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극우정당'을 위한 ILO협약 쉬운 설명서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민주당도 잘 모르는 ILO협약의 진짜 의미
조선일보와 '극우정당'을 위한 ILO협약 쉬운 설명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예상된 일이다. 정부 여당은 비준 의지가 없다. 정부라 함은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과 그 통제를 받는 관료를 말한다. 헌법은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관료를 통제함을 전제하지만, 이것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에선 관료가 장관을 통제하는데, 관료들은 애초부터 협약 비준을 원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친노동'이라는 착각

관료들은 비준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눈치를 보며 비준 시늉을 했을 뿐이다. ILO협약을 책임지는 고용노동부 관료 중에 비준을 원하는 이는 한 줌이나 될까. 더군다나 노동운동 경력을 가진 정치인 장관이 관료의 반발로 밀려나고 관료 출신 장관이 임명되었다. 정부 안에서의 비준 동력은 완벽하게 사라진 상태다.

비준 의지가 없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 당을 자꾸 진보라 부르는데, 이는 현실과 어긋난 분석이다. 이 당은 태생적으로 진보가 아니라 보수 정당이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최대치로 생각하는데, 민주당이 그렇다.

진보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려 한다. 보수는 선출된 엘리트의 결정에 대해서만 정치적 정당성을 허용하는 의회민주주의에 안주한다. 진보는 국민(people), 즉 민중적 민주주의로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려 한다. 민중민주주의는 학생회, 농민회, 자치회, 노동조합 같은 민중들의 집단적 자치기관들이 자기 삶을 개선해 나가는 체제를 말한다.

자유한국당은 헌법 질서를 짓밟는 극우다. 이들이 부정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이들은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자유민주주의의 초보적 가치를 부정한다. 경찰, 정보부,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탱한 것이 자유한국당이다.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했다고 해산되었는데, 한국당은 통진당보다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에 백 배 이상 위험한 정당이다. '촛불' 정국에서 청산됐어야 할 극우 파시즘 세력이 살아남아 자유민주주의자로 행세하는 현실은 한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을 넘어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낳고 있다.

문재인 정권을 친노동 진보라 보는 것은 착각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개인이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왕정이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장관을 거쳐 관료들을 통해 제도적으로 집행된다. 대통령의 권력은 여당을 거쳐 국회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반노동 극우가 득실댄다. 촛불 전후를 비교할 때, 행정부의 관료와 입법부의 한국당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연합뉴스


'결사의 자유'가 노동권이라는 착각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가치에 대해 견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가 노동자에게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화운동 출신 당대표 이해찬과 노동운동 출신 원내대표 홍영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 대다수는 ILO협약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결사의 자유' 87호 협약을 노동권이라 착각하고 있다.

ILO협약 87호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이나 사회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자유권이다. 87호 협약 조문의 주어는 "노동자"라는 단수가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복수로 시작한다. 사용자가 자기 단체를 자유롭게 만들듯이,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1948년 제헌 헌법이 결사의 자유를 국민적 권리로 인정한 이래 사용자는 결사의 자유를 별문제 없이 누려왔으나, 노동자는 제대로 된 결사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결사의 자유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ILO협약 87호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는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33조가 아니라 국민적 권리를 명시한 헌법 21조의 문제다. 보통사람, 즉 민중에게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다.

결사의 자유는 교원노조나 공무원노조 같은 '철밥통'의 권리를 보장하는 협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전쟁이 끝나고 65년이 지난 2018년에도 보장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국민적 기본권에 대한 문제다.

'단체교섭'이 노사 모두의 권리라는 착각


ILO협약 비준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세 번째 착각은 '조직할 권리와 단체교섭 권리'라는 제목을 단 98호 협약의 조항들을 단체교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일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98호 협약은 단체교섭의 형식이나 내용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다만, 단체교섭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한 전제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98호 협약 1조는 "노동자는 고용의 측면에서 반노조 차별 행위(anti-union discrimination)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아니하거나 노동조합에서 탈퇴할 것을 고용 조건으로 하는 행위", "조합원이라는 이유, 또는 근무시간 외에 혹은 사용자 동의 하에 근무시간 내에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분을 하는 행위"를 반노조 차별행위로 규정한다.

98호 협약 2조는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는 설립, 활동, 자체 운영에서 상호 간에 직접 혹은 각각의 대리인이나 구성원에 의한 모든 간섭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특히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의 지배(domination) 하에 둘 목적으로 사용자단체의 지원을 받아 노동자단체의 설립을 꾀하거나,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의 통제(control) 하에 둘 목적으로 노동자단체에 재정 혹은 기타 수단으로 지원하는 행위를 본 조항의 간섭 행위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98호 협약은 단결권을 행사하고 제대로 된 단체교섭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fundamental)로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에 의한 반노조 차별 행위와 노동자단체에 대한 부당한 간섭 행위, 즉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는 국제조약이다. 이런 점에서 98호 협약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촉진을 위한) "부당노동행위 금지 조약"으로 부르는 게 98호 협약의 취지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란 기업이나 산업의 경영을 사용자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에서 해방시켜 기업과 산업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증대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케 하는 역사적 메커니즘이다.

자본주의 발달사를 돌아볼 때, 단체교섭은 노동자의 권리로 발달했으며 사용자의 권리가 아니다. 단체교섭의 전제조건은 사용자의 반노조 차별행위, 즉 부당노동행위(unfair labour practices)를 금지하는 것이다.

ILO협약 비준은 헌정 질서 복원의 출발점


ILO협약 87호가 명시한 결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만 보장하지 않는 현실은 국제 기준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헌법 21조가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자본가와 부자만이 아닌 노동자와 빈자에게도 보장하는 문제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헌정 질서를 복원하는 것이다.

ILO협약 98호가 명시한 단체교섭권을 노동자에게 보장하지 않는 것은 협소한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민중의 사회경제적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사회민주적 진보성을 부정하는 처사다. 헌법 33조는 자본가의 착취할 권리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권리(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1919년 4월 11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 헌장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건국 정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거세된 지배 엘리트(ruling elite)만의 공화국이 아니라, 민중적 참여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이라는 이상을 갖고 100년 전 출발했다. 그때는 전쟁의 참화와 혁명의 혼돈을 뚫고 "사회 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신조 아래 ILO가 출범한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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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