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몸…당신은 자유로운가
[언론네트워크]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 인터뷰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몸…당신은 자유로운가
죽음의 무게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것이련만, 여기 조금 더 외로운 죽음을 맞은 이가 있다. 불이 난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4월 17일 결국 사망한 고(故) 송국현 씨. 보행과 거동이 불편하고 언어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던 그의 죽음. 눈앞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면서도 차마 '살려 달라'는 구조 요청도, 스스로 불길을 피할 수도 없었던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4월 19일 그를 추모하고 보건복지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추모문화제가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다. '장애등급제가 만들어낸 살인'이라는 비판은 사실 낯설지 않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로 인한 장애인의 죽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그것을 막지 못한 아픔이 더욱 크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인권 활동의 최전방에 서 있는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4월 19일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있는 노들야학 교실에서 진행됐다.

※ 박경석은? 

1960년 대구 출생. 1983년 해병대 제대 후 행글라이딩 대회에 참가했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 장애인이 됐다. 사고 후 5년을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그는, 고향 대구로 내려가 죽을 계획을 세운다. 대구까지 갈 차비를 벌기 위해 성경을 백독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매형의 제안에 성경 읽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신기하게 조금씩 무감각에서 벗어나 마침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이후 장애인복지관과 숭실대 사회사업학과를 거쳐 1994년 노들야학 교사를 시작하며 장애인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장애인 인권 운동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는 현재 노들야학 교장을 비롯해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옥천신문



■ 장애인 인권 운동가 박경석에 대해 '가장 왼쪽에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 일본에 '우리의 몸 자체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며 투쟁했던 장애인 단체가 있다. 저 역시, 단순히 행동이 급진적이고 데모를 많이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면적 부정 없이는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 경쟁 체제 내에서 몇 명은 이 사회의 기준으로 성공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 장애인은 그런 기준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생각 때문에 왼쪽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얼마 전 서울구치소에 다녀왔다. 벌금형에 대해 스스로 감옥행을 택한 것인데 이 역시 일종의 투쟁 방식인가.

= 투쟁 방법일 수도 있고 저항일 수도 있다. 벌금 때문에 구치소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에도 철로를 점거해 500만 원 벌금형을 받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는 시설이 더 열악했으니까, 당시 구치소장이 날 보고 막막했던지 종교 조직을 통해 대납을 해버려 며칠 살다 나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 들어간 것은 고(故) 김주영 씨 건 때문이었다(2012년 10월 26일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김주영 활동가의 장례식 도중 광화문에서 진행한 노제가 불법이라며 검찰은 장애인 활동가 18명에게 1500여만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편집자>). 벌금으로 인권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당한 것이다. 마침 이번에는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의 일당 5억 원짜리 노역도 있었고, 나 역시 벌금으로 인해 수배가 떨어진 상황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해 들어가게 됐다. 

저항의 의미도 있었고, 함께 투쟁했던 많은 장애인들의 벌금도 폭로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것이 투쟁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과 더불어 5억 원짜리 노역과 5만 원짜리 노역, 살면 살수록 천문학적으로 벌어지는 이 야만적인 사회에 대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너무나 쉽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투쟁, 운동이라고 했을 때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많다. 

= 스스로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의 투쟁이 이권의 문제가 아니고 함께 살기 위한 세상을 위한 것인데 이것을 방식의 문제만 가지고 바라보고 몰아세우는 부분들은 결국 바뀔 거라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에 이동권 문제로 지하철을 점거하고 투쟁했을 때, 당시 노인들이 '빨갱이 같은 장애인들'이라며 우리 머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갔던 적도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투쟁으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니 노인들도 편안하게 다니게 되지 않았나.
   
■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실제로 그는 2004년 한 정당의 비례대표 제안을 받기도 했다).

= 모든 삶이 곧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 국회의원 같은 뭐 그런 방식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저와 같은 방식들이 확장되고 그래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게 더 좋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권리를 국회의원 몇 명, 정부 권력자들 몇 명에게 위임하는 방식은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는 선호할지 몰라도, 그것은 그들의 방식이지 나의 방식과는 다르다.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직해내는 것이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다. 

■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문제의 저변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장애등급제라는 발상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여성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주기 위해 여성을 1급에서 6급까지 등급을 나누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복지 서비스를 주기 위해 아주 기계적으로 급수를 붙인다. 그런데 그 급수가 과연 그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에게 적절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1급 장애인 중에 대학을 나와 교수로 살아가는 장애인이 있을 것이고 6급 장애인 중에 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환경이 다 다른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나누는 자체가 문제다. 관료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어떻게 쉽게 적용할 것인지 탁상행정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장애등급제라는 반인권적 제도가 생긴 것이다. 궁극적으로 장애등급제는 폐지돼야 한다.

부양의무제는 왜 생겼나.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가족 공동체라는 정서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이 부양의무제로 인해 가족 공동체가 파괴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현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서울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도 비슷한 이유고,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런 부끄럽고 야만적인 수치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들도 이 문제에 많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이걸 두고 '이열종대 선착순 복지'라고 한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이런 선착순 복지를 만드는 그런 거대한 재앙들을 폐지해야 하는 게 지금의 과제다. 

■ 이제는 장애인의 자립을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에 있는 게 더 좋지 않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중증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귀찮을 수 있다. 시설에 있는 게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도, 그 가족들도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왜 자립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면 감옥도 좋지 않냐. 안전하고 삼시 세끼 밥 다 먹여주고. 이런 갇힌 공간을 감옥으로 비교하니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단순히 갇힌다는 게 아니다. 자기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의 권력 체계 내에서 통제 받고 주입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전을 이유로 시설에 있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왜 시설에서 사느냐'고 묻는다면,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그런 환경을 만들려면 돈이 들고 귀찮으니 만들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러니까 시설이 안전하고 그것이 복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허구적인 논리다. 

ⓒ옥천신문

■ 얼마 전 돌아가신 고(故) 송국현 씨를 비롯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 수없이 많은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 투쟁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을 607일째(4월 20일 기준) 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것에 대해 알고 있겠나. 많은 사람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포기하거나 상처받진 않는다. 어차피 알든 모르든 투쟁하는 사람은 계속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 고(故) 김주영 열사나 송국현 씨 등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사고들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다.

= 너무 후회된다. 더 열심히 투쟁하기로 결의를 하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미뤄왔던 게 안타깝다. 그렇지 않았으면,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많다. 특히 김주영이나 송국현은 우리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라서 '그 문제(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등) 때문에 함께 투쟁했는데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구나' 하는 그런 비참함은 많은 후회를 만들어 낸다.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다는 것이 비참하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더 열심히 싸웠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건데. 

■ 600일이 넘은 광화문 농성, 계속 이어갈 것인가.

= 장애등급제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 한다. 사람들이 많이 힘들겠다고 하는데 별로 안 힘들다. 자기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돈만 바라보고 고통스러운 일을 하는 것보다는 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은 비록 누가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는 국가 예산의 1조, 2조와 맞먹는 투쟁이다. 일해서 그만큼 벌 수 있나. 못 번다. 게다가 그렇게 생긴 가치를 나 혼자 가지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것인데 이것만큼 더 가치 있는 투쟁이 어디 있겠나.

■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점수를 준다면.

= 어떤 사람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이야기한다.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우리가 여성 인권을 이야기할 때 조선시대와 비교해서 이야기하나. '지하철을 탈 수도 없었는데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지고, 저상버스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참 세상이 좋아졌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그래서 점수가 안 나온다는 게 제 답이다. 

적어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이 0에서 시작된다고 하면 장애인은 아직도 마이너스에 있다. 예전에는 마이너스 100 정도에 살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좀 열심히 투쟁해서 마이너스 80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0 정도는 돼야 이제부터 점수 좀 매기자 하지만, 성적에는 0 이하는 없지 않은가.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 무슨 놈의 장애인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나. 복지의 점수, 인권의 점수를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다. 이렇게 얘기하면 고위 공무원들은 많이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웃음).

■ 20년 가까이 활동하는 그 원동력은 어디서 얻는가.

=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이렇게 활동하게 됐고 그들과 한 약속 때문이다(박경석 교장은 1990년대 장애인 운동가 박흥수, 정태수를 만나며 본격적인 장애인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편집자>). 그 약속이야 언제든지 깨버리면 되는데, 그때 느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 지금 함께 남아 있는 분들이 굉장히 소중하고 그 소중함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내 힘이 1이면 그 1을 가지고 하는 것이고 10이면 그 10을 가지고 하고 있을 뿐이다.

■ 세월이 지나면서 그 약속이 희석됐다고 느껴본 적은 없나

= 그때의 추상적인 약속이 싸울수록,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구체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때야 술 한잔 먹고 우리 열심히 투쟁해보자 했던 추상적인 언어들이 지금은 중증 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만들어 가면서 힘을 받는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지하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를 만들어 내는 그런 것들.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기본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장애인의 운명이라고 했던 이 사회에 똥침을 날리는 그 기쁨이 무척 크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옥천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우리 야학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신이 장애인 문제에 대해 단순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필요 없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같은 문제라면 함께 싸우자.' 저는 옥천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지역 장애인들도 이 인터뷰를 보게 될 테고 비장애인들도 보게 될 텐데 이 문제가 단순하게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 역시 비장애인이었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것은 내 가족의 문제이기도 하고,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다.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단순하게 도움 한 번 주고, 시설에 가서 빨래해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바로 당신이 원하는 세상, 함께 살기 위한 세상이 꿈이라면, 우리도 그런 꿈을 꾸고 있기에 함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옥천신문=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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