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세월호, 어디로 가나 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2016.01.14 10:40:04
"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순간 총성이 울렸다. 얼굴 옆으로 공포탄이 발사됐다. 갑작스런운 총기 발사에 조사관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이들에게 수갑이 채워졌다. 지난 2004년 3월,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 출신인 A씨 소행이었다.  

당시 박종덕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 등 조사관 2명은 허 일병 사건 관련해서 A씨가 자기 집에 사건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A씨 집을 급습했다. 집에 A씨는 없었고 A씨 아내만 있었다. 조사관들은 곧바로 관련 자료를 가지고 나왔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A씨는 조사관들을 만나 자료를 되돌려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이를 거부했다. 돌려줄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흥분한 A씨는 총을 발사한 뒤, 조사관 손에 수갑을 채웠다. 

협박 뒤에는 읍소도 이어졌다. A씨는 이후 수갑을 풀어준 뒤 30여 분간 조사관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나 죽는단 말이야. 나 죽어 그거면…"이라며 조사관에게 총을 겨누는 한편, 자기 머리에 총을 당기는 시늉도 했다. 결국, 조사관들은 증거자료를 A씨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총기 발사 사건을 두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조사관이 증거를 수집했음에도 총까지 발포하면서 막은 사건"이라며 "그만큼 정부기관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당시 의문사위의 '카운터 파트너'인 시민단체 '올바른 과거 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 초창기 때까지 진행된 의문사위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다. 

의문사위는 검찰, 경찰, 군, 국정원 등 정부기관의 잘못된 점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낸다는 점에서 지금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성격이 유사하다. 특별법에 의한 한시적 조직인 것은 물론, 공무원 조사관이 배치된 것도 흡사하다. 그에게 현재 세월호 특위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물었다. 

ⓒ연합뉴스


"군 의문사 조사관, 군에 들어가지도 못했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과거 정권 하에서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진상규명하고자 만들어졌다 김대중 정부인 2000년 10월 17일 출범해서 노무현 정부인 2004년 6월 30일까지 활동했다. 이후 의문사위에서 미처 규명하지 못한 사안들은 2005년 12월 1일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이어받았다. 정리위는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 활동했다. 

이러한 위원회는 여러 굵직한 일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한 사건이었음을 밝혔다. 그 외에도 군 부재자투표 관련 사망사건 은폐조작 진상규명, 국정원·경찰 등 정보기관의 불법적 수사와 연행·구금에 의한 인권 탄압 진상규명 등이 있다. 

물론, 과거사위 활동이 국가권력 범죄를 규명하는 일이었기에 검찰, 경찰, 국방부, 보안사,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비협조와 노골적인 방해가 끊이지 않았다.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 조사관 총기 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 과거 잘못했던 일들을 대부분 조사했어요. 그게 가능했던 건 노무현 대통령이 있어서였죠. 정권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조사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군 의문사를 조사하던 조사관은 군부대 내에 들어가지도 못했죠. 군에서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방해했죠. 자기네들, 즉 그런 가해 의혹이 있는 관계자들이 부처 내에서 아직 있다면 이를 숨기기 급급합니다. 그러니 조사가 명쾌하게 되기 어려웠죠."

과거사위 내부도 문제였다. 조사관은 공무원과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세월호 특위와 비슷한 구조다. 2005년 구성된 과거사 정리위 인원은 190명으로 이중 파견 공무원이 70명에 달했다. 

"과거사위도 공무원과 민간인이 적절한 비율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장난을 치려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예를 들어 당시만 해도 민간 조사관들은 정부 기록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검색은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 국정원의 경우, 문서가 다 암호화 돼 있죠. 'KAL폭파 사건' 이렇게 안 돼 있어요. 자기들 나름 방식으로 정리해놓죠. 예를 들어 예전 도서관에 가면 책 뒷장에 카드가 꽂혀 있었잖아요. 도서관 사서가 책 정리할 수 있도록. 그런 식으로 모든 문서를 암호화해 놓았죠. 그런 상황에서 민간 조사관이 자료를 찾는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공무원이 협조 안 해주면 안 돼요. 당시 의문사위 민간 조사관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위원회에 들어갔어요. 이를 적응하고 습득하는 데 꽤 시일이 걸렸죠."

"공무원은 민간 조사관을 지원‧보완해주는 역할해야"

그런데도 공무원이 파견되는 이유는 나름대로 있다. 예산 때문이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건비는 정해져 있다.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모두 민간인으로 충당하면,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물론, 예산을 늘리면 해결되지만 정부가 이를 허용할 리 없다. 공무원을 파견하는 이유다. 

예산 문제 이외에도 공무원의 '역할론'도 중요한 이유다. 공무원이 없으면 관련 부처와 협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아무리 민간 조사관이 5급 신분이라도 기존 6급 공무원이 이들 말을 듣지 않는다"며 "공무원 입장에서 이들은 자기네를 괴롭히러 온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해도 번번이 거부당하기 일쑤라는 것. 이에 위원회 파견 공무원이 담당 공무원에게 부탁해 자료를 받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위원회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핵심 일은 민간 조사관을 지원‧보완해주는 일"이라며 "정보교환, 관계부처와의 협업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조직에 잠시 파견 나온 공무원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게 김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공무원들은 자기 조직을 보호해야 해요. 그러니 당연히 한시적인 위원회 일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어요. 협조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돌아가야 하는 기관에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협조하는 식이죠.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은 내주고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감추려는 게 그들 생리였죠. 생각해보세요. 자기가 2년 파견 왔다고 하면 2년 뒤에는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눈치를 안 보겠어요?"

그의 말이 이어졌다. 

"세월호 특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해수부, 행안위 등에서 공무원들이 파견 왔어요. 그들이 특위의 역할과 중요함을 느껴서 열심히 일했고, 그에 따라 성과를 냈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실을 밝혔어요. 하지만 이후 특위가 해산된 뒤, 그 사람이 자기 부처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박수는커녕 '저놈, 동료들 등에 칼 꽂은 놈이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손문상)


"세월호 특위, 어려움 드러내야"

지금은 과거사위 활동 때처럼 진보정권도 아니다. 강력한 보수정권 체제에서 세월호 특위가 제대로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정권의 의지나 방향을 공무원은 금방 체득해요. 서울시 공무원을 보면 알잖아요. 이명박-오세훈-박원순 시장별로 자기네들이 어떻게 말하고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죠. 민간 거버넌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노무현 시절에 과거사위가 관련 부처에 공문을 보내 자료를 요청하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 내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 이러면서 조율했어요. 하지만 이명박 시절에는 협조 공문을 보내면 한 줄 답장이 왔어요. '불가'. 필요하면 정보공개 청구를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어요."  

김 사무국장은 세월호 특위에서 의지를 가지고 조사하려는 민간 조사관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사무국장은 "그들만이 느끼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한 어려움을 드러내고 이를 사회의 힘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프레시안(허환주)

"정기적이든 부정기적이든 공개간담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특위 6개월을 평가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민간 조사관들이 평생 공무원하려고 그 안에 들어간 게 아니에요. 그 안에 있으면서 조사 관련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을 공론화해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력화 문건이 발견됐다. 예산을 삭감했다. 인원을 파견하지 않는다' 식의 단발 폭로가 아니라, 그런 것을 정리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해요."

지금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이상 해결은커녕, 문제의 본질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김 사무국장의 견해였다.  

"그래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논의하죠. 그 논의에 따라 모아진 의견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해요. 문제가 국회에 있다면 국회와 싸우고, 정부에 있다면 정부와 싸워야죠. 특위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사회적 합의'로 푸는 방식을 고민해야 해요. 이는 4.16 연대가 주최할 수도 있고 세월호 유가족 협의회가 주최할 수도 있어요."

김 사무국장은 "책임감 강한 분이 특위 내에서 나와서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엉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첫 단추"라며 "모두 알고 있는 문제를 쉬쉬하면서 내버려 두는 것은 문제를 더욱 키운다"고 지적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역할 수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외부에서의 '특위 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특위 활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시안>은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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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