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의 꼼수…"김치 많이 먹어 강하다"
[의료와 사회] 김치·마늘 먹어 전염병 강하다는 '전설'
통치자의 꼼수…"김치 많이 먹어 강하다"
들어가며

언제부턴가 감염병이 돌면 "한국 사람은 김치·마늘을 먹어서 감염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2003년 사스 유행 당시 한국에서 환자발생이 적은 것에 대해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까지 김치·마늘을 거론한 탓에 김치 수출이 급증할 정도였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에도 어김없이 김치와 마늘 얘기가 주요 언론에 등장했으며, 각종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조차 이를 마치 객관적 사실처럼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는 어땠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메르스 감염확산은 메르스 근원지인 중동국가들마저 한국을 여행자제국가로 지정할 정도로 심각했고 한국에서만 대규모 감염이 확산된 사태였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의료 그리고 한국정부의 무능한 방역이 빚은 참사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만 대규모 감염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병원내 감염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번 메르스에 사태에서 '김치와 마늘' 얘기가 언급될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그러나 '메르스가 아니라, 코르스라고 불러야 한다'는 농담까지 있던 이번 사태에도 어김없이 김치와 마늘을 이야기 한 사람들이 있다.

"제가 연일 메르스 현장을 다니다 보니, 저를 보고 피하는 사람도있다. 정말 악수 안하려는사람이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 저는 매일 집에가면 제 손자와 손녀가 집에 와있는데 아무리 안고 뽀뽀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고추장, 김치 많이 먹은 우리 민족들 전부 메르스보다 무서웠던 사스도 극복했다. 여러분 메르스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여러분 힘을 냅시다."

이는 지난 6월 1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 말이다. 물론 김치나 마늘이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치나 마늘이 특정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입증된 바 없다. 더욱이 이번 메르스 감염자들은 대부분 고령자들이었다. 감염자들의 평균연령이 51세였고, 사망자의 평균연령이 76세였다. 김치와 마늘을 김무성 대표보다 적지 않게 먹었을 노인들이 메르스의 주요 희생자들이 됐다. 꼭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그 동안 계속 언급되온 김치·마늘 얘기에 대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주로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김치·마늘 얘기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적 기원과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김치·마늘 발언

한국 사람들이 김치·마늘을 먹어 감염병에 강하다는 '전설 아닌 전설'은 꽤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문헌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록은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

"…원래 전염병 환자의 수효가 인구 전체의 분수로 보아 조선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적은 것도 사실은 사실인데, 이 까닭은 기후와 풍토에도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음식물에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는데 조선 사람이 고추를 많이 먹는 까닭에 전염병에 덜 걸린다는 것은 아직 연구하여 볼 여지가 있지마는 마늘은 확실히 관계가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1924년 2월 8일 <동아일보>에 실린 경성부 가토(加藤賢) 기사의 인터뷰다. 그는 경성부 위생과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조선을 통치한 지 1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조선의 수도인 경성의 위생(지금의 보건에 준하는 개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감염병에 덜 걸리는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황당한 것은 그가 근거로 든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히포크라테스 전서>에나 나올 법한 기후, 풍토, 음식물을 꼽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김치의 주원료인 고추와 마늘이다.

이는 근대의학으로 무장한 일제 위생행정 관료의 발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근거다. 그렇다면 가토가 말한대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감염병에 덜 걸린다는 것은 진짜 사실이었을까? 직접 일제 강점기 감염병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자.

▲ 그림1. 인구 10만명 당 법정전염병 환자 수(각년도 <朝鮮總督府統計年報>(황상익, 근대의료의 풍경, 푸른역사, 2015, p264 참조).


위의 표는 가토가 근거로 삼았을 조선총독부통계연보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 중 감염병에 걸린 사람(맨 위 검은선)이 조선인(맨 아래 회색선)보다 월등히 많다. 가토가 말한대로 "전염병 환자의 수효가 인구 전체의 분수로 보아 조선사람이 일본사람보다 적은 것"이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사실'이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통계를 토대로 보건의료 분야 중 법정전염병 관리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고 그만큼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 정말 고추나 마늘 때문일까? 고추나 마늘 때문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감염병에 걸린 사람이 저 정도 차이가 났다면 전 세계 학계를 뒤흔들고도 남을 일일 것이다.

진짜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래프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적어도 자국인인 일본인에 대한 조사는 믿을만하다고 볼 때, 하얀 선이 나타내고 있는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보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감염병에 훨씬 더 많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조선의 보건의료 상태가 좋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합리적으로 유추해보면, 조선인 중 감염병에 걸린 사람이 이미 근대적 위생국가로 거듭난 일본 본토보다 적다는 것은 애당초 많이 안 된다. 간단히 말해 조선인에 대해서는 아예 감염병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위 그래프는 감염병 전체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르스처럼 유행이 뚜렷한, 철저한 방역조치를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는, 그리고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일제 스스로 규정한 "법정전염병"만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총독부의원장 시가 키요시(志賀 潔)의 발언

"일본은 완전한 종교가 없기에 인간의 약점인 질병을 구제해 줌으로써 통치의 방책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의학의 활용을 "선택"했다는 일본 위생국장 출신의 대만 민정국장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의 말처럼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했다.

3·1운동이라는 철퇴를 맞은 일제는 조선인을 유화시키기 위해 더욱 의학의 힘을 빌려야 했다. 1920년 일제는 시가 키요시를 조선에 파견한다. 시가 키요시는 도쿄제대 출신으로 페스트균을 발견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의 제자였으며, 독일에 유학하여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 606을 발견한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로부터 사사받은 당대 최고의 의학자였다. 특히 그는 이질균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학명에 남긴 세계적인 세균학자기도 했다.(이질균의 학명인 Shigella는 그의 이름인 Shiga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920년부터 1931년까지 10년 넘게 조선에 머물며 조선총독부의원장과 경성의학 전문학교 교장을 거쳐 경성제대 총장까지 역임했다.

▲ 그림2. 1927년 3월 30일 자 <동아일보> 기사. "조선인에 결핵병자가 적은 리유는 마늘을 만히 먹는 까닭"이라고 한 시가 키요시(志賀 潔)의 발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위 그래프에서 확인했듯이 시가도 조선을 감염병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했다. 결국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통계를 변명하기 위해 마늘을 언급한다.

행여 당시에 의학기술로는 뚜렷한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서 조사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설령 그렇다고 쳐도 '마마'라고 불렸던 두창에 대해서 살펴보면 일제가 조선 식민 통치 상황에서 조선민중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위생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너, 지석영이란 이름을 통해 잘 알려져 있듯이 두창의 치료법으로는 이미 1800년대에 인류가 최초로 개발한 백신, 즉 종두법이 있었다. 종두법은 값이 싸고 시술도 어렵지 않았으며 효과는 탁월했다. 다시 말해 두창은 통치 세력이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 그림3. 일본의 두창 환자 수(10만명 당)(内務省衛生局, <法定伝染病統計. 自明治13年至大正12年>, 1937; 厚生省豫防局, <法定傳染病統計 昭和13年>, 1938)


그림에서 보듯이 실제 일본은 1900년 이후 사실상 박멸에 도달했고, 조선보다 먼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대만조차도 일제의 통치가 시작된 이후 얼마가지 않아 거의 박멸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은 해방될 때까지도 두창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 그림4. 조선의 두창 환자 수(10만명 당)(각년도 <朝鮮總督府統計年報>, '그림1'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환자수가 적게 집계되었을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림을 통해 약 5년을 주기로 두창유행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림만으로도 두창이 박멸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림1'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환자수가 적게 집계되었을 것을 감안한다면 약 5년을 주기로 상당한 규모의 두창유행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조선민중의 위생과 전염병에 대한 조치에는 무관심했으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조선민중이 전염병에 강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일제 통치자들이 김치·마늘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가 통치의 기본 중에 기본인 법정전염병조차 관리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실정을 은폐하고자 한 정치적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마치며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다. 그러나 막을 수 있는 감염병을 막지 못하는 국가와 이를 김치·마늘 발언으로 눙치려는 통치자들을 봐야 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국가 국민들보다 마늘·김치를 많이 먹는 한국 사람들이 감염병에 전혀 강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이정도 규모의 자연적 '임상시험'이라면 의학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르스를 통해 당장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때문에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의료관광을 더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김치·마늘 발언만큼이나 앞뒤 안맞는 얘기가 정부부처는 물론 공공병원 수장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있다.

김치·마늘 발언만으로는 궁색했던 일제는 '민도(民度)'와 '문명화'를 언급했다. '민도'가 낮아서 아무리 감염병 예방에 대한 주의를 주어도 따르지 않으며, 결핵과 같은 병은 '문명'이 발달하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곧 감염병에 걸리는 것은 '국민성(민도)'이 낮아서이고, '글로벌 선진국(문명화)'이 되기 위해선 감염병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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