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도 안 받는 에이즈환자, 책임은 누구?
[기고] 무책임한 정부, 눈물짓는 환자 가족들
어느 병원도 안 받는 에이즈환자, 책임은 누구?
이런 요양병원 입원상담

전화벨이 울린다. 국립중앙의료원이다. 갑자기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고, 가슴은 쿵쾅거린다. 이러다 심장이 터져 내 명에 못 죽을 것 같은 순간, 전화를 받았다. 벌써 5명의 환자가 가기로 했단다. 선착순 8명. 내일이라도 당장 00요양병원에 가본 후 결정하라고 한다. 만일 3명 안에 들지 못하면? 이 추운 겨울에. 내일은 크리스마스인데….

작년 12월 24일,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 중인 에이즈환자 가족에게 또 다시 병원을 옮기라는 재촉전화가 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가족의 목소리너머로 초조함과 절망감이 생생히 전해졌다. 작년 메르스 사태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중앙거점병원'으로 지정되자 갈 병원이 없어 경남 진주로, 충북 청주로 떠밀려갔다가 돌아온 지 6개월도 안 됐다. 나가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이들이다. 일단,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소개시켜준 곳이니 같이 입원상담을 받으러 가자며 안심을 시켰다. 

며칠 후 함께 찾은 00요양병원은 시내에서 버스로 40분가량 거리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 외관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모텔을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보였다. 빈 병실도 꽤 있어 보였다. 하지만 00요양병원 측은 서두르는 국립중앙의료원 때문에 큰 결심을 했다며 선심 쓴다는 태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른 질환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라면 월 40만 원을 부담하면 되지만, 에이즈환자는 월 60만 원을 부담해야한다고 했다. 에이즈환자 지원 제도와는 상관없이 환자본인부담금을 낮출 수 없다고 했다. 60만 원의 내역이 무엇인지, 에이즈환자는 왜 돈이 더 드는지 설명해달라고 하자, 싫으면 다른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만 했다. 

게다가 에이즈환자는 물리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환자가 싫어해서 에이즈환자 8명이 한 병실을 써야한다고 했다.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워 환자 8명당 1명만 상주한다고 했다. 간호사들 반발도 있어, 감염가능성이 있는 주사제 투여보다는 경구용 약제를 사용한다고 했다. 입원 전에 환자의 기초생활수급비 통장을 병원에 맡겨야 한다고도 했다. 

가족들은 아무런 대꾸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병인 수에 대해서만은 사정을 봐주기를 원했다. 환자들 대부분이 와상상태이기 때문에 간병인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간병인을 한 사람 더 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요양병원으로 가도 된다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 번쯤은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에이즈환자들의 상황 때문이다. 그렇게 그 날의 입원 상담은 끝이 났다. 입원예약을 해두고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은 '고려장'이 따로 없다며 서럽게 울었다.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 병원(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정부의 무책임이 가족 탓으로 둔갑하는 순간   


"오지마라. 에이즈환자 안 받는다. 이미 전원 온 환자도 퇴원시킬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큰 결심을 했다던 00요양병원은 입원 불가를 통보했다. 놀란 가족들이 이유를 묻자,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캐묻고 간섭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진다는 게 이유였다. 다시 원점이었다. 갈 곳이 없어졌다.

그런데 원점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국립중앙의료원과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받아주는 요양병원이 있어도 가지 못한 '환자가족 탓'을 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같이 간 인권단체가 난리쳐서 요양병원이 싫어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에이즈환자가 요양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환자가족의 노력 부족이라고 했다. 순식간에 프레임이 바뀌어 버렸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요양병원을 찾는 것은 온전히 에이즈환자와 가족들 몫이 되었다. '2016년 HIV감염인 간병비 지원 및 요양병원 입원 활성화 방안'은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에이즈환자에게 월 4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하고, 요양병원에는 환자 1명당 감염관리비명목으로 월 10만 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립중앙의료원 같은 급성기병원에 머무는 장기요양환자에게는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껏 굳게 닫혀있던 요양병원 문을, 정부도 열지 못했던 그 문을 환자가족들의 노력으로 열라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시각처럼 에이즈환자와 가족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간병인이 몇 명인지, 가능한 치료는 어떤 것인지 일체 묻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큰 결심해 주신 00요양병원에 '감사하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면 입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에이즈환자에게 진료 받을 권리, 알 권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등은 요구해서는 안 되는 권리였는지도 모른다. 환자권리장전이 병원구석에 무심한 듯 쓸모없이 붙어있을지라도 말이다.   

▲ 독일의 '건강한 교육을 위한 연방센터'에서 만든 홍보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HIV 양성이면서 엄마이기?', 'HIV 양성이면서 생존하기?', 'HIV 양성이면서 일하기?', 'HIV 양성이면서 친구이기?'라고 적혀 있다.


그래도 다시 요양병원으로

에이즈환자들이 왜 요양병원에 가야하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지난 이십여 년 사이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요법과 치료제가 보급되면서 HIV감염인의 기대여명이 다른 이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불치병으로써 공포의 대상이던 에이즈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변화한 것이다. HIV감염인의 기대여명이 늘어나는 만큼 고령화도 같이 진행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요양병원 입원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 HIV감염인의 평균 연령은 46세이고, 이들 중 60대 이상 고령층의 비율도 12%에 이른다. 게다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30~40대 같은 이른 나이에 중증 와상상태가 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2013년 말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환자의 수는 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007년부터 중증 에이즈환자들이 장기 요양할 수 있는 요양병원을 지정하여 간병지원을 해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적절한 요양병원이 없어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경찰병원 등의 병원으로 전원 후 간병지원을 지속 중이다. 그런데 이 병원들은 요양병원이 아니라 급성기 병원이다.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원에서 장기 요양 중인 중증 에이즈환자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추가로 발생한 중증 에이즈환자들은 또 어디에 있을까? 이들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메뚜기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에이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 요양병원 의료인들의 에이즈환자 진료경험 부족, 요양병원의 대부분이 민간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현실 등 중증 에이즈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을 가로막는 장벽은 한 둘이 아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정부는 2014년 12월에 에이즈환자에 대한 요양병원 의료수가를 인상하였고, 2015년 12월에는 에이즈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이 가능함을 명확히 하도록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 및 공포하였다. 

그 이전에도 에이즈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못할 법적, 제도적 제한은 없었지만, 요양병원의 자발적 참여를 유인하기 위해서 이를 보완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이즈환자들에게 있어 요양병원의 문턱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고 있다. 에이즈환자들은 요양병원 입원상담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요양병원 문은 왜 저리도 열리지 않는 것일까?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없다

우리나라 의료계는 민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체 의료기관의 약 7%만이 공공 의료기관이고,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양병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4년 기준으로 1298개소의 전체 요양병원 중 오직 72개소(5.55%)만이 공공 '소유'의 요양병원이고, 이 중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5개소 미만이다. 즉 전체 요양병원 중 99% 이상이 민간에 의해서 운영 중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에이즈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 요양병원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민간이 위탁 운영 중인 공공 요양병원은 운영 주체를 정부로 전환하여 일정 수 이상의 요양병상을 확보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공 요양병원을 신설하고, 기존의 민간 요양병원 중 일부를 인수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에이즈환자를 비롯한 우리사회에서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적절한 장기요양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중증 에이즈환자들은 지금도 급성기 병원의 가시방석 같은 병상에 누워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런 그들에게 요양병원으로 옮겨가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 역시 하루라도 빨리 요양병원으로 옮겨가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환자와 가족들이 적절한 요양병원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요양병원은 병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에이즈환자들을 기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이즈환자들이 서럽게 견뎌온 시간만큼 국가 직영 요양병원의 필요성은 더욱 커져간다. 1300개가 넘는 요양병원을 '고려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에이즈환자와 가족들의 비명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