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패싱'에 부글부글...첩첩산중 '사회적 대화'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정안 발표에 양대 노총 강력 반발
2019.01.09 15:51:04
노동계 '패싱'에 부글부글...첩첩산중 '사회적 대화'
노동계가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방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동 존중'을 주창한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있다. ILO협약 비준 등 '노동 존중'을 위한 대통령 공약 사안까지도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데, 최저임금 결정 구조와 같은 노동계 양보가 필요한 이슈는 일방적 결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및 결정기준 개정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1월 7일,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획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이 발표한 최저임금법 개악 내용은 2017년 '최저임금 제도개선 TF' 보고서로 제출되어 이미 양대노총 노동자 위원이 반대의견을 밝혔던 '최저임금결정구조 이원화' 내용을 더욱 누더기로 만든 개악 법안"이라며 발표된 개정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은 '구간설정 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최저임금위원회를 이원화하는 게 골자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 위원회'를 두어 매년 최저임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미리 확정한 뒤 최저임금결정위원회에 넘긴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그렇게 될 경우, 노사가 모인 최저임금 위원회의 자율성이 무력화될 뿐만 아니라, 구간설정 위원회가 사실상 그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반대한다. 

양대노총은 "개악 법안의 핵심은 첫째, 최저임금당사자를 제외한 구간설정위원회 위원(소위 '전문가')들끼리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결정한다는 것"이라며 "결국, 노·사 당사자를 배제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문가'들이 모두 결정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전문가와 공익위원의 입지는 강화되는 반면 노·사 당사자는 거수기로 전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8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노·사·정 신년인사회에 참여한 노사정 인사들. ⓒ연합뉴스


양대 노총, 정부의 최임 개정안에 강력 반발

내용도 내용이지만 노동계가 이번 개정안 발표에 분노하는 이유는 노동계와 아무런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안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2월 국회에서 입법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탄력근로제와 ILO 협약 문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거치지만, 최저임금 개정안은 경사노위는 고사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조차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발표됐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계 '패싱'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문제에서도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건너뛰고 곧바로 국회로 공을 넘겼다. 작년 연말 진행된 주휴시간·수당 관련 시행령 개정 역시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모든 사안을 노동계와 논의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대화 의지가 있다는 시그널은 보여줘야 하는데, 현 정부에서는 그런 노력조차 없다고 노동계는 인식한다. 반대로 ILO 협약 등 정부가 노동계에서 약속한 쟁점들은 사회적 대화에 부치면서, 탄력근로시간 연장 등 노동계가 양보해야 하는 쟁점들과 맞거래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 관련해서 "사회적 논의 없이 국회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상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이라며 "양대 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견 수렴 절차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월 10일 전문가토론회, 1월16일 전문가 및 노사 토론회, 1월26일 TV 토론회, 1월21일~30일 온라인 대국민 의견수렴을 계획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정부는 최저임금법 개악 논의를 당장 중단‧철회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종합적인 제도개선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를 보장해야 한다"며 "만약, 개악 법률 처리를 강행한다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이전 정부, 노동자에 고통 전가하면서도 소통 안 했다"

이번 최저임금 개정안은 사회적 대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 참여한 상태이지만 이번 개정안 발표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8일 신년사를 통해 "어제(8일) 정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며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첫해에 우리 노동자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느끼게 해준 신호탄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하지만 두 번째 해에 산입범위를 확대하면서 예전으로 돌려놨고, 세 번째 해에는 그보다 후퇴하는 정책을 내 놨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문 정부의 노동정책 상당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비단 최저임금뿐이 아니다"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시간 정책과 함께 잘살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처음에 그린 그림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저는 스스로 사회적 대화론자라고 자부한다"며 "당면한 우리의 노동 문제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써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현재의 상황들은 노동자들에게 데자뷰로 느껴진다"며 "지난시절 사회적 대화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정부가 방향과 답을 정해 놓고 노동자를 들러리로 세웠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경제가 어렵다며 그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노동자들과는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현 정부도 이전 정부처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노총, 28일 경사노위 참여 여부 결정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 상황은 복잡하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오는 1월 28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상정, 이를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게 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9일 민주노총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 사회 의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사회적 대화"라며 "오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적극 설명하고 대의원 결정으로 만들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화만이 아닌 투쟁도 함께 진행한다며 "총력투쟁을 포함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펴내고, 이른바 승자독식으로 경도되려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그대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적극 개입하고 치열하게 투쟁과 교섭을 함께 하면서 한국 사회를 대개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올해 2월, 노동기본권, 사회안전망 쟁취 등을 기조로 2월-4월 총파업 총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6월과 7월에는 비정규직철폐 및 사회공공성, 사회안전망, 노동소득 확대 등을 위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한다. 

한 마디로 장외투쟁과 대화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간 현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참여 의지는 관철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난 10월,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사노위 참여여부를 결정하려 했으나, 안건토론 회의정족수 미달로 개회조차 하지 못하고 유회된 바 있다. 전체 1137명의 대의원 중 과반인 569명에 미달하는 535명만 참석하면서 개회선언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도 이러한 상황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대의원들에게 정부에서 발표한 최저임금 개정안이 좋은 빌미인 셈이다. 앞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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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