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세월호'와 '헬조선'으로 기억될 정치인"
[프레시안 books] <헬조선 삼년상>
2016.08.05 08:39:17
"박근혜, '세월호'와 '헬조선'으로 기억될 정치인"
모든 정부는 상징적 장면을 남긴다. 김영삼 정부는 재난과 외환 위기로 기존 부패 경제 체제의 종말을 그렸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 회담과 벤처 투자 광풍을, 노무현 정부는 검사와의 대화와 탄핵 정국으로 대변된다. 이명박 정부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건 4대강 사업과 촛불 집회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시간을 잠시 돌이켜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헬조선'이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이유가 오롯이 박근혜 정부 때문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역대 모든 정부에서 가동된 승자 독식 체제가 헬조선 시대의 밑거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질주를 더 촉진했고, 세월호 정국으로 상징되는 무능으로 승자에 힘을 더 실어줘 헬조선이 기어이 문자화하는 데 기여했다.

정치 평론가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3년간 여러 언론에 기고한 글 78편을 모아 낸 책의 제목이 <헬조선 삼년상>(이매진 펴냄)인 까닭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난 3년의 기록이다. 마치 '삼년상 치르듯, 모두가 슬퍼한 시간'을 찬찬히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메시지가 자연스레 응축된다.

물론 박근혜 정부에 관한 비판이 이어진다.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여러 편의 글은 꾸준한 조언에서 결국 기대 난망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된 타깃은 특정 정부라기보다 한국 정치 자체다. 지난해 5월의 글인 ''무능'한 경제 정당 '무지'한 정치 정당' 편은 핵심의 요약에 가깝다. 이 글에서 저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글을 인용해 민생을 바른 방향으로 고민하지 않는 정치의 무능함에 개탄한다.

사람들이 요즘 들어 정치에 더욱 크게 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정치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겪고 있는 굶주림과 분열이라는 고통에는 관심 없는 정치, 당장의 복수심과 욕심과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 자기의 집념과 집착만 내세우는 정치, 그래서 결국 전쟁이라는 재앙을 불러와 사람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이끄는 정치. 케인스는 바로 그런 정치에 절망했다. 역사 배경에 차이가 있지만 케인스와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치에 절망하는 이유는 매한가지다. (244쪽)

단어 '헬조선'을 만든 주역인 젊은 세대도 이 책의 화두다. 정치 서적이니만큼 직접적으로 젊은 세대가 책의 주요 소재로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적잖은 글에서 저자가 젊은 세대를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수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는 저자가 기대하는 대안적 정치 세력으로서 주된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486 또는 586 세대 활동가들은 부와 권력과 안락한 삶을 향한 욕망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진보를 꿈꾸며 살아왔다. (…) 그런 이들이 한 운동을 자식뻘 되는 청년 활동가가 망했다고 선언했다. (…) 청년 활동가는 위기라는 말조차 진부하고 한가하게 느껴진다고 일갈했다. (…) 그 청년 활동가처럼 자기가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 기대어 세상의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 낡은 갈등을 대체할 새로운 갈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런 확인을 하려 대화에 나선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사회운동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줬다. (…) 청년 세대든 486 또는 586 세대든 그런 역량을 보유하고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사회운동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224쪽)

▲ <헬조선 삼년상>(김윤철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저자가 개별 글을 쓸 때 염두에 두진 않았겠지만, 이 책은 기성 세대보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듯하다. 각 글마다 소설, 노래 등에서 뽑아낸 인용문이 인상적으로 배치되는데, 적잖은 글이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다. 기존 체제에 절망한 이들의 분노를 응축한 인용문이 차분한 저자의 글과 대립하면서도 어울린다.

결국 젊은 세대는 보통 사람으로 대표된다. 엘리트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입장에 서서 정치에 쓴소리를 하는 책이다. 보통 사람에게 안철수와 김부겸이 어떤 의미인가를 짚고, 정치가 보통 사람의 열망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느냐를 끈질기게 묻는다. 야당이 '반대당'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관해 이 책이 답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의 생각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책은 고상한 정치철학을 읊거나 당위에 기대 현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여러 정치인의 이름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정치 이벤트가 쓴소리의 대상이 된다. 덕분에 책은 정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일상에 단단히 두 발을 내디뎠다. 대안 정치에서 중요한 덕목은 초지일관보다 시의적절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나온 연유이기도 하다.

어느새 박근혜 정부도 물러남을 고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당장 내년이 되면 온 국가가 차기 대선 체제에 돌입한다. 이 책은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을 돌아보고, 다음 정부를 앞서서 고민한다. 새로운 정치 시즌의 문을 여는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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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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