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중동 판타지', 청년들 약올리기?
[기자의 눈] 청년 구직자들이 분노하는 이유
2015.03.25 17:48:23
박근혜 '중동 판타지', 청년들 약올리기?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실업 대책으로 "중동으로 가라"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이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 진지한 발언이라면 '귀를 의심케하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유머라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전제가 되어 있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들에게 공감은커녕 약올리는 것으로 느낄 만한 유머를 대통령이 했다면, '썰렁한 농담'이라고 무마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의 수준을 모욕하는 감싸기가 된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중동 일자리 발언'은 농담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과거 향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열흘 뒤인 지난 19일 고용노동부장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을 최대한 좋게 해석하자면 청년 일자리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드러낸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농담만이 아닌 것이 2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중동이 청년 일자리의 공급처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청년의 일자리는 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에 많이 있다.(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 미스매치는 여기서 해결해야 되지 않는가. 왜냐하면 거기는 (일자리가) 많이 있으니까."


중동에서 잡을 수 있는 실제 일자리는? 


하지만 중동이 청년 일자리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중동 판타지'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비판을 하는 노동정책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일 달러'가 풍부해진 오늘날의 중동이 해외에 발주하는 사업은 고급 기술과 자재를 필요로 하는 '패키지 딜'이며, 일반 청년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라면 건설 등 3D 일자리라는 것이다. 그런 일자리는 넘쳐나는 중동의 청년들의 몫이다.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가 문제라면 지금도 국내에 3D 일자리는 많기 때문에 중동까지 갈 이유가 없다.

지난 2월 대법원으로부터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국내 최초의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은 청년유니온의 정준영 정책국장은 YTN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동 일자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발언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도전정신' 발언, 대학의 무책임에 대해 날선 시각을 보였다.

그는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중동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단기간 가서 일을 한다는 것은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해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여러 프로그램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했다.

현재 정부의 해외일자리 프로그램은 인턴십을 강조한 교육부의 '세계로 프로젝트', 그리고 실제 채용을 목적으로 해외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해주는 고용노동부의 'K-move'라는 두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는 청년들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해외에서 구한 일자리가 실제로 어떤 조건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사후관리는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청년유니온에는 "하루 10시간 씩 접시만 닦다왔다"는 청년들의 해외 취업 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다.

그는 이런 사례에 대해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부터 쉽게 되는 일은 없다. 몇 달은 그릇을 닦고, 룸서비스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가야 한다"면서 '도전정신'을 강조한 것도 비판했다.

그는 "해외로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청년이면 이미 충분히 도전하고 있는 청년인데, 제대로 된 교육은 커녕,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의 상처를 받고 있는데 이걸 참으라고 하면,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장관으로서는 책임을 방기하는 부적절한 언사"라고 말했다.

계약조건과 다른 노동을 하게 된 경우 현지의 노동 관련 부처에 항의하거나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 정준영 정책국장은 청년들이 해외에서도 '열정 페이' 노동을 하게 되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외 인턴 프로그램을 꽉 채워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돌아와야 경력이 인정되는 시스템이다보니까, 청년들이 부당함을 느껴도 문제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턴 제도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교육생이라는 신분이 강조되다보면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져서, 노동법을 회피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아가 그는 대학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인턴 사업 같은 경우 대학들을 통해서 학생들을 파견하는 프로그램인데, 대학들이 성과관리 측면에서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어려움을 호소하더라도 그냥 참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요란하게 홍보됐던 청년들을 위한 해외일자리 창출 사업의 성과는 어떨까? 이명박 정부 시절 '글로벌리더 10만 명 양성 프로젝트'는 총체적 부실로 판정받고, 박근혜 정부의 'K-무브' 등 청년 해외진출 사업의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노조인 '알바노조'의 구교현 위원장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지 노동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검토 없이 무작정 내보내기만 하는 것은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취업률을 확보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결과만 초래한다"며 "정부가 청년 해외취업의 양뿐만 아니라 질과 관련된 정보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중동 일자리' 발언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은 24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찾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표출됐다. 일단의 청년들은 "니가 가라, 중동"이라는 피켓을 들고 항위까지 했다.

김무성 대표와 함께 고시촌을 찾은 김성태 의원은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이라는 점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기름을 끼얹었다. 차도 없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법으로 주차난 해소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과 여당 대표, 노동전문가라는 여당의원의 현실인식 수준이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공식적으로만 11.1%로 15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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