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이 와중에 국민건강보험 죽이기
[복지국가SOCIETY] 국민건강보험 개혁의 세 가지 방안
박근혜 정부, 이 와중에 국민건강보험 죽이기
지난 주말, 사상 최대의 촛불로 뜨거웠던 분위기 속에 조용히 묻힌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누리 과정에 대한 합의와 소득세 인상이다. 지난 수년간 누리 과정 재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던 끝에 특별 회계를 신설하고, 그 재원은 최고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을 통해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특별 회계가 한시적이고 함께 추진했던 법인세 인상이 좌초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정치인들이 '증세'에 합의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보육' 분야에서 미약하게나마 재원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 건강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반면, 우리 정치권은 국민 건강권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 인구로 국민건강보험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데 비해,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내년부터 시작되는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로 국민건강보험료 수입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17년 예산에서 국민건강보험 국고 지원액을 전년보다 2210억 원이나 감액 편성했다. 시민 사회에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도 결국 증액 없이 통과되었다.

국민건강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논란을 일으켜 온 부과 체계 개편 역시 여야 간의 대립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국민건강보험 정책 심의위원회'는 내년도 건강보험료를 동결했다. 국민건강보험의 현행 보장성 하에서도 건강보험 지출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야 정치권 어느 누구도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수입을 늘릴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현재 63.2%의 보장성 수준 하에서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료비 불안을 겪고 있다. 따라서 국민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상 의료비 중 공공 재원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여기에는 최소한 16.6조 원 이상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 정부가 2017년 예산에서 국민건강보험 국고 지원액을 전년보다 2210억 원 감액 편성했다. ⓒ청와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과 관련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국민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두 번째는 국고 지원 정산 제도, 세 번째는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이다. 각각의 쟁점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제대로 개편하자

첫째,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이다. 현재 건강보험료는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로 나누어 부과한다. 그런데 두 유형의 가입자 간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직장 가입자는 근로 소득을, 지역 가입자는 종합 소득.재산.자동차를 점수화한 기준(연 500만 원 이하 세대는 세대원의 수와 연령 등 고려)에 따라 보험료를 낸다. 또한 직장 가입자에 한하여 피부양자 제도가 적용되어 직장 가입자의 배우자, 부모, 자녀, 형제, 자매 등 가족의 경우 피부양자로 등록하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런 현행 부과 체계에는 몇 가지 불공평한 문제가 있다. 첫째, 지역 가입자 부과 체계의 불형평성이다.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간 이원적 부과 체계로 인해 직장 근로자가 실직과 은퇴 등으로 인해 지역 가입자로 편입되면 소득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폭탄을 맞는 경우가 빈번하다. 둘째, 직장 가입자 부과 체계의 불형평성이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종합소득이 72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한, 월급을 기준으로 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반반씩 낸다. 이로 인해 월급 외의 기타 소득이 있는 직장 가입자와 없는 직장 가입자 간의 불공평성이 발생한다. 셋째, 피부양자 문제에서 불형평성이다. 직장 가입자에게만 이 제도를 인정함으로써 지역 가입자의 불만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피부양자를 제한하는 소득 기준(사업 소득의 존재, 금융‧연금‧기타 소득 각 4000만 원 초과, 재산 과표 9억 원 초과)의 한계로 고액의 소득이 있더라도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낼 수 있는 허점이 있다. 국민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40%가 피부양자에 해당하며, 2015년 기준으로 289만 명이 소득이 있는데도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 능력을 적정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 현재까지 제시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방안(자료 : 보건복지위원회. 2017 회계연도 예산안 및 기금 운용 계획안 예비 심사 검토 보고서). ⓒ프레시안


이런 문제들로 인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두 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핵심은 소득 중심으로 단일한 부과 체계를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통해 약 3조8300억 원 정도를 추가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고 지원 정산 제도를 실시하자

둘째는 국고 지원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규정한 '국민 건강 보험법' 제108조와 '국민 건강 증진법' 부칙에 따르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일반 회계에서 14%, 국민 건강 증진 기금에서 6%)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한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국고 지원 비율은 약 15%에 불과하다. 이는 국고 지원의 기준이 되는 보험료 예상 수입을 과소 추계하여 지원금을 적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2017년도 예산에서는 또 다시 적게 책정한 데 더하여 국고 지원 제도가 마련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감액 조정'까지 감행했다. 그 결과, 보험료 수입은 매년 늘고 있는데, 국고 지원액은 전년보다 2210억 원이 줄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2011년 이후 건강보험 재정의 당기 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국가 채무 비율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 국고 지원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한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을 국가의 재정 상황과 상관 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건강보험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단계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고,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상당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국고 지원을 더 늘려서라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도 당장의 일시적인 건강보험 흑자를 이유로 국고 지원을 축소 편성한 것은 안일하기 짝이 없는 처사이다.

지금부터라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기준으로 하는 국고 지원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실제' 수입액에 근거하여 사후에 정산하도록 함으로써 20%라는 법적 규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추가로 약 2조 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까지 시민 사회와 정치권에서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과 국고 지원 정산 제도를 주로 논의했다. 이런 두 가지 방안을 통해 약 6조 원을 추가로 걷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OECD 평균 수준의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약 16.6조 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또 하나의 방안, 바로 건강보험료율 인상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건강보험료, 지금보다 더 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몇 년 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국고 지원 정산 제도와 더불어 건강보험료 20~25% 인상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의 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를 20% 인상할 경우 약 16.7조 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료 인상보다는 소득세와 같은 조세를 올려 재원을 충당하자는 방안도 제기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 채무가 이미 GDP의 40%를 넘은 재정 상황과 계속해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고려하면 증세를 통해 확보한 금액이 건강보험 재정에 쓰일 수 있을지 오히려 더 불확실하다.

가장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은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보장성이 늘어난 시기에는 항상 건강보험료 인상이 동반되었다. 보험료의 인상은 앞으로 겪을 건강 불안을 우리 모두가 공적 수단을 통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인상은 정부 혹은 건강보험공단을 배불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재원이다. 민간 의료보험에 내는 돈의 일부만을 그보다 훨씬 유리한 국민건강보험에 더 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국민 모두에게 큰 이익을 안겨 준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에게는 크게 유리하다.

다만, 건강보험료의 인상 방안과 관련하여 지금과 같은 단일 세율(건강보험료율)이 아니라, 소득에 따른 누진적 부과 여부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누진제는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경우 의료 이용률이 높아서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즉, 이미 지출 부분에서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누진적 부과 체계를 고려하는 데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의료비 불안이 없는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한 일을 우리라고 못할 리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보편적 의료 보장의 길에서 우리 국민, 여야 정치권, 그리고 정부의 책임 있고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요구된다. 내년이면 벌써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 늦으면 늦을수록 의료비 불안과 우리 국민의 건강과 질병 관련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을 앞둔 지금이 바로 복지국가 건설과 국민 건강권을 소리 높여 주창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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