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 걸리면 집 파는 한국, 독일은?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사회복지 ③
큰 병 걸리면 집 파는 한국, 독일은?
의료보험비 20만 원에 놀란 사연

독일 유학 초기, 어학 시험을 통과하여 정식으로 대학생이 된 다음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유학 생활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언제 아플지 모르며, 보험 없이 병원에 갈 경우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독일인들은 물론 유학생 등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도 가급적 보험을 들도록 권장하였다. 실제로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외국인 관청을 방문하면, 반드시 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체크해야 했다.

독일의 의료보험은 크게 공보험(법적 의료보험)과 사보험(사적 의료보험)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보험은 비스마르크 시대인 1883년 처음 도입되었으며, 이러한 보험회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00개를 훌쩍 넘었다. 이후 합병 등을 통해 줄어들어 지난해 기준 약 130여 개가 존재한다. 사보험에도 수십 곳의 보험 회사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2012년 기준 약 900만 명이 가입되어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1%에 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보험을 이용하는 데 반해, 이러한 공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공무원,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또는 고소득자들은 사보험을 이용한다.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의료보험 미가입자 수는 2003년 약 19만 명,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2005년 30만, 2007년 40만 명으로 증가했다가, 2011년에는 다시 약 1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한 것으로, 의료보험 미가입자수가 거의 5000만 명(전체 국민의 약 15%)에 달한다는 미국과는 아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러 보험사를 찾아갔으나 30세가 넘었다고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TK, AOK, BKK, IKK 등 공보험 회사들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 유학 초기 보험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이런 경우 사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이는 가족보험이 안되어 개인별로 따로 들어야 하는 등 보험료가 훨씬 더 비싸진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 공보험사들을 계속 더 찾아다닌 결과, GEK라는 곳에서 운 좋게 받아주었다. 그런데 매달 보험료가 만만치 않았다. 30세 미만의 경우에는 보험료가 40~50유로(약 5만8000원~7만3000원) 정도라 부담이 크지 않지만, 30세가 넘어 처음 가입할 경우에는 금액이 많이 비싸졌다. 

처음에는 110유로(약 16만 원) 정도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인상되어 나중에는 150유로(약 22만 원)에 달해 우리 부부의 한 달 식비와 비슷하였다. 가끔 우리가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을 수 있다면 훨씬 더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집사람과 푸념을 하곤 하였다. 한번은 보험사에 우리의 형편을 설명하고 보험료를 좀 낮추어 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미 가장 낮은 요금표를 적용받고 있으니 군소리 말라는 답장을 받았다. 

여러 곳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즉 사회 최하층 대우를 받는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료의 부담에서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에 따라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었다. 당시 자신의 집에서 부부 운전 교습소를 운영한다던 한 독일 친구의 부모는 한 달에 60만 원을 넘게 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독일에서 아파보니…'보험료 낼만해'

이렇게 많은 보험료를 내는 대신에 아파서 병원에 갈 경우, 아무리 큰 병일지라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치과도 치료를 받는 것은 비용이 전혀 안 들었고,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치아를 교정하는 것도 무료였다. 가끔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의 친절함이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 사생활을 존중하는 치료실 등 여러 가지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기도 하고, 또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몇 가지 인상적인 것은, 의사가 환자를 맞이할 때의 모습이다. 어떤 의사든지 반드시 일어서 문으로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어서 자신을 소개하였다. 또 환자의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호되었다. 진료 과목에 상관없이 상담실이나 진료실에 들어가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다. 게다가 여간해서는 함부로 항생제를 처방해 주지 않았다. 최소한 환자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집사람은 두 차례에 걸쳐 독일의 응급 의료 체계를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 한 번은 독일 북부에 위치한 킬(Kiel)이라는 도시에서, 또 한 번은 쾰른의 기숙사에 살 때였다. 모두 저녁 식사 후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배가 아주 심하게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였다. 다른 일 같으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몸이 아픈 것이라 상황이 긴박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바로 응급 전화를 했다. 

그러면 정말 순식간에 의사가 구급차를 타고 찾아왔다.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환자의 주요 사항들을 체크한 후 병원으로 가자고 하였고, 집사람의 통증은 매번 구급차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잦아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일단 입원을 시키고 하루 이틀 정도 경과를 보면서 종합 검사를 하였고,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퇴원을 허락하였다. 물론 입원비나 구급차 비용 등과 관련하여 돈을 낸 적은 없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돈이 들까봐 참아야 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집사람이 그렇게 병원에 실려 가서 입원을 하면, 나는 그 곁에 머물지 못하고 매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병원에 같이 있겠다고 하면, 간호사들은 그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병실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환자들만 남아있었다. 베를린에서는 내가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사보험을 들고 있어서 그랬는지 1인실을 주었다. 공간도 넓고, 화장실과 욕실이 딸려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면회만 허용되었을 뿐, 집사람도 저녁시간에는 반드시 귀가해야 하였다.

이처럼 병원에 입원할 경우, 면회는 되지만 간병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간호사의 몫이었다. 이점이 우리와 달라서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업무이지, 환자의 가족들이 할 일은 아니다. 가족이 아픔으로 인해서 다른 가족이 자기 일을 중단하거나 또는 환자를 돌보다 아프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우리 병원에서도 가족 대신 간병인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왜 간호사와 간병인을 따로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의료보험료, 소득에 비례해야

그러고 보니 나도 쾰른 기숙사에 살 때, 한밤중에 구급차를 부른 적이 한 번 있었다. 이 사건은 집사람이 가끔 나를 놀릴 때마다 끄집어내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 당시 집사람과 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 날은 내가 착각하여 실수로 집사람의 약을 내 것으로 알고 잘못 먹은 경우였다. 약을 삼킨 다음에야 바뀐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열이 심해지며 머리가 아파왔다. 

처음에는 그냥 참고 넘어갈까 했는데, 평소에 그런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집사람이 응급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역시 의사와 구급차가 금방 도착하였다. 의사가 내 상태를 살펴보고 약병들을 확인하더니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그냥 갔다. 그 의사가 가면서 집사람에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는데, "그거 2알 먹어서는 죽지 않는다!"고. 

쾰른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중에 베를린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는 체류 목적이 바뀌면서 새로이 의료보험을 들게 되었다. 이렇게 일을 할 경우에는 학생 때와는 달리 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한다. 인터(Inter)라는 사보험에 가입했는데, 집사람과 함께 한 달에 361유로(약 50만 원)를 냈다. 이 경우 대사관에서도 똑같이 절반을 부담하기 때문에 보험사에 내는 것은 총 722유로(약 100만 원)나 되었다. 사보험을 들어서인지 베를린의 병원들을 찾았을 때는 그 대우가 좀 더 나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가난한 대학생은 물론, 소득이 올라감에 따라 더 많은 액수를 의료보험료로 납부한다. 일정 소득 이상의 경우에는 공보험 대신에 더 비싼 사보험을 들도록 한다. 그렇게 비싼 보험료를 내고도 전혀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소득에 비례하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한 덕분에, 그 사회에 사는 누구나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아픈 것을 참아야 한다든가, 큰 병에 걸리면 목돈이 들어 온 가족이 삶이 망가지는 경우는 없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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