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에 선 '성난' 농심…"쌀 북한에 지원하라"
[현장] 여성 농민, 쌀값 대책 촉구하며 '눈물의 삭발식'
2009.10.21 09:44:00
아스팔트 위에 선 '성난' 농심…"쌀 북한에 지원하라"
"1년을 꼬박 매달려 일구어 낸 농사인데…내 손으로 키운 자식을 버리는 심정이었죠."

나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자 씨는 지난달 말 쌀값 폭락에 대한 항의 표시로 논을 갈아엎는 행사를 진행했다. 자식 같은 논을 갈아엎는 농민의 마음을 착잡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쌀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16만2000원이었던 산지 쌀값이 올해12만 원대로 폭락한 상황에서, 농민들은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말한다.

풍년이 들었다지만 전국 들녘의 농심은 타들어 가고 있다. 올해 쌀값이 최대 20퍼센트 가량 대폭 하락하면서 농민들은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렵다며 울상 짓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농촌에서는 풍년가 대신 쌀값 대란에 대한 항의 표시로 논을 갈아엎는 트랙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 20일 오전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 단체의 기자회견에서 참가 농민들이 정부의 근본적인 쌀값 대책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농가에선 추수가 한창인 10월 20일, '성난' 농민이 서울 여의도에 모였다. 이날 오후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150여 명의 여성 농민들은 쌀값 폭락 해결과 대북 쌀 지원 법제화를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추곡 출하를 앞두고 쌀값이 폭락하자 전국 곳곳의 농민들은 농협 미곡처리장(RPC)을 봉쇄하고 논을 갈아엎는 등,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전국여성농민연합회 김경순 회장은 "지금 농촌은 난리가 났다. 1년 내내 농사지어 쌀 수매할 때나 목돈을 만져보는 농민들이었는데…. 그 돈으로 자식 교육 시키고 부모 모시던 농민들이 이제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개밥도 한 그릇에 2000원인데, 쌀밥 한 그릇은 220원이라고 한다"라며 "우리 농민이 개보다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 정부는 나라의 근간인 농업을 너무도 우습게 아는 정부"라고 꼬집었다.

▲ 20일 집회에 참석한 여성 농민들. ⓒ프레시안

전국농민회총연맹 한도숙 회장은 "현재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어떻게 가능했나. 산업화 시기부터 농촌이 희생하면서 이 나라 경제를 뒷받침 해왔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쌀 시장 개방과 시장주의 정책으로 350만 농민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 회장은 이어 "정부는 지난 봄부터 하반기 쌀값 대란을 경고했던 농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8월 말에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으나 수박 겉핥기 식 대책일 뿐"이라며 "공공 비축 물량을 작년보다 3만 톤이나 줄여놓고 정부는 쌀값 문제 해결을 농협과 민간 RPC에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이날 집회에 참여해 정부의 쌀값 대책에 대해 성토했다. 강 대표는 "한창 논밭에서 추수를 해야 할 여성 농민들이 이렇게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소비자 물가와 인건비 모두 올랐는데, 쌀값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이 나라의 식량 주권,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쌀값 폭락 앞에 '타들어가는 농심'…인도적 대북 쌀 지원 촉구

이런 농민 반발은 최근 산지 쌀값이 백미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12만 원으로 지난해 16만2000원에 견주어 20퍼센트 가까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는 쌀 80킬로그램 한 가마의 최저 생산 비용인 21만 원을 훨씬 밑도는 가격.

농협은 이태째 풍작이 예상되자 재고미를 싼값에 방출해왔지만, 올해 재고량은 지난해 65만 톤보다 24퍼센트 늘어난 82만 톤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쌀 관세화(개방화) 유보의 대가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는 쌀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역시 2005년 23만 톤에서 지난해 29만 톤으로 급격히 늘어난 탓에 쌀값 하락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재고량 증가에 따른 공급 과잉을 쌀값 폭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지난해 재고미를 전량 수매하는 한편, 쌀값 안정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대북 지원을 재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 2000~2007년 해마다 40만 톤 안팎씩 이뤄지던 대북 쌀 지원이 중단돼는 바람에 공급 초과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농민들은 △인도적 대북 쌀 지원 재개 및 법제화 △공공 비축 물량 확대와 영구 격리 조치 △쌀 소득 보전 목표 가격과 고정 직불금 상향 조정 △쌀 최소 생산비 21만 원(80kg 기준) 보장 △대형마트를 통해 이뤄지는 쌀 저가 판매 단속 △식량 주권 실현을 위한 식량 자급률 목표치 법제화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 여성 농민 대표자 6명이 정부의 쌀값 대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삭발식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날 집회에서 여성 농민 대표자 6명은 정부의 쌀값 대란 해결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가졌다. 삭발식 이후 이들은 국회의사당 앞 국민은행까지 행진해 경찰과 대치했으나, 큰 충돌없이 마무리됐다.

앞서 농민연합·전국농민회총연맹 등 13개 농민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쌀값을 시장에 맡기고 방관해온 정부가 쌀값 대란을 막을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오는 31일 전국 시·군에서 벼 쌓기 투쟁을 벌이고, 11월17일 서울에서 대규모 농민 집회를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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