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 100년, 직접민주주의에서 희망을 구한다
[기고] '직접민주주의뉴스' 창간의 닻을 올리며
3·1혁명 100년, 직접민주주의에서 희망을 구한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50%의 벽이 깨지더니 연일 하한가를 경신하다 잠시 멈추는 모양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권력은 분산되었다. 언론권력, 시장권력, 사법권력, 문화권력. 정치권력 하나가 바뀌었다고 다른 권력들이 바뀌길 기대한다면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치권력은 강한 권력이긴 하지만,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만들어진 오늘날에는 그저 하나의 권력에 불과하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만드는 데는 보다 큰 상상력과 기획이 필요하다. 80년대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이들이 실질적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 오히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자만을 낳고,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촛불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기대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몰랐기에 한번 잘해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에 권한과 힘을 주었지만,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누적된 권력에 점점 꼬리를 내리고 있다. 새로운 기획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지 못하면 참여정부의 재탕, 어쩌면 다시 폐족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해답은 직접민주주의의 강화에 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기에 권력의 크기를 쪼개고, 분산시키고, 민초들이 권력을 견제하고 활용하도록 하는 수밖에는 없다. 민초들은 사회적 역사적 한계 속에서 히틀러와 같은 극우 파시즘을 낳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안과 상상력으로 역사의 균형을 잡아가는 민초들의 집단지성을 믿는 수밖에는 없다. 믿지 못한다면 영원히 엘리트주의와 대의주의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촛불혁명으로 임시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민초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이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소수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민초들이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자, 촉진자의 역할에 충실한 선을 넘어 지도한다는, 이끈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서야 독일이 깨달은 것처럼, 시민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개혁세력은 과거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패배의 길을, 폐족의 길을 걸을 것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헌법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진실로 헌법을 개정하려 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진다. 국회에서도 보수우익, 기득권자가 많아 개정이 쉽지 않은 현실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진실로 국민과 소통하며 바꾸어보려는 새로운 헌법의 시대정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토론하려 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보자면 계몽하려는 모습, 오만한 모습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짙어진다.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풀이 눕는다는 김수영의 시처럼, 민주주의가 되지 않으면 가장 약한 민초들부터 죽어 나간다. 우리의 19살 구의역 청년노동자가 그랬고, 24살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이 그랬다. 민주주의는 가장 약한 민초들에게 가장 절실한 무기다. 그런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기해년 새해 선물로 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먼저 나섰다. 가장 약한 곳에 있는 민초들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나마 ‘민'이 직접 주 인 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고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물론 ‘민회'와 같은 오프라인 모임도 만들어갈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위임 받는 권력을 배신하거나 제대로 일하지 않는 무능한 이들을 끌어내릴 것이다. 그렇다고 반대와 비판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다양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필요한 일들은 함께 움직여 비판과 협력을 함께 해 나갈 것이다.

고통 받은 민초들에게 5000년의 역사는 그리 찬란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다. 지난 조선조 1592년 임진란에 왜 민초들은 왜병이 한양도성을 침탈하기도 전에 스스로 경복궁을 불태웠을까? 왜 왜인들의 땅에 포로로 끌려가고서도 귀국을 스스로 거부한 이들이 있었을까? 그것은 이 땅이 민초들의 나라가 아니었고, 그들의 공화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왕과 양반 귀족들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5000년의 역사에 처음으로 100년 전인 지난 1919년 4월에 왕정과 귀족정이 아닌 민주적인 공화정을 만들자고 처음으로 제안을 했다. 물론 그 불씨는 3·1혁명이 제공했다. 그 공화정이 민초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서야 그나마 형식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지난 87년의 일이니, 이제 30년이 겨우 되었다. 공화정이 아니었기에, 민주정이 아니었기에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면 사회로부터 배제를 당하고, 감옥으로 향해야 했다.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제일 첫 머리에 내놓았으나 그저 말뿐인 구두선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러 곤경에 처한 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이들이 스스로 가난의 원인을 생각하고, 극복할 만한 교육과 계기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밥값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과 극복하려는 의지,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조건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지난 30년의 껍데기 민주주의를 버리고, 이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이제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는, 가짜 엘리트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지 않는 직접민주주의를 지난 100년 전 3·1혁명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시작한다. 3·1혁명은 공화국의 첫 장을 여는 자리였기에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미년 민중들의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올해 기해년 3월 1일에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초들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위한 '직접민주주의뉴스'를 시작하려 한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목소리를 기록하고, 촉진하고, 연결하고자 하는 기자, 역사 기록자를 모집한다.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공화국의 주인으로 살 의지가 있는 이들이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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