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법'으로 '불행한 대통령' 탄생 막자
[20대 국회 시험대 ①] 의회 권력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2016.04.19 07:27:06
'유승민법'으로 '불행한 대통령' 탄생 막자

20대 국회가 시작됐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되는 결과는, 의회 권력이 2008년 총선 이후 전면적으로 재편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의회 권력의 기능이 마비됐던 2006년 지방선거 이후로 치면 약 10년 만에 의회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했던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야당(한나라당)에, 그리고 행정부(이명박 정부)에 내줘야 했다.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는 2012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의 정국 운영은 2008년부터 따지면 8년 가까이 진행돼 왔다. 의회는 사실상 행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석수는 167석에 달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내려 앉았다.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기회가 생겼다. 보수 정당의 집권 기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부자 감세, 테러방지법 등, 숱한 논란 속에 '보수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균형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20대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프레시안>은 전문가 등과 함께 20대 국회에서 꼭 추진돼야 할 입법 과제를 짚어 본다.


4.13총선 이후 의회 정치가 힘을 발휘할 공간이 생겼다. 60년 넘게 이어온 대통령 중심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명분도 생겼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의회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른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론도 이런 지적 위에 서 있다.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당도 강력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불행한 대통령'의 등장을 막고,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3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각제가 좋다고 본다"고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월 "호남정치 복원을 위해 이원집정제, 내각제 개헌이 돼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집권할 경우)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뿐만 아니라 내각책임제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원내 3당이 위태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총의를 제대로 모아내기는 어렵다. 다만 현 정치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 할 필요는 있다. 의회 중심 정치를 만들어 낼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국회법 개정안(유승민법)의 재추진이다. 

▲ 유승민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4대강 사업, 왜 못 막았을까?'유승민법' 재추진이 꼭 필요한 이유

지난 2015년 '정치 6.25사태'를 돌아봐야 한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을 처리하기 위해 일종의 '패키지딜'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에 동의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 일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기된 법안이다. 

특정한 이슈에서 시작된 법안이었지만, 의회의 입법권이 대통령의 행정권에 의해 침해당하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른바 '시행령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입법 하극상'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이 동의를 했고, 그래서 그는 지난해 6월 25일 대통령 발언을 기점으로 사실상 축출됐다. 이것이 '정치 '6.25사태'다. 

'시행령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행정부는 국회의 입법권을 기묘하게 뒤틀어왔다.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총선 직전 새누리당이 밀어붙여 통과시켰던 테러방지법도 시행령에 민간 이슈에 대한 군 관여 가능성을 집어 넣어 놓았다. 명백히 입법 취지 위반이지만, 행정부는 모법 위에 선 시행령을 오늘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많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1일 14개 상위법 위반 시행령을 발표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포함해, 올해도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인 누리과정 교부금 지원 관련법, 국립대학 회계 재정 운영법, FTA 농어업인 지원법, 학교 옆 관광호텔 설립법, 의료기관 부대 사업 관련법, 5·18 희생자 보상법, 전교조 노조 인정 관련 노동조합법, 연장근로·임금피크제 관련 근로기준법, 4대강 사업 관련 국가재정법, 카지노 심사제 관련 경제자유구역법 등이 포함돼 있었다. 

쉽게 말해 국회가 학교 옆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법을 제정했는데, 정부가 시행령을 교묘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특정 재벌 기업에 특혜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국회는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무소불위 시행령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4대강 사업과 같은 혈세 낭비도 막을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22조 원의 세금을 강바닥에 쏟아 넣은 이 사업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태어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국가재정법을 무시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4대강 사업에서 제외한 시행령을 근거로 이 망국적 사업을 밀어붙였다. 국회의 권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입법 목적에 어긋나는 시행령이 남발되면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입법권은 무력화된다. 이를 견제하자는 것이 이른바 '유승민법'이다. 

그런데 '유승민법'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암초를 만났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당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 발언을 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스스로 선출한 유승민 당선자를 직에서 몰아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과도한 대통령직의 권한을 훼손하길 원치 않았던 셈이다. 권력에 취하면 그렇게 된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이성이 사라진다. 자신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침해할 여지가 생기면, 극도의 흥분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의회 권한 강화, 통제되는 대통령87년 이후의 정치 모습이라면

유승민법은 새로 시도돼야 한다. 20대 국회가 꼭 할 일 중 하나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에 균형추를 달아주는 것이다. 2017년 선출될 19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이 채워져야 할까. 일단 2015년 5월 28일 김태년 의원 등 23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법안은 제안 이유에서 "법률의 제, 개정 절차는 국회를 통해 의결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행정입법은 행정기관에 의해 독점적으로 제·개정됨으로써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정편의에 따라 제·개정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 의한 행정입법의 검토 절차를 개선하여 국회의 입법권을 보호하고, 행정입법 과정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훈령, 예규, 고시가 제정, 개정, 폐지되거나, 입법예고 또는 행정예고된 때, 소관상임위원회에 제출하여 검토받도록 함(안 98조의 2)

나.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등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등을 검토하도록 함.

다. 의원은 10인이상의 연서에 의해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 공포된 대통령령등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 검토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함.

라. 상임위원회는 대통령령등을 검토하여 당해대통령령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시정을 요구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함(안 98조의 3 신설)


대통령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에 어긋난다면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없이"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보다 더 강화된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 국회 내에 정부 제정 시행령을 감시할 수 있는 전문 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유승민 의원의 무소속 당선을 확대 해석한다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사태의 원인 일부가 소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시 이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체로 찬성했고, 일부 단어를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정의화 국회의장도 "위헌이 아니다"라는 법률 자문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의 '위헌' 주장은 행정부가 내놓은 하나의 해석, 하나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국회는 협치를 통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4대강 사업과 같이 특정 정치인의 욕심에 따른 천문학적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길이다. 나아가 '불행한 대통령'의 탄생을 막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불순한 의도로 여론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재단할 위험을 없애는 길이다. 강화된 의회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대통령, 이것이 87년 체제 이후의 대통령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개헌'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실험의 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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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