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 한국 조선업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위기의 조선업, 책임은 누구에게?
지난 15년, 한국 조선업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구조조정'이 화두다. 세상에, 여야 모두 합심해서 구조조정을 얘기하는 상황은 IMF 위기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특히 위기의 최전선에는 한국이 몇 안 되는 세계 1위를 달리는 조선업이 서 있다. 벌써부터 대규모 조선소에서 수천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위기는 급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인사이드 경제>처럼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도 이미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에 충분히 점칠 수 있었던 위기이다. 오히려 8년 전에 감지되었던 위기는 오랜 시간 지연되었다가 예상보다 훨씬 크게 터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조선업에도 경제 위기의 야만은 불어 닥치고 있다")

<인사이드 경제>는 일단 지난 15년 간 한국 조선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왔고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가 분명해질 테니까 말이다.

영원한 호황을 누릴 것 같던 시절 : 2001~2007년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조선업은 호황 쾌속선을 타고 달렸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이 놓여 있다.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물동량 증가를 가져왔고, 당연히 물자를 싣고 나르는 해운업·조선업의 수요 역시 폭증하게 된다.

20세기 세계 조선업을 좌지우지하던 유럽은 이미 세기말에 가격 경쟁력을 잃고 동아시아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연히도 1990년대에 일본의 조선업 역시 사양산업 취급을 받으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눈부신 성장을 시작한 중국은 아직 기술력이 뒤떨어진 상태였다. 한국은 21세기에 세계 조선업을 이끌고 가도록 선택받은 존재처럼 보였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이른바 조선업 '빅 3'는 물론이고, 블록 일부를 하청 받아 납품하는 중소 조선사들 역시 너도 나도 직접 배를 짓는 건조 사업으로 진출하게 된다. 대형 선박 중심의 수주를 벌이는 빅 3가 폭증하는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중소형 조선소들이 영업을 할 수 있는 틈새시장도 확장되었다.

이 시기 조선업·해운업은 마치 건설업이 잘 나가던 시절 사용하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금융기법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시장이 괜찮을 때 1000억에 선박 수주를 맡긴 해운사는 배를 인수받아 2000억 원에 팔아넘길 수 있었다. 금융권은 이 사업의 수익성을 보면서 수주액 1000억 중 900억을 빌려준다.

해운사(선주사)는 자기자본 100억만 갖고도 은행에서 900억을 빌려다 배를 지은 후 앉아서 1000억의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당시 조선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린 이유다. 금융권 역시 짭짤한 금융비용을 챙길 수 있었기에 해운사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고 조선사에 지급보증을 서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운사는 돈이 된다 싶으니 무차별 선박 주문에 나서며 금융권에서 막대한 차입금을 가져다 쓰고, 금융권 역시 선박 수주와 건조를 부추기며 해운사와 조선사에 돈을 빌려주었으며, 조선사들은 배를 만들 도크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 돈을 끌어다 도크와 배를 동시에 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006~2007년은 한국 조선업의 르네상스로 기록될 정도의 해였다. 정말 미친 듯이 배를 지었고, 현금 보유량과 사내유보금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2008년에 미국 발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시점에 업계 관계자들은 "과연 2006, 2007년과 같은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를 외칠 정도였다. 이 시기 한국 조선업 매출액은 2001년 대비 불과 5~6년 만에 3배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정기훈(매일노동뉴스)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다 : 2008~2010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활황기가 지속되던 2008년 9월 14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그 이전에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상품을 다루던 금융 회사들이 무너진 적은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라더스 파산의 규모는 천문학적이었다.

리먼이 파산하던 날,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금융거래와 실물경제가 일순간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리셋(Reset) 모드로 들어가며 꺼진 것처럼.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갑자기 혈액순환이 막혀 심장이 멎은 것처럼.

물론 세계 경제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먹통이 된 컴퓨터가 다시 구동되더라도 사오정처럼 움직이듯이. 갑자기 심정지가 온 사람이 응급처치로 심장 박동이 되돌아왔다 하더라도 그의 이후 삶은 이전과 많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시장이 쪼그라들자 금융권은 돈 빌려주기에 보수적이 되고, 이에 따라 해운사들의 선수금 지급이 연기되거나 수주 취소사태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끝을 모르고 팽창하던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돈을 받지 못한 조선사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대형 조선사는 버틸 여력을 갖고 있었지만, 영원한 활황을 믿고 이제 막 진출을 시작한 중소 조선소들은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권이 판매한 KIKO로 인한 피해가 속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중소 조선소들은 문을 닫기 시작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실직 상태로 내몰리고 말았다.

4~5년의 수주 물량을 확보하고 있던 대형 조선소 역시 수주 취소와 인도 연기 사태가 이어지는데 신규 수주는 이뤄지지 않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업계가 스스로 약속한 "저가 수주는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지키려 했으나, 어느 한 업체라도 어기기 시작하면 이런 합의는 물거품이 되기 마련이다.

대형 컨테이너선과 LNG·LPG 유조선 등을 건조하던 대형 조선소들도 이제 자존심을 버리고 합의를 어기기 시작한다. 그동안 이윤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벌크선 수주까지 발벗고 나서게 된다. 저가수주 출혈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바다 밑에서 올라온 동아줄, 해양플랜트

정녕 한국 조선업의 르네상스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일까? 새로운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업계 전반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바로 그때, 한줄기 빛처럼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업이 익숙한 바다 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인 바다 밑에서.

대형 조선소에는 어김없이 '해양플랜트 사업부'라는 부서가 존재한다. 조선소의 주력 업종은 당연히 바다 위를 떠다니는 선박을 만드는 일이지만, 독특하게 바다 위에 구조물을 세우는 업무도 있는 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에너지원, 석유를 바다 밑에서 뽑아내기 위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해양플랜트 사업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업이 참으로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거친 풍랑에 맞서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을 만드는 것과 달리, 바다 위에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거친 풍랑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 고정적으로 머무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드릴 쉽’은 이름만 봤을 때엔 선박(ship)처럼 들리지만, 실은 시추를 하는 동안은 절대로 움직여선 안 되는 구조물이다.

좀 더 거대한 구조물로는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 :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가 있는데, 이는 해상의 일정지역에 머물면서 해저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유 제품을 생산하여 보관한 뒤, 다른 선박을 사용해 운송할 수 있도록 한, 최첨단 과학이 총집결된 복합 구조물도 있다.

그런데 이토록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왜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그건 국제 유가와 깊은 관계가 있다. 국제 유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직 급상승했다가 다시 2009년에 급전직하 하게 된다. 그런데 2010년부터 다시 고공행진을 시작하게 된다. (유가 변동의 이유는 설명이 길어지므로 생략)

▲그래프 출처 : https://research.stlouisfed.org/fred2



위 그래프는 지난 30년(1986~2016) 간 국제 원유가 변동 추이를 그려본 것이다. 2010~2014년까지 국제 원유가는 배럴 당 100달러 안팎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원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은 바다 밑에서 석유를 파올리는 작업에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조선소에서 해양플랜트 사업부는 보조적인 부서처럼 여겨져 왔는데, 이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 수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바다 위를 누비는 것이 아니라, 바다 밑을 파헤치는 것으로 먹고 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으나 : 2011~2014년

국제적으로도 해양시추 관련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실험적으로만 접근했던 드릴 쉽 제작과 FPSO 건설 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양플랜트 사업부가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은 이에 필요한 인력 대부분을 하청 노동자로 채우게 된다.

2008~2010년 시기에 이어 이 시기에도 중소 조선소들 상당수가 부도가 나면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다. 2013년에는 중소 조선소가 밀집되어 있는 통영 지역이 '고용 재난 지역'으로 지정되어 정부 실업대책이 집중되기도 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직후 평택이 지정된 데 이어 2번째 고용 재난 지역 지정이었다.

그런데 법정관리·매각·파산 등의 과정에서 실업 상태에 빠진 중소조선소 노동자들 다수가 대형 조선소의 해양플랜트 사업부로 흡수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의 조선업은 1차 구조조정을 완료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즉, 글로벌 경제위기와 물동량 축소로 인한 위기 국면은 중소 조선소의 몰락으로 이어졌지만 대형 조선소 해양플랜트 사업 확장으로 충격이 흡수되어 진정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 대형 조선소들이 빨아들인 하청 인력 규모는 그보다 더 거대했다. 2011~2014년에 조선업이 아닌 부문에서도 거의 3~4만 명에 달하는 신규 인력이 해양플랜트 부문으로 유입되었다. 가히 블랙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흡입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그 어느 때보다 대형 조선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에 컨테이너선이나 LNG·LPG 선박 등 상선에 주력했던 한국의 빅 3에게 해양플랜트 사업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드릴 쉽과 FPSO 수주가 늘고 이들 선박·구조물의 가격대도 상당히 높아 업계의 기대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고가(高價)의 선박이 곧 고(高)부가가치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순진한 기대에 불과했다.

우선 설계부터 장애물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잦은 설계 변경은 선주사의 신뢰를 갉아먹은 것은 물론이고 작업 진행에도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애초 예상했던 작업일수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기 일쑤였고, 공수(투입 노동자수) 또한 계산보다 훨씬 늘어나 비용도 늘어났다.

경험 있는 기능공들로 채워도 부족한 제작과정에 대규모로 유입된 하청노동에 의존하는 작업은 품질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수주 물량을 채우더라도 제작기간과 비용이 늘어나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한국 조선업은 어디로 : 2015년 이후

결국 해양플랜트 부문을 확장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납기 연기와 품질 저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지며 2014년부터 대형 조선소들은 수 조원 대의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국제 유가는 2015년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해양시추 작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해양플랜트 관련 주문도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제적인 경쟁 압력은 그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우선 엔저 상황의 지속으로 일본 조선업이 다시 체력을 보강해 부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아울러 기술력이 뒤쳐져 있던 중국 조선업 역시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경험과 기술력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해양플랜트 수주 급감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상선 중심의 수주에 나서보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업계 역시 동일한 판단으로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조선업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지만 주요 수요국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내 수요에 대해서는 90~100%를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원칙 내지 관례를 갖고 있어서 한국 조선업이 치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다.

게다가 세계 경제의 저성장 지속, 물동량 증가율의 하락 등으로 시장 자체가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는 형편이다. 유럽의 선주사들은 주문했던 선박 물량을 오히려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지난해부터 한국 조선업은 대형 조선소를 중심으로 다시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다. 우선 사무관리직에게 희망퇴직이라는 미명 하에 강제 사직을 강요하고 있고,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하청노동자들 상당수가 잘려나가고 있다.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 2000년 이후 한국 조선산업 흐름도



앞에서 서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15년 간 한국 조선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 보았다. 위의 흐름 끝에 조선업의 위기와 구조조정이 놓여져 있다. 자, 그럼 여기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노동자들의 잘못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업 위기가 올 것을 알면서도 하청노동자로 대거 취업한 게 잘못인가? 아니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을 대폭 인상시켜 억대 연봉이라도 챙겨갔는가? 국제 원유가의 급등과 급락, 해양플랜트 부문의 확장과 축소, 글로벌 금융위기와 물동량 변화, 일본과 중국 조선업 변동 … 이 어느 것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은 책임이 없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구조조정은 죄다 임금삭감과 대량 해고 등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내용들뿐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니 노동개악 법안 처리부터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다.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은 그동안 조선업 르네상스로 막대한 이윤을 챙겨온 이들, 즉 조선업·해운업·금융업 자본가들이다. 위기를 해결하는 비용 역시 그들이 지금까지 뽑아먹은 이윤을 토해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이들 자본의 이윤 창출에 용이하도록 정책을 만들어온 정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들에게 책임을 제대로 지우고 위기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 <인사이드 경제>와 독자 여러분이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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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