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의 용'은 이제 그만
[기자의 눈] 낡은 경구의 습관적 반복이 아쉽다
2019.01.10 16:46:56
'개천의 용'은 이제 그만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오면, 개천이 살만해질까?


아닌 듯싶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좋은 예다. 그는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했다. 힘들게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붙어 검사와 정치인이 됐다.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하지만 23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홍 전 대표가 "개천"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기 힘들다. 지난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반값 아파트' 공약을 내걸었을 뿐이다. 공약의 적절성 여부는 일단 미뤄두자. 그리고 13년 동안, 서민 친화 정책을 내세운 기록이 거의 없다.

사법시험 존치 논쟁 때도, 지난 대선 때도 그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과연 "개천"에 애정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관심은 "개천"보다 "용"에 쏠린 듯하다. 용을 배출한 뒤의 "개천"에 관심을 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사실, 흔한 예다. "개천에서 난 용"을 자처하는 이 치고, "개천"에 눈길을 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예외 없이 눈은 하늘을 향한다. 누구나 추운 곳에서 떨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오면, 다시 밖에 나가기 싫다. 


"개천", 그러니까 빈곤 계층의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진심으로 믿는 이라면, 아마도 "개천"과 동떨어진 곳 출신이다. 가난은 누구에게나 끔찍하다. 단지 춥고 배고픈 문제만이 아니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에 예민한 부류라면 더 그렇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지긋지긋했는데, 악착같이 공부해서 지식인 세계에 들어갔더니, 비록 '가식'일지언정 '정치적 올바름'을 존중하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행복했다는 이들을 자주 봤다. 그들에게 빈곤 경험은 '정치적 올바름'이 조롱받았던 기억이다. 그들에게 다시 "개천"으로 가라는 건, 단지 고생 좀 해보라는 수준이 아니다. 실존에 대한 위협이다.

"개천" 출신으로 중산층 언저리에라도 진입한 이들은 진심으로 두려워한다. 혹시 다시 "개천"으로 추락할까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본인은 추락만큼은 피할 듯 싶은데, 자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므로 다들 사교육과 재테크에 목을 맨다.

"용"이라는 표현도 우스꽝스럽다. 대체 누가 "용"인가? 어려운 시험에 붙거나, 힘든 공부를 오래 했다면, 머리가 좋거나 지식이 많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이런 역량이 쓸모와 의미를 지닌다면, 시장과 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 힘든 공부에 뛰어드는 이들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용"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유능한 사람, 그래서 적절한 보상을 받는 사람일 뿐이다.

유능한 사람이 곧 "용"은 아니다. 민주 사회에서 권력의 배분은 선거로 이뤄진다. 선거에선 표를 많이 얻어야 당선된다. 점수를 많이 따야 하는 시험과는 다르다. 시험으로 뽑힌 엘리트는 능력을 발휘할 의무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을 뿐이다. "개천"과 분리된 특권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다. "개천" 출신이건, 아니건,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기본권을 누린다. 특수 신분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게 헌법 정신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은 이토록 근거가 약하지만, 현실에선 끈질기게 쓰였다. 고도성장, 그리고 낙수 효과 경험 때문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대학 교육을 받으면, 이런 일자리가 거의 자동적으로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서민, 빈민 가정 출신이어도, 대기업 정규직이 되면 머지않아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뿌리는 여윳돈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 흘렀다. 대학 교육을 안 받고, 자영업 생태계에 편입돼도 중산층 진입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86세대'가 이런 구조의 수혜 집단이다. 


하지만 1995년 세계화 선언 이후,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졌고,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고도성장'과 '낙수효과'가 모두 끝난 경제 구조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거듭 확인한다. "개천에서 난 용"이, 다시 개천을 돌아보리라는 근거는 없다. 어쩌면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올수록, 개천은 더 메마를 수 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났다"고 했고, "낙수효과는 이제 기대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는 '86세대'의 청년기 경험에 비춰 현실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이 통할 수 있었던 '86세대'의 청년기 경험을 지우고, 현실을 살펴야 한다. 그러면 눈에 들어오는 게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이야기한 "투명인간"이다. 최저임금 언저리 소득으로 생활하는 이들, 고용주가 최저임금 규정을 어겨도 항의하기 힘든 이들이다. 


그들이 "개천"이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용"이 아니다. 이미 용이 돼 하늘에 오른 이들이 "개천"을 돌아볼 리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대표'다.

'개천의 대표'가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개천"을 어설프게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연민하는 부류가 아닌, 개천에 직접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이 예산을 배정하고, 법을 만들 때 개천은 살만한 곳이 된다. 개천과 개천 아닌 곳 사이의 거리가 좁아져야 한다. 그래야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요컨대 계층간 이동을 활발하게 하는 조건은, "용"이 아니라 양극화 완화다. 


그 방법 역시 다들 안다. 선거 개혁이다. 다양한 계층의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 "용" 백 마리보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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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