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귀순용사' 때려잡던 '대성공사', 사라지지 않았다
탈북자 증언 "총 든 군인 감시에 지하 독방 생활…인권 사각지대"
[단독]'귀순용사' 때려잡던 '대성공사', 사라지지 않았다
탈북자 신문과정에서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던 '대성공사'가 지난해 10월까지 운영된 사실이 확인됐다.  

'대성공사'는 2008년 탈북자 신문 기능을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이관한 뒤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한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또 '대성공사'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의혹 역시 여전하다.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국정원 자료 역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한다.   

탈북자 신문 과정에서 인권 유린,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 '귀순용사'로 불리기도 했던 '탈북자'들은 남한에 들어온 뒤 신문 과정에서 종종 인권 유린을 겪곤 했다. 군사정부 시절만이 아니다. 민주정부 시절에도 인권 유린 사례가 있었다. 1954년, 북한군 포로 및 귀순자 신문 목적으로 설립된 '대성공사'가 그 현장이었다. (관련 기사 : "'자유 대한'이 나를 고문했다"'대북 삐라' 이민복 "나도 국정원 고문 피해자") 

중앙합동신문센터가 문을 연 2008년 이후에도, 탈북자 신문과정에서 인권유린은 여전했다.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유가려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가려 씨는 2013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의 감금, 폭행, 가혹 행위, 회유를 견디지 못하고 오빠 유우성과 함께 북한의 간첩 활동을 하였다는 허위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가혹 행위 의혹을 풀겠다며,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기자들을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초청해 내부를 공개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서도, '대성공사'는 운영되고 있었다.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조차 알 수 없었던 사실이다. 중앙합동신문센터와 '대성공사'를 모두 경험한 탈북자들은 "대성공사에 비하면 중앙합동신문센터는 '호텔'"이라고 이야기한다. '유가려 사건'의 현장이었던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비해, '대성공사'가 훨씬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대성공사'. ⓒ프레시안(최형락)


대성공사, 운영 중단 알려진 뒤에도 4년 간 비공개 운영

국정원이 현재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탈북자 조사 시설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다. 2008년 개관한 이후 지난해 7월까지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시흥 합신센터)'로 불렸던 곳이다. 남한 입국을 신고한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국정원‧군‧경찰의 지휘 하에 탈북 및 국내 입국 경위, 신분 확인, 대공 용의점 등에 대한 조사를 받는다. 조사관들이나 탈북자들은 시흥 합신센터를 정식 명칭 대신 '양지공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성공사' 역시 위장 명칭으로, 정식 명칭은 '군 정보사령부 중앙신문단'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주한미군이 귀순한 북한군, 포로 등을 신문하기 위해 처음 세웠으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다. 현장에 가보면, 높은 담장과 두꺼운 철문이 설치돼 있다. 입구에는 위장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은 <프레시안>이 지난 19일부터 연속 보도한 탈북자 김관섭 씨, 이민복 씨 등이 고문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국정원은 건물 노후화 문제와 더불어 탈북자 수용 공간 부족 해소를 이유로 시흥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 2008년 시흥 합신센터가 정식 개관하면서, 대성공사는 시흥 합신센터로 기능을 넘기고 역사 속 공간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언론 보도 내용도 그렇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입수한 국정원 문서에 따르면, 대성공사는 여전히 탈북자 조사 시설로 이용되고 있었다.

▲1974년 '귀순'한 김관섭 씨가 지난해 말 대성공사 현장을 찾았다. 김 씨는 이곳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프레시안(최형락)


국정원 "재가동 후 인권 침해 우려로 일시 중단…유지할 필요 있어"

국정원은 해당 문건을 통해 "중앙신문단(대성공사)은 2008년 12월 경기도 시흥 소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보호 업무 개시 직후 운영이 중단되었으나, 국내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급증하여 시흥 소재 보호센터의 수용 능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2010년 1월 재가동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민 수가 다시 감소한 데다, 군 시설 사용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 등으로 인해 2014년 10월 이후 중앙신문단 운영은 일시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2010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받은 탈북자 수는 연간 430명 규모다. 통일부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평균 연간 탈북 및 입국자 수를 계산한 결과는 1895명으로, 탈북자 4.4명 중 한 명이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탈북자 가운데 적잖은 인원이 대성공사를 거쳤음에도, 대외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비밀 운영'된 셈이다.

국정원은 현재는 대성공사 운영을 '일시 정지'한 상태지만, 다시 운영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중앙신문단의 기본 임무는 탈북민 대상 북한 군사정보 수집, 전쟁포로 조사 등인 점을 감안, 조직을 향후 지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간 탈북자에 대한 조사는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문건을 보면, 국정원 측은 스스로 대성공사 수용 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이곳의 인권 상황은 어떠할까. <프레시안>은 지난해 12월, 몇몇 탈북자들을 접촉하며 대성공사 수용 생활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을 얻었다.

"허리에는 권총, 손에는 곤봉24시간 감시"

40대 여성 탈북자 김신형(가명) 씨는 지난 2011년 12월 입국 직후 시흥 합신센터에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다른 탈북자들과 같았다. 그러나 시흥 합신센터에 들어온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점심 배식을 받으러 가던 도중 동기 다섯 명과 함께 국정원 직원에게 불려갔다. 직원은 그들에게 "서울로 간다"고 했다.

"예전에도 서울로 가는 사람이 몇 명 있기에 다들 '간첩인가보다' 했거든요. 그런데 저더러 갑자기 서울로 가라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긴장이 되더라고요. 다들 수군수군하고요."

김 씨는 동기 다섯 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 어딘가로 떨어졌다. 버스가 멈춰 서자 큰 문이 열렸고 큰 울타리가 둘러쳐진 부지 안으로 들어갔다. 울타리 안에 'ㄱ'자 모양으로 4~5층짜리 건물 두 채가 있었다. 부지 바깥엔 큰 도로가 있었고 맞은편에 아파트 단지들이 보였다.

건물 모서리마다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허리춤에는 권총이 있고, 손에는 곤봉을 들고 있었다. 복도엔 창문이 없었다. 방 안에 창문이 있긴 하지만 철 혹은 알루미늄 재질의 가림막이 있어 창밖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지하 식당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아서 군인이 안내하지 않으면 알아서 찾아갈 수 없었다.

▲대성공사 건물의 모든 창문은 막혀 있어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지하 독방에서 조사'묵비권' 안내 없어'아프다' 해도, '참으라'고만"

조사가 시작되자 지하 독방에 갇혔다. 시흥에선 조사실마다 화장실이 있었지만, 여기선 복도 끝 한 군데에만 있었다. 밤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방 안에서 벨을 눌러 밖에 서 있는 남자 군인을 불러야 했다.

조사 전,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묵비권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조사관은 김 씨에게 "간첩이냐"고 물었다. 계속 간첩이냐고 묻자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중 먼저 입국한 탈북자 이름을 대자 그제야 조사가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큰소리 없이 조사가 끝났지만, 다른 방에서는 고성,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주일 뒤 조사가 끝나고 다시 지상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운동은 하루 한 시간씩, 부지 내 운동장에서 했다. 매일 시간대는 달라졌다. 수용자마다 운동하는 시간이 모두 달라 만날 수 없었다. 조사 중에는 한 번도 건물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시흥에서는 아플 때 바로 병원에 보내주는 등 적절한 조처가 있었다. 그러나 대성공사에선 그렇지 않았다. 대성공사로 넘어온 어느 날, 김 씨는 새벽에 배가 너무 아파 벨을 눌렀다. 원래 담낭이 좋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죽을 것처럼 아프다고 얘기했지만, 군인은 '참으라'는 말만 하고 다시 나갔다. 결국 다음해 담낭 절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시흥 센터는 '호텔'이었죠. 대성공사는 사람 사는 데가 아니었어요"

▲대성공사 부지 곳곳에는 CCTV가 설치돼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저는 왜 대성공사에서 조사받았던 걸까요?"

김 씨가 대성공사에 있었던 기간은 40일이었다. 그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전후로 누구도 김 씨가 대성공사에서 조사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한 달 넘게 머물렀던 공간이 '대성공사'라고 불린다는 것도 마지막 날 알았다.

김 씨는 조사 장소를 시흥과 서울 두 곳으로 나누는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국정원이 앞선 문건에서 밝힌 대로라면, 대성공사 수용 대상자는 북한 군사정보를 아는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자여야 한다. 그러나 김 씨는 대성공사에 함께 간 이들 중 젊은 여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했다.

김 씨는 '탈북자 수가 급증하여 시흥 센터 수용 능력이 부족했다'는 국정원 설명에 대해서도 의아해 했다. 애초에 탈북자 수가 증가하는 상황에 대비해 새로 지었기 때문에 시흥 합신센터는 공간이 워낙 넓었고, 또 2011년부터는 탈북자 수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2402명, 2011년 2706명이던 탈북 및 입국자 수는 2012년 1502명, 2013년 1514명, 2014년 1351명으로 급감했다. 적어도 2012년부터는 '수용 능력 부족'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취재진이 지난해 12월 24일 대성공사를 찾아 취재요청을 하자 대문을 지키던 군인이 나와 "국가보안시설"이라며 막아선 모습. 입구에 있는 간판에는 위장 명칭이 적혀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대성공사, 언론 공개하고 인권보호관 배정, 면회소 설치해야"

김 씨를 포함해 '서울에서 조사받았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일관됐다.

△건물 안에서도 총 든 군인이 지키고 서 있었다는 점,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이 막혀 있다는 점,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점,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대성공사에서 따로 조사를 받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점 등이다.

'유우성 사건' 등을 통해 탈북자 시설 내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해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경욱 변호사는 "앞으로도 대성공사를 운영할 계획이 있다면, 시흥 합신센터처럼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유우성 사건, 국정원 '불법 구금' 인정됐다")

국정원은 지난해 유우성 사건을 통해 합신센터 내 가혹 행위 논란이 커지자 의혹을 풀 목적으로 언론사 기자들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합신센터에 초청해 공개한 바 있다.

장 변호사는 "시흥 합신센터도 제한적으로 공개돼 내부 상황을 다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심지어 대성공사는 그동안 운영 사실 자체도 은폐돼 왔기 때문에 수용자들의 인권 실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더군다나 건물 내부에서 총을 든 군인이 있다거나, 과거 고문 행위가 이뤄진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게 했다는 점을 보면 이미 광범위하게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권보호관 배정, 면회소 설치 등 시흥 합신센터와 비슷한 수준의 인권 보호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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