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ㆍ노무현, '민주자치 선발투수'의 별이 되다
[기자의 눈] '부산 남자'의 추억…마무리는 안철수ㆍ문재인?
2011.09.15 13:46:00
최동원ㆍ노무현, '민주자치 선발투수'의 별이 되다
부산 남자들이 떴고 또 다른 진짜 부산 남자는 갔다. 추석 연휴의 여운이 가라앉지도 않은 지금 부산 정서는 희망, 기대 그리고 비통이 혼재된 것이다.

안철수를 필두로 문재인, 조국 등 부산 남자들을 전국이 주목하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의 키는 PK(부산경남)가 쥐고 있다'는 전망들이 쏟아졌다. 추석 연휴에 부산 사람들은 "내 묵고 사는거 하고 무슨 상관이고"라고 특유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서울 분위기가 그렇나? 이번에는 함 해보는 기가"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안철수는 부고(부산고)나왔고 문재인은 경고(경남고)라매", "조국은 대신동이라카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과 인연을 맞춰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14일 새벽, 진짜배기 부산의 아들 최동원이 영면했다.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에 출장해 4승 1패, 롯데 우승 확정 순간 부산에서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등 만화 스토리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설의 주인공. 최동원은 부산에선 단지 한 사람의 유명 운동선수가 아니다.

레전드는 환희와 성취 이면의 역경과 좌절로 비장미를 갖추고 그 완결성을 더한다. 최동원이 그렇다. 대구 삼성의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된 부산 롯데의 비루함을 나홀로 4승이라는 기적으로 뒤바꿔 버린 영웅에게 돌아온 것은 골칫거리라는 딱지와 트레이드라는 배신이었다.

이후도 TV예능프로 패널, 의류사업 등 야구판 밖을 전전하던 그는 연고도 없는 대전 한화의 코치 유니폼을 잠깐 입었을 뿐 부산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그리고 53세의 일기로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지었다.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

▲ 고 최동원 선수. ⓒ연합
지천명이라는 쉰의 나이에도 "제 가슴속에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어요. 가슴을 태우는 그런 불덩어리요. 아직도 그게 남아 있습니다"(2008년 <중앙일보> 인터뷰 中)라던 최동원 속의 불덩어리가 다른 형태로 표출된 적이 있었다.

최동원은 1991년 초대 광역의원 선거에서 부산 서구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 역시 "머스마라믄 큰 꿈 한 번은…"의 범주에 속한 부산 남자였는진 모르겠지만, 정치행보도 진짜 부산 남자스러웠다.

1988년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던 그는 그 해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00만 원을 쾌척했었다. 최동원의 꿈이 결국은 정치에 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다. 그런 최동원은 중고교 대선배로 그를 그리 총애했던 김영삼 민자당의 영입제의를 뿌리치고 꼬마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1987년 대선 당시에도 김영삼 선거 사무소를 자주 드나들었던 최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YS맨'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골기질은 야당에 더 적합했다.

최동원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협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민자당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택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골기질 이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래야 진정성을 이해 받을 것 같았어요"라고 회고했다.

▲ 출마 당시 포스터.
경남고 동문회가 조직적으로 최동원을 만류했고 안기부 공작설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동원은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최동원스러운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주식의 일정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의 구단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급진적 공약을 제시했고 유세장에선 "YS와는 경남고 선후배사이지만 대선배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받기 위해 출마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최동원의 경남고 동기동창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최동원 별세) 소식 듣고 술 많이 먹었다"면서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동원이가 3당 합당 이후 전대협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

당시 꼬마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최동원 지원 유세에 나섰던 김정길 전 장관은 "우리도 최 선수를 영입하고 싶었고 최 선수도 흔쾌했다"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선거도 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6000여 표라는 꽤 큰 차이로 낙선하고 만다. 최동원은 정치판에서도 강속구를 뿌려댔지만 YS라는 큰 산을 넘을 순 없었다.

김정길 역시 그 이듬해 14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나란히 낙방거사가 되고 말았다.

'아들 삼고 싶은 남자'와 '사위 보고 싶은 남자'의 차이

홈런을 맞고 같은 코스로 똑 같은 공을 찔러넣는 거만할 정도의 자존심, 연봉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불뚝 성질, 프로야구 선수협 초대 대표로 상징되는 반골기질, 암이 온 몸을 갉아먹고 있어도 마지막까지 "내는 괜찮심더"라는 탕탕 큰소리까지…. 만약 부산 정서를 오롯이 육화(肉化)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최동원이라는 형태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결국 다른 길을 걸었지만 김영삼과 노무현 두 사람 모두에게 묻어나는 어떤 냄새다. 그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최동원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미 갔고 김영삼은 노쇠했고 최동원도 갔다.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냄새는 다르다. 안철수, 문재인, 조국…. 소프트한 감성과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을 갖춘 이들이다.

YS나 노무현, 최동원은 '내 아들이었으면 든든하고 자랑스럽겠다'는 남자들인데 안철수, 문재인, 조국은 '저런 사위 보고 싶다'는 남자들이라는 차이다. 이런 분류를 전하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이호철 전 수석은 "딱 맞는 말이다"고 무릎을 쳤다.

아들의 시대가 가고 사위의 시대가 올 것인가? 부산의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그래도 바닷가 사람들 '욱'하는 정서가 쉽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진짜배기 부산남자의 죽음과 새로운 부산 남자들의 부상이라는 엇갈린 장면이 큰 변화의 서막인지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지 정치공학적 선거 전망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 이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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