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 사람을 만나는 시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공정여행사 '공정만세'
공정여행, 사람을 만나는 시간

어떤 '곳'에 가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어떤 '삶'을 나누는 여행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에게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면 '인천공항이 제일 좋아요' 하는 분이 많아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는 건데, 여행을 기획하는 사람에겐 슬픈 이야기죠."

공정여행사 '공감만세'에서 여행교육팀장을 맡고 있는 김태형(27) 씨는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여행'을 생각한다. 어느 명소가 너무 멋져 보여, 어떤 풍경이 아름다워 남기는 사진 몇 장으로는 여운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에요.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 그 사람 집에 같이 가서 먹었던 밥 한 끼 같은, 사람과 무언가를 했던 것들이 소중하죠."

세계 8대 불가사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필리핀 이푸가오주의 작은 마을 바타드. 관광객들이 다녀가며 파괴되는 계단식 논은 관광지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KBS <라디오 25시>에서 필리핀 해외통신원을 하며 아시아지역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고두환(32) 대표는 '공정여행'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2009년에 공정여행 동아리를 만들어 뜻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를 기반으로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관광객이 여러분의 논을 밟고 부술 때가 있으니, 올 때마다 일손을 돕겠다. 여기에서 콜라를 마시는 게 이상하다. 차라리 코코넛 주스를 마시겠다. 외부인이 만든 산장보다 당신들의 집에서 지내고 숙박비를 마을에 기부하겠다."

바타드 마을을 답사하며 주민들을 처음 만났을 때, 고두환 대표가 했던 제안이었다. 낯선 제안에 사기꾼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2010년 1월 시작된 공감만세의 첫 여행지였던 필리핀 이푸가오는 공감만세의 대표 여행이 됐다.

올해로 5년 차에 접어든 공감만세는 나라 안팎 30개 지역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800여 명 사람들이 공감만세에서 공정여행을 경험했다. 필리핀 지역에서 겪었던 관광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작이었지만, 우리나라 관광지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관광 수익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특정 상업지역에 이익이 몰리는 한편엔 생활권이 나빠져 피해를 입는 지역 주민들이 있었다. 공감만세가 서울에서 대전으로 사무실을 옮긴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역에서 그런 고민을 하는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 '공정만세' 홈페이지 갈무리.


지역에 깃든 역사, 문화, 사람을 잇다

2012년 시작한 '대전 원도심 공정여행'은 그 실천 가운데 하나이다. 공감만세 사무실이 있는 중앙로는 대전의 원도심. 90년대 초 대전시청이 이사를 하고, 최근 충남도청도 홍성으로 자리를 옮기며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곳이다.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건 땅값이 저렴해진 탓에 문화예술인들이 들어와 지역을 다시 정비하고서부터였다.

"원도심은 건설 같은 방법으로 재생하기 어려워요. 이미 중심축이 이동했기 때문에 개발 논리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없거든요. 대신 그 지역 자체에 남아 있는 것들, 문화유산과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도움이 되죠."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에 따라 구성된 중앙로에는 당시 만들어진 근대문화재가 남아 있다.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인 옛 충남도청은 1932년에, 대전창작센터는 1958년에 지어져 근대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새롭게 단장한 '산호여인숙 게스트하우스'는 1970년대 여인숙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20년째 대흥동 골목을 지키는 칼국수 집도 그대로 대흥동의 문화다. 대흥동 원도심 공정여행은 과거 기억들부터 현재 변화까지, 장소에 깃든 삶의 흔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을 바라보게 한다.

대전뿐만 아니라 서울, 공주, 전주, 제주 지역에서 국내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선 청소년들과 성인 대상으로 나눠 북촌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진행하고, 공주에선 2011년 동화작가 이선희 씨와 청소년들이 '솔바람길'을 함께 걸으며 공주의 자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주에선 올해 5월 청소년들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서 전통의상체험과 달밤산책, 전주지역 사회적기업과 지역 단체를 만나 이야기 듣는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제주도에선 올해 2월 청소년들과 제주도의 원시림, 전통시장,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을 진행했고, 6월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 원도심 공정여행은 장소에 깃든 삶의 흔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을 바라보게 한다.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과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지역 재생에 도움을 준다. ⓒ공정만세


지난해 문화재청과 종로구 후원으로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와 함께 진행했던 '종로 고건축 캠프'는 종로의 궁궐과 한옥을 탐방하며 전통 단청과 전통 공구를 체험하고 소목장과 한옥 장인의 이야기를 함께 엮어낸 프로그램이었다. 이것 역시 원도심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례다. 고두환 대표는 많은 여행이 해외에서 국내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곳에서 평소와 다른 발상,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는 형태의 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 북촌이, 그렇게 해서 사람들한테 사랑받기 시작한 것이죠. 여행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긴 이동거리에 따른 탄소배출인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거죠."

지난해부터 시작한 '원도심, 공간의 재발견 포럼'은 도시 재생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실제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자 기획됐다. 원도심에 관심이 높아지며 들어서는 엄청난 규모의 시설물, 보도블록 교체, 건물 외관 단장, 예술 작품 설치, 벽화 그리기 정책들로 '경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변화엔 공간 안에 주체로 서야 할 지역의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고, 외부의 '소비자'를 의식한 것들만 가득했던 것이다. 대전 지역 단체와 사람들이 모여 협의체를 만들고 대흥동의 문화유산과 이야기, 사람들을 발굴해 묶는 작업을 하며 다른 한편으론 여러 국내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엔 지자체에서도 공정여행에 많은 관심을 보여, 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와 시흥시, 대전 유성구와 대덕구에서 공정여행가 양성과정을 진행했다. 김태형 여행교육팀장은 공정여행이 지역 살리기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역 마을 체계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은 지자체들의 관심이 많아요. 마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어르신이나 주부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지역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할 수도 있고요."

올해 대전시 관광협회 지원으로 진행하는 대전 원도심 공정여행 '대흥동 사람들'은 청소년과 지역 문화예술인이 만나 직업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진로체험학습 열정만남', 근대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주민을 만나고 소통하는 '근대공간의 상상공작소', 원도심 안에서 활동하는 사회혁신조직을 탐방하는 '원도심 사회혁신 로드'의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두환 대표의 목표는 스스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마을이나 조직을 양성하는 것. 지금까지 국내 20여 곳, 아시아 지역 10여 곳 지역에 힘을 보탰다. 앞으로 국내에 1000곳 정도, 아시아 지역에 20곳 정도 거점을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공정여행에 관심 있는 지자체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지역 주민 스스로가 여행을 설계하는 것은 공정여행의 핵심이다. ⓒ공정만세


가장 중요한 것은 '원주민의 행복한 삶'


지난해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한 '공감만세인터네셔널'은 그동안 공감만세에서 운영해 온 공정여행 방식을 체계화하고 지역개발 방법으로서 공정여행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목원대 행정학과 권선필 교수는 공정여행이 우리 사회 구조와 그 속에 맞물려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실천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사회문화 자산들을 주민들이 발굴하고 관광 자원화하는 일은,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개발 체계에서 쌍방향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개발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관광 체제에 대한 이해, 그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은 없는지에 대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여행사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살짝 올려놓는 패키지 여행을 대체하는 새로운 여행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은 유럽처럼, 캠핑카가 대중화되어 가족끼리 다니거나 여행자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다니는 형태로 바뀔 거예요. 여행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 문화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여행을 통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들을 설계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해요."

고두환 대표는 결국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한다.

"관광학에서 이야기하는 관광의 목적은 '원주민의 행복한 삶'이에요. 그 기본을 지켜 관광의 구조를 짤 때, 지역 문화가 손상되지 않아요."


▲ 북촌 공정여행에서 민화부채그리기 체험을 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외국인 유학생들이 무리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공정만세


▲ 청소년들과 함께한 북촌 공정여행. 가까운 지역에서 평소와 다른 발상과 사고를 할 수 있는 형태가 갖춰지면 국내 여행이 활발해질 수 있다. 북촌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례이다. ⓒ공정만세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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