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내랑 같이 가지 마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①의기투합
여행은 아내랑 같이 가지 마라

2016년 하지를 나흘 앞둔 치악산 자락의 아침. 어느새 햇살이 거실에 드리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하늘에 비로봉이 가깝고 녹음이 검푸르다. 추니(아내의 애칭)가 거실에 누운 채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굴렁쇠처럼 몸을 빙글빙글 굴렸다.

“이렇게 해봐요. 허리가 정말 시원해요.” 추니가 말했다.
“나는 두 발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게 더 좋아. 당신은 허리가 약하니까 꾸준히 허리 스트레칭을 해야 해.”
“오늘은 좀 서둘러야겠어요. 차가 막힐지도 모르니까요.”
“그리 먼 길도 아닌데 뭐.”

 

▲뉴질렌드 현지에서 매일 블로그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엮은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 3(뉴질렌드편)’은 2015년 출간한 ‘유럽편’에 이어 세 번째다. ⓒ최광철 여행작가


아침 식단은 푹 끓인 누룽지와 묵은 김치 볶음이다. 후식 블랙커피, 바리스타는 내 몫이다.

집을 나와 원주 고속버스 터미널 인근 단골 안경원에 차를 주차해놓았다. 15분 정도 걸어 대합실에 들어서니 한적하다. 구내매점 아메리카노 한 잔에 빨대는 두 개를 꽂았다. 왠지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게 마음 편하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운 걸까.

고속버스는 문막 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운 뒤, 영동 고속 도로 인터체인지에 접어들어 서울로 향했다.
“애들이 얼른 결혼해야 할 텐데요.” 여주를 지나자 추니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이제 때가 됐지.”
“서른이 넘었잖아요. 올해는 가야지요.” 어제 했던 얘기의 반복이다.
“애들도 많이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무슨 얘기가 이어질지 예측이 가능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는데요.”
“한 해가 금방 후딱 지나가.”
“당신 현직 때 애들이 결혼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야 물론 그렇지. 하객들도 많았을 테고.”
서울 강남 터미널 도착 안내 멘트와 함께 추니가 차창에 기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빗으로 쓸어 넘겼다.

공사 중이므로 우회하라는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3호선 승강장에 도착하자마자 전동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오늘은 승객들이 붐비지 않네요.” 추니가 출입문 바로 옆에 앉으며 말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렇겠지.”
“서울 생활 20년이 마치 꿈만 같아요.”
“맞아. 세월이 참 빨라.”
“서울 떠난 지도 꽤 오래됐어요.”
“벌써 8년이 흘렀어.”
“당신 생각나요? 전셋집 말이에요.”
“그럼. 기억나지.”
“한밤중에 빗물이 방으로 들이닥쳤잖아요.”
“맞아. 그때 엄청 놀랐지.”
“당신 참 집안 살림에 무관심했어요.”
“무슨 얘기, 나도 하느라 바빴는데.”
“당신은 그저 직장밖에 몰랐잖아요.”
녹번역 안내 멘트가 나오자 추니는 녹번동에서 힘들게 살던 서울 생활을 떠올렸다.
“그랬지. 집값이 왜 그렇게도 비싸던지.”
나는 추니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춘천 신혼살림 접고, 무슨 높은 벼슬이라도 하겠다고 서울 녹번동 인왕산 기슭으로 둥지를 옮겨 매일 샛별 보며 집을 나섰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들어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온 광화문의 20년 생활이 나에겐 꿈과 열정이었지만, 아내에겐 혹독한 시련이었으리라.

인왕산이 가까이 올려다 보이는 불광역에 내렸다. 오래 전 모습 그대로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벤치에서 좀 쉬었다 가요.” 추니가 말했다.
“저기 인왕산 봐요. 참 정겨워요.”
“맞아. 봄이면 산비탈엔 온통 개나리꽃으로 덮였지.”
“저길 자전거 타고 오르내렸지요.” 이제 추니가 밝은 추억 모드로 전환됐나 보다.
“선바위까지 올라가던 기억나지?”
“그럼요. 그때 정말 숨이 너무 차 꼴까닥 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우리가 나이 오십에 왜 산악자전거를 타고 싶었을까?”
“그러게 말이에요.”
“맨 처음 그때 한강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흙투성이 산악자전거 타고 가다가 우리 옆에 앉았던 그 청년 말이지요?”
“맞아. 잠실 콧구멍 터널을 쌩하고 빠져나가는 모습이 어찌도 그리 멋져 보이던지.”
“뭐가 그리 급해서 바로 그날 자전거를 질러버렸을까요?”
우린 그날 저녁에 강남에 있는 자전거 가게를 찾아가 한 대에 90만 원짜리 산악자전거 두 대와 헬멧, 팔꿈치 보호대, 고글도 각각 두 개씩 샀다. 그리고는 며칠 뒤 동호회에 가입해서 사방을 돌아다녔다.

“우리 맨 처음 산에 갔을 때 기억나요?”
“부천 원미산 번개?”
“맞아요. 원미산요.”
“그때 산 아래 여남은 명이 빙 둘러서서 제각기 자신의 닉네임을 대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데 우린 닉네임이 없어 그냥 이름을 댔지. 분위기가 좀 썰렁했어.”
“그땐 닉네임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날 번개를 친 ‘어금니’라는 닉네임을 가진 번짱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각자 산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린 맨 뒤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옆으로 자빠지고 말았지.”
“나도 넘어지고 당신도 넘어지고. 히힛.”
산비탈을 오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때 뒤에서 번짱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다가와 처음 왔느냐고 묻고는 저속 기어로 타는 방법과 요령을 설명해줬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고수들을 졸졸 따라다닌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과 같은 자전거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게다.

“당신은 가파른 산비탈에서 몇 번 구르기도 하고, 왼손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늘 체인에 기름을 쳐놓았지. 허허.”
“어이구, 그건 당신이 자전거 정비를 안 하니까 내가 한 거죠.”
“자전거 탄 지 벌써 12년이 흘렀어.” 자전거 스토리는 이제 시작인데 뉘엿뉘엿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장년들을 뒤따라 ‘서북 50+ 캠퍼스’로 들어갔다. 현관 입구엔 ‘서울시 50+ 캠퍼스 개관 기념 특강, 자전거 보헤미안 최광철, 안춘희 부부’라고 우리를 소개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강사 대기실 폭신한 의자가 오히려 불편했다. 달달한 믹스 커피 한 잔 들고 창가를 서성거렸다.

“와우∼.” 강단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좁고 긴 교실에 꽉 찬 수강생들의 환호와 열기에 숨이 멎을 뻔했다.
“오늘은 ‘자전거 여행, 젊은이만 하는 거라고요?’라는 제목으로 공직을 은퇴하고 나서 유럽 5개국과 한중일 동북아 지역을 횡단하신 자전거 보헤미안 최광철, 안춘희 부부를 모셨습니다.” 사회자가 강의 시작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제 아내 ‘추니’를 소개할게요.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닉네임으로 부른답니다.”
잔뜩 긴장된 채 오른쪽 앞자리에 앉아있던 추니가 비스듬히 일어나 어색하게 목례를 했다.

“누구나 50 이후가 되면 마음속 깊은 허탈감을 느끼게 되죠.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하는 '시간'이 마냥 달갑게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남이 시키는 대로, 가족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은퇴 후에는 나 자신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생각에 오히려 무기력에 빠지곤 하죠.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거창한 멘트가 부담스러웠다.

“사실 자전거 세계 일주는 퇴직 후 우울한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위한 일종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는 청중의 강한 눈길을 피하기 바빴다.

“여행하며 부인이랑 다툰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첫 질문이다.

“여행은 친한 사람 그리고 아내와 남편이랑 절대 같이 가지 말라는 명언 아시죠. 다행히 귀국 비행기는 같이 탔어요.” 내 대답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자전거 세계 일주 다음 코스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이 이어졌다.

“사실 말부터 앞세우기가 좀 거리낌이 있기는 합니다만, 다음 여정은 뉴질랜드로 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내와 단둘이서만 갔는데 이번엔 전국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된 몇 분과 함께 떠나려고 해요. 동행 조건은 은퇴자로서 제2의 장년기를 맞이하신 분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질문을 다 받지 못해 아쉬웠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음은 이미 뉴질랜드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ckchoul@naver.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