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전쟁의 시대, '좌파 전사'를 기르자!
은밀한 전쟁의 시대, '좌파 전사'를 기르자!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향하고 불황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활발히 치솟는 수치들은 다음과 같다. 고시 응시율, 대기업 입사 경쟁률, 청년 실업률, 청년 부채율. 주거비를 비롯한생활비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고 계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동력이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 기반 선점을 위한 무한 경쟁에 매달리게 한다.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 자체가 불안한 이때,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만 같은 '활동'이니 '운동'이니 하는 길을 택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행복한가? 아니 그보다 일단 힘들지 않은가? 왜 시작했으며 왜 계속하는가? 이들이 탐색하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활동의 질량은 세계의 관성에 맞서 달리는 열차의 속력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의 <2013 청년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각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 활동과 전망을 나누고, 기본소득과 교차점을 살펴본 기록이다. BIYN은 각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가치를 믿고 이들의 서사와 메시지가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활동으로만 설명되어왔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활동들을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의 인터뷰는 <프레시안> 연재를 위한 편집본입니다. 글 마지막의 링크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지금까지의 인터뷰 모아서 보기

본명보다 '김슷캇'이라는 활동명이 더 유명한 사람, 어쩌면 활동가로서의 자신보다 트위터 계정이 더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사회당 당직자로 일하던 2009년에 오타쿠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말하며 사회당 덕후위원회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고, 이후 '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이라는 이름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집단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2011년 겨울 초입 대한문 앞에서 '뉴타운 간첩파티'라는 하수상한 시절에 뒷덜미 잡히기 딱 좋은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김성일 씨는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기본소득'을 확실히 자기 운동의 중심 의제로 삼아 온 사람이다. 기본소득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부터 나름의 '얼리 어답터'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홍보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는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그의 고민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또 활동가로서의 격동적인 진로 변경은 어떤 판단과 고민들 위에 이루어졌던 것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11월 13일, 마포구의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청년좌파'와 함께 분투해온 그를 만났다.

▲ 청년좌파 대표 김성일.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BIYN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성일 : 청년좌파라는 단체랑 박정근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름은 김성일입니다.

BIYN : '청년좌파'와 '박정근 후원회'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김성일 : 박정근 후원회의 경우는 예전에 박정근 씨가 국가보안법으로 연루되어서 수사받기 시작하고 나서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었는데, 같은 사례의 피해자가 늘어나면서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했어요. (수사받는 데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고, 만약 이 사람들이 재판을 받게 되거나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의 비용 문제도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연고가 없을 때 그들이 도움이나 조언을 구할 대상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정확히는 트위터로 인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함께 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있어요. cms형태로 다달이 20명 정도가 후원회비를 내고 있죠. 조금씩 늘려가야죠.

그런데 최근에 저에 대한 국가보안법 관련 조사 역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사실상 운영위원 전원이 국가보안법 관련자인 형태가 되었죠. 좀 웃기는 경로로 알게 됐는데, 다른 건으로 서대문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경찰이 조회해봤더니 국가보안법으로 조사 중이라고 나온다더라고요. 그쪽에서는 제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얘기한 것 같은데 아니었죠.

박정근이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를 받게 됐을 때, 제가 거의 처음으로 혼자서 '뉴타운 간첩파티'라는 행사를 주최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같이 도와준 사람들 일부가 청년좌파를 하고 있고 그밖에 '대학생 사람연대'나 이전에 사회당 서울시당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고요. 예전에 두리반, 명동 마리를 거쳐 오며 만났던 사람들이 좀 있고요. 거기에 그 사이사이 만났던 활동가들, 노동자들 혹은 노동당이나 녹색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회원은 150~200명 정도가 있어요.

청년좌파의 경우 굳이 따지자면, 정치적 차원에서 중심에 있는 것은 기본소득이에요. 그렇다고 딱히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세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청년좌파라는 이름 자체는 지향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과도기적인 이름일 뿐이에요. 그래서 '준'을 안 떼고 있는 건데, 일단 그런 사람들을 모아본 거죠. 이 사람들한테 딱히 이름 붙일만한 게 없어서 '청년좌파'라는 이름을 임시적으로 붙인 거고요.

'없는 것'에서 뭘 파내 본 경험이 없는 청년들과 함께

BIYN : 작년 말에 시기적으로, 독자적으로 새 단체를 만들었는데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김성일 : 흐름이 그랬던 것 같아요. 기반들이 다 사라지는 흐름 있잖아요. 예를 들면 가장 큰 것은 '당'이라는 기반인데, 제가 당시 속해있던 당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죠. 운동이라는 게 계속 발전하고 그것들의 결과로서 당이 만들어진다고 보는데 '그게 없구나' 라고 깨달았던 것 같아요.

노동당을 보면서 느끼는 건 지금 시기가 운동의 성과로 당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당도 그 운동 단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예요. 대표적인 운동이 없고 대표적인 운동의 흐름도 없고 대표적인 운동의 공통성도 없고 어떤 합의라는 게 없기 때문에 그런 당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진보정당 운동의 시기가 추수할 시기가 아니라 씨 뿌릴 시기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한편으로는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운동을 끌어왔던 사람들 역시 나이가 들고 은퇴할 시기는 결국 온다는 걸 본 거예요. 죽든가. 사람은 죽으니까요. 최근에 권문석(전 알바연대 대변인)이 죽었던 것도 그런 면에서 마음이 급해지게 만들었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뭘 하는 훈련을 해보자는 게 한 가지 이유였어요.

또 하나는 다른 단체들과 접점을 만들고 이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신(scene)'을 만들어보자는 건데, 사실은 그게 당 운동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죠.

BIYN : 결국에는 다시 당을 지향하고 있는 거네요.

김성일 : 그렇죠. 운동의 최종 국면은 당이겠죠. 뭐 한 500년쯤 되는 기간을 두고 생각한다면 문화운동이 더 나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100년을 두고 생각한다면 당이겠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는 거고 당이라는 것은 결국 정권을 쥐기 위한 조직체니까. 그리고 -제가 처음에 운동을 당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당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당이라는 게 꼭 내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죠.

당이라는 기반이 만들어지려면 비슷한 흐름을 가진 운동들을 발견해야 하고, 그 사이의 공통성을 찾아야 하는 거고요. 그리고 저는 어쨌든 2,30대 중에 눈에 보이는 활동가들,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성이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해요. 좀 먼 얘기지만 크게 얘기하면 (그게 어떤 기본소득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소득을 위한 당이 필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 청년좌파 자체는 상당히 모호한 구상을 갖고 시작했던 거고, 그 과정에서 오류도 많이 있었어요. '아 이건 안 되는구나'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다른 운동이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 같은 면에서 '아 이 정도 갖고는 이 정도 협력밖에 못 받겠구나'를 아는 거죠.

권문석 씨가 생전에 저한테 했던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기획서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와, 예전에 상근하던 사람들이 계속 상근하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에요. 지금 50대들은 군부독재라든가, 노동 문제라든가 소위 몸에 닿는 위기의 시대에 반항하면서 자기의 할 일들을 찾았던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여전히 위기의 시대고 폭력적인 시대라는 점은 같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고 공기처럼 서서히 조여 오는 시대인 거죠. 그래서 지금 운동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없는 것'에서 뭘 파내본 경험이 없는 거예요. 그냥 남이 주최하는 데모에 나가거나 책을 읽거나 당 청년 위원회로 기생하는 형태 밖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죠. 그러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 그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 때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고민이죠. 뭐든 조그만 사업이라도 해봐야 큰 사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BIYN : 최근 청년좌파에서 이제까지 얘기 나온 것 외에 중점을 두고 있는 다른 아젠다들이 있나요?

김성일 : 올 한 해 중점을 뒀던 것은 최저임금 1만원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기본소득이에요. 이번에 했던 소득 컨퍼런스를 통해서도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이어보자는 고민이 있었던 거고요.

그리고 '탈핵'이 있죠. 후쿠시마부터 히로시마 얘기까지 이어져 왔으니까. 서울,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밀양에 송전탑을 지으면 그곳 주민들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알아요. 사실은 다 알지만 '나라를 위해서' 혹은 '대도시가 죽으면 지방도시도 죽는다'는 논리에 의해서 무감각해지는 거죠. 그게 사실은 전쟁인 거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것. 사람이 서류상의 숫자가 되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이득으로 치환되는 손익논리가 되는 거죠. 한전 지붕에 올라갔던 것도 사실 이게 서울의 싸움이라는 걸 얘기하려 했던 거고, 그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란 질문에서 우리의 선택 문제를 얘기한 거고, 또 가다보면 기본소득까지 연결되는 거고요. (웃음)

반전·평화 쪽으로 보면 병역 거부 건이 있죠. 운동가들이 병역 거부를 하잖아요. 병역 거부를 하고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 지금 가 있는 사람들, 앞으로 갈 사람들을 쭉 이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한 일 중에 하나가 '가짜 사나이'라는 행사예요. 감옥에 갔다 온 사람, 방금 병역을 거부한 사람, 앞으로 병역 거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 셋을 모아서 얘기를 나누는 행사였는데 이런 행사를 좀 넓혀서 일회적인 행사만이 아니라 어떤 (장기적인) 연결점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짜 사나이2'를 하려고 공동주최 제안을 해 둔 상태에요.

"돈이 없어서 문제면 돈을 주면 되잖아!"

BIYN : 김성일 씨는 예전에 당직자로 일하기 전에 굉장히 다양한 일을 했었잖아요. 어쩌다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김성일 :
운동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좀 애매해요. 충격적인 계기가 없기도 했고 어디서부터 운동이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찌 보면 지금 막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전에는 이것저것 실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을 안 하기 시작한 것을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2009년쯤인데 당시 사회당원이었지만 딱히 뭘 조직하거나 어떤 기획을 하지는 않았어요. 회사 다니면서 행사나 집회가 있으면 나가는 수준이었는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백수가 되고 세 달 동안 굶고 있으니까 당직이라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온 거죠.

그전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즉무 기본소득(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이라는 소책자가 나왔었어요. 그게 또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 책을 보고 '아 이런 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 소책자에 기본소득 재원을 설명하는 표가 한 페이지 가득 실렸는데, 대충이긴 했지만 어떤 계산이 나왔다는 것에 감명 받았죠. 그래서 사회당에서 기본소득 세미나를 했었는데, 간부가 아닌 일반 당원 중에 유일하게 열심히 나가고 공부했던 사람이 저였어요. 영어 텍스트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친구들한테 번역해달라고 했죠. 캠페인도 나가고 교육 자료로 소책자도 하나 만들었어요.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은 학술대회 몇 번 같이 준비하고 지방선거 준비하고 그때마다의 사안들에 대응하느라 정신없었고요.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기획하기 시작한 건 2011년쯤이겠죠. 그때 두리반에 들락거리면서 '사람들이 있구나'를 깨달았던 거죠.

BIYN :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김성일 : 부유하는 사람들. (웃음) 뭘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전 그런 사람들을 담아낼 뭔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에 그런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러저러한 것들을 기획하기 시작했죠. 그때는 사회당이라는 틀이 있으니까 당원 가입도 시키고요. '내가 운동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낀 건 그때 처음이었어요. 해보니까 되는구나, 로 계속 갔던 것 같아요. 실험적으로 해본 건데….

BIYN : 성취감도 느꼈나요?

김서일 : 성취감을 느꼈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어요. 어떤 대표적인 위상을 얻지는 못했기 때문에. 다들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주변에 큰 데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자부심 같은 게 있잖아요. '우리가 진짜 운동을 하는 거고 쟤네는 그냥 서클이다'라는 것에 이미 눌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별로 성취감 같은 건 없었어요. 그때 그런 사람들, 특히 노동자만이 세상을 변혁한다고 하던 학생 운동가들, 단체들, 그룹들 지금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현재 남아있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소수죠. 재생산이 안 되는 소수. 그냥 일을 배우러 들어간 수준인거죠. 지금 남은 사람들의 숫자만 가지고 얘기하면 그 세대의 주역은 오히려 부유하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BIYN : 그 '부유하는 사람들'을 어쨌든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건데, 그들에 대해 유난히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김성일 : 그것은 사실… 그들보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웃음)

운동으로 봤을 때는 제 운동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사명감이 없는데, 나이로 봤을 때는 사명감이 생기는 거예요.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내가 그들보다 먼저 뜰 거니까. (웃음) 어쨌든 시대가 이어지려면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거고, 줄 수 있는 건 줘야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운동을 하다보면 계속 부채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유혹한 사람들에 대해서. (웃음) 그런 사람들에게 앞에 길을 놔줘야 하는데 오히려 길을 막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기 때문에… 사실 운동이라는 게 사람하고 만나고 사람하고 얘기하고 사람하고 싸우는 문제라서 계속 부채들이 생기는 거죠. 부채를 막다가 새로운 부채가 생기고. (웃음) 그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계속 하게 되는 게 아닐까.

BIYN : 빚 청산이 안 돼서요?

김성일 : 그렇죠. (웃음)

BIYN : 민주노총에서 나온 기본소득 소책자를 처음 봤을 때, 표 외에도 어떤 부분에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나요?

김성일 : 명쾌함이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명쾌함. 그리고 그에 비해 어쨌든 어려운 세상의 구조. (웃음) 이게 어떤 전환을 가져올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기본소득이라는 소재를 통해 투영되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문제면, 돈을 주면 되잖아!"라는 말을 할 수가 있구나. 이게 멍청한 소리가 아니구나. 그런데 한국 사회의 대중들은 "그런 게 될 리가 있냐. 이 멍청한 놈아"라고 나오죠. 그 괴리가 주는 영감이 있었죠. 이게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BIYN : 이때까지 운동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김성일 : 빈곤이죠. (웃음) 운동을 안 한다고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는데, 지금은 벌이가 따로 없으니까. 벌이는 없고 돈이 나가는 데는 있고 그러니까 남의 돈 뜯어먹으면서 사는 거죠. 월말이 되면 이제 정규직과 자영업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BIYN : 그럼에도 계속 운동을 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성일 : 습관 아닐까요? 삶의 방식이 어느 순간 한 번 확 틀어지면 이것도 경로의존성이 있는 거라서 벗어나기 쉽지 않잖아요. 관계들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서 다른 걸 하는 게 정말 옳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되고요. 관성 때문이랄까. (웃음)

BIYN : 활동가로서 어떤 야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김성일 : 집권이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이야기하는 가치가 있잖아요. 그것이 하나의 단단한 공통성이 되어 있는 정당을 통해서 집권을 도모하는 것이겠죠.

BIYN : 동료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김성일 : 10년 후에 만납시다 (웃음)

BIYN : 왜 하필 10년 후 인가요?

김성일 : 활동하는 사람들이 각자 좀 발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재생산 되고 운동의 흐름을 만들기까지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2,30대가 30,40대가 됐을 때 운동의 주역들이 돼있겠죠. 지금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등장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인터뷰 전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는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 및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인 청'소'년(0세~30대)이 먼저 그리고 같이 기본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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