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민주당 실패, 한국 야당의 미래 되지 않으려면…
[복지국가SOCIETY] 복지 버리고 反여당 전략 고수한 일본 민주당 실패의 교훈
日 민주당 실패, 한국 야당의 미래 되지 않으려면…
2014년 10월 현재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정당지지율이 3%대에 불과해 자민당 아베 정권의 독주에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5년 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다. 당시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당 이후 처음으로 2009년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새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자민당의 주요 정책이던 토목공사를 동결하는 대신, 공립 고교 무상 수업료 실시, 어린이 수당 실시, 고속도로 무료화 등 서민을 우선시하겠다는 정책을 천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전후 지속되어온 자민당의 토목공사와 이익단체를 통한 이익배분의 정치가 사람 중심의 복지정치로 변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실패한 이유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민주당은 소속 의원의 이탈로 더 이상 중의원의 과반수를 유지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3년 만에 다시 치러진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자민당에게 대패했고, 정권을 자민당에 넘겨주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정권을 내놓은 이후에도 이렇다 할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반면에 중의원과 참의원의 과반수를 획득한 자민당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인정, 소비세 인상,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 논쟁적인 정책들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정권의 실패는 일본정치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전후 일본 정치의 대전환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민주당 정권은 왜 그토록 참담하게 실패했는가? 물론 가깝게 보면, 민주당 정권의 실패는 전략적 판단 착오에 기인한다. 민주당의 초대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미국과의 사전 합의를 뒤집고, 오키나와현 이외 지역으로의 기지 이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토야마 유키오는 사임하게 된다. 또한 민주당 정권의 제2대 총리인 간 나오토는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한다며 난데없이 간접세 인상을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패하고, 민주당의 내부 분열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더욱이 민주당 정권의 제3대 총리인 노다 요시히코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를 표명하고, 이를 공약으로 내걸 것을 천명했으나 이 또한 소속 의원들의 반발을 야기했고, 집단 탈당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내각 불신임 가결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했다.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패했고, 자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민주당 내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세 명의 총리가 모두 전략적 판단착오와 실기를 했다. 이러한 오류가 세 번이나 이어졌다면, 이는 리더의 일시적인 판단착오가 아니라 민주당의 구조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민주당 정권은 실패했다. 

▲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12월 16일 총선 현황판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반(反) 자민당 연합의 한계를 드러낸 민주당 정권

1996년 창당 당시 민주당에는 사민당 출신 의원들이 많았지만 사민당 출신이 당내 주도권을 잡지는 못했다. 게다가 1998년에는 민정당 소속 의원들을 흡수해서 제2창당을 하지만, 이로 인해 당의 이념이 모호해졌다. 민주당은 '중도좌파'를, 민정당은 '보수중도'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었기에 두 당의 합당은 출발부터 위험한 동거였다.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합당 때 만들어진 민주당의 강령 중 '우리들의 입장'이다. 여기에는 현실 정당의 이념으로 존재하지 않는 양 극단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인식이 다음과 같이 들어 있다. 

"시장만능주의와 복지지상주의의 대립 개념을 극복하고 자립한 개인이 공생하는 사회를 목표로 해서, 정부의 역할을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한정하는 '민주중도'의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1998년 민주당 강령)

이렇게 미사여구에 불과한 강령은 다른 세력들을 규합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민주당은 자민당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공유한 정당이 아니라, 오로지 '반 자민당' 정당으로 출발했고, 그렇게 성장해왔다. 초기의 민주당은 자민당의 오부치·모리 정권이 행한 공공정책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해왔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이 강력하게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을 추진하자 민주당은 입장을 바꿔 오히려 고이즈미 개혁을 비판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민주당은 양극화 해소 정책을 강화했다.
 
물론 민주당이 '고교 무상 수업료'와 '어린이 수당' 실시 등의 보편주의 사회정책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순한 선거 전략이었을 뿐이다.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이는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자 했던 사회경제 전략은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경제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에 당내의 추진력이 없었고, 오로지 메니페스토 고수파와 반대파의 지리멸렬한 논쟁만 이어졌다. 게다가 민주당은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복안으로 정권 초기의 이념에 반하는 간접세 인상과 TPP교섭 참가를 충분한 당내 협의도 없이 내세우고 말았다. 민주당의 이런 갈지자 행보와 연이은 추락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지 못한 정당의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겠다.

▲ 일본 민주당은 반 자민당 정당으로 성장하다가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론'이 등장한다. 사진은 2012년 4.11 총선 당시 서울 관악구에 걸린 현수막. ⓒ프레시안(최형락)


1970년대 복지국가 운동의 성과와 자민당의 반격

민주당의 반 자민당 전략 이전에 복지국가 건설을 내건 운동이 일본에도 존재했었다. 1960년대 말부터 혁신지방자치단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자민당 정권의 생산제일주의와 개발정책에 반해 복지, 의료, 교육, 환경, 평화 정책을 중시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났다. 그 중심에는 동경도가 있었다. 사회당과 노동조합 상부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는 동경교육대학 미노베 료키치 교수를 동경도지사 후보로 추대하고 공산당도 미노베 지지를 결정했다. 선거 직전에는 사회당과 공산당이 물가대책, 교육문화정책, 지역격차 해소 및 사회보장 등에 관해 전례 없던 정책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총평은 우파 노동운동의 강화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1960년대 말부터 사회보장제도 개선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노베 후보가 1967년 지방선거에 당선해 임기 4년의 3기에 걸쳐 동경도를 지휘했다. 그리고 미노베 동경도지사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밝은 혁신도정을 만드는 모임'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오사카, 나고야, 교토, 카나가와 등에서도 혁신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이 탄생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자민당 정권은 1973년에 '복지원년'을 선언하고 사회보장정책을 확대해 나갔다. 1974년 사회보장 관계 예산은 전년도 대비 36.7% 증가하여 사회보장 관계 예산이 공공사업 관계 예산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로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자민당은 이내 복지 재검토에 착수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재정위기를 복지 확대 때문이라고 공격하면서 복지 축소를 추진했다. 경제위기 속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악화도 심각해지자, 자민당 정권은 혁신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재정 악화를 이유로 압박을 가했다. 특히 자민당 정권은 동경도의 지방채 발행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경도에 압력을 가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과세 주권이 인정되었지만,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민당 정권의 압박 속에 혁신지방자치단체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당 내 역학관계의 변화로 사회당과 공산당의 협력관계는 깨졌고, 이후 두 당은 회복 불가능한 앙숙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1975년에 공적 복지를 옹호해왔던 총평 주도의 총파업이 자민당 정권과 경영자 측의 탄압으로 실패로 끝나면서 총평은 쇠퇴하고, 기업 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우파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혁신지방자치단체의 쇠퇴, 야당과 노동운동의 분열로 자민당은 더욱 더 보수 개혁을 가속화했다. 1982년 자민당 정권은 "일본형 복지사회" 구상을 발표하며 공적 복지보다는 가족관계와 기업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개혁을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일본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관철시킨다. 민영화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 의도대로 일본국유철도 등 좌파 노동조합의 핵심조직들이 와해되었다. 이후 우파 노동조합으로 재편되면서 1989년에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결성되었다. 

이렇게 조직적인 자민당의 반격으로 사회권으로서의 복지를 내세우던 복지국가 세력은 철저히 쇠퇴해갔다. 그리고 보수적 자유주의 노선인 일본의 기업주의와 가족 내 성역할 분업은 더욱 더 고착화되어 갔다. 이에 사회당은 현실주의 노선을 택하며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을 도모하거나 사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지만, 이미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할 에너지는 더 이상 당내에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반(反) 자민당 전략을 넘어선 대안적 이념정당과 사회운동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대 복지국가 운동의 융성과 자민당 정권의 반격, 그리고 좌파 노동운동과 사회당의 몰락이 민주당으로 하여금 반 자민당 연합을 도모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이 자신의 이념과 정책 대안을 내세울 에너지가 없을 때 손쉽게 도모할 수 있는 연합은 강력한 적을 상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적에 대항한 연합이 운 좋게 성공해서 일시적으로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정권의 운영은 결코 만만치 않게 된다. 오히려 민주당의 갈지자 행보와 정권 운영의 실패는 일말의 기대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무당파 유권자들마저 반 민주당 세력으로 만들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정당만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은 자신만의 이념과 정책을 바로 세우고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하는 건전한 사회세력 또한 필수불가결하다. 1970년대 이후 자민당에 대항하는 정당과 사회세력이 약화되어온 오늘의 일본 현실에서 민주당의 재건은 결코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시안적 시각에 따른 반 자민당 전략을 넘어서는 대안적 이념 추구 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이 서로 유익한 작용을 하는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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