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고개 숙였지만…"반쪽짜리 사과"
[현장] 인권헌장 재추진 약속 없어…성소수자 단체, 농성 유지키로
2014.12.10 23:02:06
박원순, 고개 숙였지만…"반쪽짜리 사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인권헌장 무산에 반발하며 서울시청에서 점거 농성 중인 성소수자단체 대표자들과 만나 일부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성소수자단체 측은 인권헌장에 대한 입장이 없었다는 이유로 농성을 유지하기로 해, 서울시와 성소수자 단체 간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10일 오후 자신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논의 과정에서의 불미스런 일들에 대해서 제 책임을 통감한다"며 "시민 여러분들과 시민위원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자신의 집무실에서 열린 농성단 대표 6인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이같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박원순 시장의 '사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농성단 대표. ⓒ프레시안(서어리)


박 시장은 그러나 정작 시민위원회와 농성단이 요구하는 인권헌장 재추진 방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인권헌장이 무산된 데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협약이자 약속이니 만큼 서로간의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선택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묵묵히 지고 가겠다"고 했다.

농성단 측은 박 시장의 입장 표명에 대해 '반쪽짜리 사과'라고 비판하며, 서울시청 1층에서 진행 중인 점거 농성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농성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박 시장이 한기총 등 보수단체에서 했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가 없었다는 점, △인권헌장에 대한 입장과 추후 계획이 없었다는 점, △지방정부라는 공적기관으로서 혐오세력에 대한 입장과 재발방지 계획이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사회 전체의 인권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오늘 우리의 농성은 유지하기로 한다"며 "이후 계획은 추후 발표한다"고 밝혔다.

농성단 측의 이같은 입장은 이날 오후 대표단이 박 시장과 면담한 뒤 농성자 전원의 분임 토론 과정을 거쳐 결정한 사항이다.

토론에서도 농성단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에 대한,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모르겠다", "진정성이 부족하다", "당장 농성을 풀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인권헌장 선포까지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 개인이 아닌 서울시 자체로 공식 입장을 내야 한다" 등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인권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 역시 박 시장의 입장 표명에 대해 "깊은 사과와 유감의 뜻을 전하긴 했지만, 알맹이가 빠진 불충분한 내용"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렸다. 홍 교수는 인권헌장 의결을 인정하고 선포할 것, 의사진행 방해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의 인권위원회 권고 내용을 언급하며 "시장이 직접 나섰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농성 참가자들은 10일 농성단 대표단이 농성을 유지하기로 발표한 데 대해 박수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프레시안(서어리)


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발언 전문

최근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시민여러분들과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아울러 서울시가 시민위원회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점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좀 더 신중하고, 책임 있게 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고,
논의과정에서의
불미스런 일들에 대해서도
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 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힘들고 모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경력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과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갈등의 조정자로서 사명감 사이에서
밤잠을 설쳤고, 한 동안 말을 잃고 지냈습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법률과는 달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협약이자 약속이니 만큼
서로간의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하는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시민위원님들이 보여주신
헌신적인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혹하게 존재하는 현실의 갈등 앞에서
더 많은 시간과
더 깊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택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묵묵히 지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있는 자리에서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가겠습니다.
모든 차별행위에 맞서
'차별 없는 서울'을 만들겠다는 '처음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헌법정신을 지켜가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상호신뢰의 원칙을 가지고 논의와 소통의 장을 계속 열고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가려고 합니다.
보내주신 관심과 걱정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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