되고 있고 담벼락이 길고 넓다. 그리고 용도가 주거지여서 상품 판매를 할 수 없다. B 건물은 대로에 접한 코너에 있어 조그마한 구멍가게로 쓰이고 있다.

어느 날 창의적인 예술가가 A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벽화를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그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A 집 골목길을 돌아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B 구멍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서 B 구멍가게 주인은 큰돈을 벌게 되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A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이 상황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과 피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외부 방문객은 벽화를 통해 매우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얻는 이익을 얻는다.
2. B 집의 구멍가게는 이전보다 매출이 늘어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3. B 집의 구멍가게 매출 증가는 세수 확대로 연결되어 지역 정부 역시 이익을 얻는다.
4. 그렇다면 과연 A 집주인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A 집 주인이 벽화로 인해 어떤 이익을 얻을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반대로 A 집 주인이 어떤 피해를 당할지 생각해보자. 예상치도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벽화를 보러 옴으로써, 늦은 밤에도 잠을 잘 수 없고, 전혀 모르는 낯선 방문객이 집에 불쑥 들어오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며, 집 주변의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편한 복장은 고사하고 통행 자체가 불편해질 수 있다. 불확실한 이익에 비해 너무나 큰 피해를 보는 형편이다.

따라서 문제는 A 집이 제공하는 이익을 정작 A는 누리지 못하고 피해만 입는 형편인 데 반해, B 집의 구멍가게와 지역 정부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간다는 점이다. 만약 이때 A에게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A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지역 정부와 여론은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으면서 "A집 벽화가 지역에 공헌하는 바가 크기에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A 집주인은 참으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런 보상도 있지 않는다면, A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딱 하나다. 벽화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A를 비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다.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지역 정부다. 이익을 제공하는 A와 혜택을 받는 사람이 다를 때, A는 이익 제공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마땅히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

이화동의 현실, 지역 주민에게 고통 감수 강요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서울 종로 이화동에서 벌어졌다. 이화동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영단주택이 지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이 오래된 건물들의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비록 낡아 보이기는 하나, 외관을 약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도 사뭇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인기 있는 한 젊은 연기자가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화동의 주택 담벼락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해당 주택은 엄청난 인파를 겪었다. 이 날개 벽화를 그렸던 작가가 벽화를 보수하기 위해 동네를 다시 방문하였을 때, 작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민들과 집주인의 고충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매우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본인 손으로 본인의 벽화를 지워버린 것이다.

▲왼쪽은 2010년 김주희 작가가 그린 날개 벽화. 오른쪽은 벽화를 지은 후 담벼락 모습. ⓒ김주희 작가 제공

2008년 이화동 날개를 그린 김주희 작가는 담이 매우 예뻐서 집주인의 허락을 구하고 자비로 벽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 연예인이 나온 프로그램으로 이화동 날개 벽화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너무나도 많은 인파가 이 지역에 몰리게 되었다.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몇십 미터에 이르는 긴 줄이 좁은 골목에 늘어서기도 하였다. 문제는 골목이 두세 명이 간신히 지날 만한 크기여서 주민들이 보행하기에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좁은 골목에 많은 인파가 들어차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였고, 벽 상태가 좋지 않아 소음이 그대로 집 안으로 전달되었을 뿐 아니라, 밤에는 소음이 더욱 커져서 주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벽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주민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외부인이다. 생면부지의 남자들이 저녁 무렵 돌아다니는 경우 어린 여자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선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화동에서도 당연히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급기야 다른 집 화단을 밟고 올라가 사진을 찍고, 끊임없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외부인들도 속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아무런 경제적인 대가도 얻지 못했다. 그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처럼 구경꾼들의 구경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그들이 전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엄청난 이익을 제공하는 이익 제공자임에도 피해만 입는 상황이었다. 외부인들만이 유일한 이익 향유자였다. 결국 김주희 작가는 주민들의 피해를 이해하고, 자신의 작품을 지워버리게 되었다.

동피랑의 교훈, 지역 주민과 수익 공유

반면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은 벽화라는 같은 접근 방식이 낳은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동피랑은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의 노력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재개발 위협 속에서 문화 공간과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첫걸음은 이화동과 같이 벽화라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화동과 다른 점은 단순히 공공 예술만으로 끝나지 않은 점이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시 당국의 협조를 통해 갤러리와 공판점, 상점 등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그 지역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외부인들로부터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동피랑이 돋보이는 점은 운영 수익의 일정 부분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쓸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역 벽화를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공하는 인센티브에 대한 대가, 특히 경제적인 대가가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동피랑을 찾은 관광객은 새로운 경험이라는 이익을 얻고, 지역민 역시 이익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그 이익을 향유하는 이익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이해 관계자 차원 분석에서 볼 때, 이화동은 이익 제공자인 주민이 전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동피랑에서는 주민이 이익 제공자임과 동시에 이익 향유자가 되었다. 이는 또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온다. 동피랑 주민들은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 덕택에 외부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적극적이고 따뜻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이화동 주민의 태도는 동피랑에 못 미친다.

▲ 경남 통영시의 동피랑 마을. 사진은 통영시와 '푸른통영21'이 2010년 개최한 `제2차 벽화 공모전 - 동피랑 블루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벽화마을 프로젝트…"지역 주민의 경제적 지속가능성 담보해야"

이런 상황은 이화동과 동피랑을 찾았던 관광객들이 이곳들을 재방문할 가능성에 큰 차이를 만든다. 동피랑을 다녀온 사람들은 당연히 다시 그 지역을 방문할 의향이 생길 것이다. 그들은 생동감 있는 커뮤니티의 삶을 볼 수 있었고, 역동적인 커뮤니티의 삶은 방문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생동감 넘치는 커뮤니티의 삶은 결국 공공 예술이라는 창의적 공간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개발, 특히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주민들 간의 협약이 진실로 절실한 이유는 경상북도 한 지역의 사례에서 나타난다. 그곳에는 공공 예술로 인해 주목받는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많은 세입자가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공공 예술 작품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리자, 집주인은 세입자를 쫓아내고 카페를 운영하였다. 공공 예술의 긍정적인 힘이 커뮤니티 내부의 협약에 의해 지켜지지 못할 때,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담보할지 모르나 사회적 형평이 깨지게 된 것이다.

예쁜 벽화를 그려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사회적 형평을 담보할 수 없다. 또한 약간의 환경 업그레이드(개선)를 통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는 거리가 멀게 될 것이다.

문제는 디자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디자인은 수단이 되어야 하며 해결방식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담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동피랑의 경우엔 수익성을 창출하고 지역 주민들이 수익을 공유하게 하는 전략과 조직이 바로 그 플랫폼이었다.

(추신) 지난여름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김주희 작가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김주희 작가의 작품인 날개 그림은 작가의 창의성이 들어간 것이기에 지적 재산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김 작가의 날개 그림이 작가의 동의 없이 상품이 되어 팔리고도 있는 실정이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지금, 진정으로 창의성에 바탕에 둔 예술 작품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더욱 철저히 마련되었으면 한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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